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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이 Jul 20. 2023

푸른 장미


은희언니와의 만남은 거진 2년 만이었다. 그녀를 위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푸른 장미 꽃다발을 사고, 집들이 선물로는 휴지 한 팩을 준비했다. 그날은 기상청이 예보한 대로 회색빛 하늘에선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유독 많이 내리는 비에 지하철역을 벗어나기 겁났다. 덥고 꿉꿉한 날씨에 화장이 무너지는 것도 싫었고, 기껏 신경 쓴 머리가 비에 좌지우지되는 것도 싫었다. 그녀와 만나지 않은 세월 동안 그럭저럭 잘 살고 있었노라 보여주고 싶었다. 한숨을 내쉬며 채비를 바로 하자, 휴대폰에는 “소정아, 밖에 비가 많이 내리는데 데리러 갈까?”하는 메시지가 울렸다. 나는 무표정하게 “언니 보러 가는데 비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답장을 보냈다.


우산을 썼는데도 흠뻑 젖은 셔츠와 슬랙스에 언니는 놀라며 “우산 쓰고 온 거 맞지?”라고 농담을 건넸다. 언니는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꽃다발의 향을 맡으며 “대학 졸업하고 꽃다발 받는 건 처음이야” 하며 기뻐했고, 낑낑거리며 들고 온 휴지에는 “집에 잔뜩 있는데 뭐 하러 돈을 썼어.“라고 말했다. 2년 만에 만난 언니는 늘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머리와 얼굴의 반을 덮는 검은색 뿔테, 그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네일아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밤을 새운 듯 충혈된 눈과 살짝 붓기 있는 얼굴에 반해 마른듯한 언니의 체형은 익숙지 않았다.


“언니가 자취할 줄 몰랐어. 부모님도 서울에 계시지 않아?”

“나도 내가 자취할 줄 몰랐는데 그렇게 됐어.”

 

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냉장고에서 소주와 맥주 한 병을 꺼내왔다. 소맥의 ‘황금비율’을 운운하는 언니를 뒤로 하고 둘러본 원룸에는 그녀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었다. ‘청량한 느낌이 좋다’며 하늘색 신봉자를 자처했던 언니답게 푸른 계열의 물건이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언니 가까이서 가면 미세하게 풍기던 바닐라향의 정체도 디퓨저였다는 걸 알게 됐다. 집을 둘러보던 난 ‘자취방이랑 본가랑 가까운데 굳이 자취해야 하나?’, ‘부모님이랑 사이가 안 좋나?’, ‘금수저인가?’ 하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런 내가 고작 한 말이라고는 “그래, 자취가 최고야! 이제 29살인데 자취할 때 됐지.“가 전부였다.


이윽고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잦아지자 언니는 자연스레 직장 얘기를 꺼냈다. 우리가 멀어진 이유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언니의 말에 내심 놀랐다. 방송국 입사동기였던 우리는 몇 해 전만 해도 같은 부서에서 일했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해 촬영과 편집에 해박했던 언니는 주로 영상 자막을 달았고, 영어영문학과를 나왔던 나는 그 자막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담당했다. 3살 터울에도 난 종종 언니라는 호칭을 떼고 그녀를 불렀고, 업무를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대뜸 찾아가 해결법을 물었다. “언니 없었으면 난 진즉에 퇴사했어.”라는 말을 달고산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규직을 목전에 앞둔 어느 날 언니는 퇴사 통보를 받았다. 언니는 자기가 왜 잘렸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그 이후 본인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털어놨다. 갑자기 퇴사를 당해 당황스러웠다는 말부터 상사 놈은 아직 잘 살고 있는지, 우리와 함께 일한 선배는 아직 잘 다니고 있는지 물어봤다. 몇 년이 지났어도 그때만 생각하면 혈압이 오른다며 뒷목을 잡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나는 상사 놈은 여전히 똑같다는 말부터 우리와 함께 일한 선배는 회사 욕을 하면서도 여전히 다니긴 한다고 답했다. 언니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는 큰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그 무렵 언니가 왜 잘렸는지 우린 알고 있었다. 계약직이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게 용감했던 언니를 상사는 늘 물 흐리는 미꾸라지처럼 쳐다봤다. 언니는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꼭 묻고 넘어가야 했다. 그게 상사의 심기를 건드릴지라도 언니는 불도저처럼 달려들었고, 최대 수혜를 입은 건 나였다.


우리 회사에서 초과근무는 일상적인 일이었으나, 언니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했다. 상사는 “다 너희 성장하라고 하는 일인데 뭐가 문제냐.”는 소리만 해댔다. 그럼에도 언니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냈고, 언니와 더불어 내 지갑 또한 빵빵해졌다.


언니의 뒤편에서 숨어있던 나는 언니가 나가고 나서 수월히 정규직이 됐다. 하지만 이후 언니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언니는 회사에서 잘린 후 비슷한 직무의 회사를 두어 번 정도 다니다 결국 7급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했다. 본가에서 홀로서기 한 이유도 누군가의 잔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공부를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나는 ”그래, 요즘 촬영이랑 편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도 조만간 퇴사할 거야.”라고 입에 발린 말을 했다. 언니는 ”나도 직무랑 내가 안 맞는 것 같더라. 난 그냥 연금이나 받으면서 살래.“라고 답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날 분위기에 취해 마신 술 때문인지 결국 속을 게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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