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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Dec 01. 2023

전화 한 통화하는 게 왜 그리 어려울까?

시부모님께 전화 자주 하시나요?

한 달 전에 어머님과 얘기하다 진지하게 부탁 하나를 하셨다.


"바쁘겠지만 아버님께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전화 한 통화 드려줘."


바로 알겠다고 했지만, 그때부터 내 마음 한편에 '마음의 숙제' 1개로 자리 잡았다. 전화 한 통화하는 게 왜 그리 어려울까? 친구랑 전화하는 건 그렇게 좋아하면서. 친정 부모님께 전화하는 건 주저 없으면서.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하는 딸이지만;)


마음속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내 마음속 질서를 어지럽혔다. 감정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한 달에 딱 한 번인데 전화드리는 게 뭐 어려워?'

                                    vs

'아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라 의무적으로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것도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한테?'


이 두 마음이 공존했는데, 사실 뒤에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혔다. 그러면서 괜히 MBTI속 내 유형이 생각났다.

ENFP.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에 게으름 계급도가 나오는데, ENFP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었다.


'누가 하라고 하면 더 안 함'




갖가지 하기 싫은 이유들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그렇지만 어머님한테는 바로 "네. 알겠습니다."를 얘기했는데.라고 해버려서 돌이킬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전화를 해도 될 이유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 달에 한번 시댁에 오라고 하시는 건 아니잖아? '

'안부 전화 당연히 하는 건데,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건가?'

'시부모님께 잘해야 우리 남편도 친정부모님께 잘하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런데 이제는 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지?'


 언제 전화드렸더라? 보통 먼저 시부모님께 전화를 하지 않으니, 친정 부모님께 전화할 때 무슨 얘기를 했더라? 계속 떠올려봤다. 친정 부모님께는 '뭐 물어볼 게 있어서?', 아니면 '속상한 일 있어서.', '애들 귀여운 거 얘기하고 싶어서?' 그럴 때 주로 전화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안부 전화'는 친정 부모님한테도 잘하지 않았다. 그러니 시부모님께 드리는 안부 전화 한 통화가 어렵게 느껴졌다.


사실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릴 필요 없이 자주 만났다. (결혼 초반부터 몇 년 전까지도) 아이가 어릴 적에는 아이를 보고 싶어 자주 오시거나 시댁에 갔기 때문에 전화의 필요성이 없었다. 시부모님을 몇 주 못 본 것 같으면 시댁으로 부르시거나 집으로 오셨다.




그렇게 자주 보던 사이였다. 그런데 얼굴을 자주 안 보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코로나라는 환경 탓도 있었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 부자간의 싸움. 아버님과 아들(남편)이 틀어져버렸다. 아버님과 남편은 사업 초반부터 많이 부딪혔다. 가족 사업을 하다 보니 함께 일을 하는데 서로 맞지 않아 계속 힘들어했다. 그 둘은 문제 해결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문제가 있으면 일단 뜯어보고 해결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격의 아버님. 문제가 있으면 찬찬히 생각해 보고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남편. 그래서 항상 맞지 않았다. 아버님 입장에서는 남편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지 않고 가만히 있다고 여겼다. 남편 입장에서는 아버님이 원인도 파악하지 않고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여겼다. 그래서 사업 초반부터 힘들어했는데, 최근 몇 달 전 '쨍그랑'하고 부딪혀버렸다.




남편이 결국 일을 냈다. 아버님께 대들었다. 그동안 아버님은 아들이 열심히 일하고 고치고 문제를 해결했던 걸 인정해주지 않으셨다. 잘하지 못하는 부분만 지적하시는 아버님께 섭섭함이 쌓이다 못해 팡 터져버렸다. 나는 남편에게 다음부터 더 노력하겠다고 하고 잘 마무리 지으라고 했다. 그런데 둘 다 감정이 격앙되어 있으니 결국 안 좋게 틀어져버렸다.


아버님과 아들은 서로 얼굴을 안 보고 피하기 시작했다. 둘 사이가 불편해지니, 자주 부르시던 시어머니도 우리 가족을 쉽게 오라고 하지 않으셨다. 어머님께서 중간에 많이 힘들어하셨다. 아버님은 집에서 아들 욕만 하고, 아들은 잘못했다고 얘기 안 하겠다고 하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봐 나도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그 새우등은 터졌다. 처음에는 아들욕만 하던 아버님이 결국 내 욕까지 하셨단다. 이럴 때 내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고;; 그 얘기 듣고 처음에 너무 황당했다. 둘의 문제가 내가 관련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입장 바꿔 친정엄마랑 나랑 싸웠을 때 사위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가? 이럴 땐 며느리라는 자리가 참 힘이 없는 위치인 것 같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며느리한테 찰떡인 속담인 것 같다. 


그래서 어머님의 전화 한 통화하라는 부탁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안부전화는 부자간의 다툼 아니라도 며느리로서 할 도리이긴 하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쉽지가 않았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며 전화하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들과 싸우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화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아버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민만 하고 얘기를 못하다 결국 전화를 드렸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어요. 날씨 추워졌는데 감기 걸리지는 않으셨나 해서 전화드렸어요. 독감 주사는 맞으셨어요? (블라블라) "


다행히 전날 날씨가 쌀쌀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들과의 일에 관한 얘기는 1도 하지 않았다. 날씨얘기, 건강 얘기, 애들 얘기, 내가 바쁜 얘기 들만 늘어놓는 대화였다.


결국 전화통화가 끝나니 숙제가 끝난 것 같은 이 개운함. 한 달에 한 번이라고 해서 한 달은 마음 편할 것 같은 이 마음.



p.s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아니 정확히 한 달이 되기까지는 2일이 남았다. 남편한테서 어머님이 나에게 서운해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며느리한테 부탁까지 했는데 전화 안 한다고; 그러면서 내가 전화 안 하는 것도 아버님이랑 남편이 사이 안 좋으니까 더 그런 거라며.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다.

또 마음속이 술렁 해진다. 그래도 평정심을 지키고 내 숙제는 해야지.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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