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밤 11시 10분. 우리 부부가 애정하는 '나 혼자 산다'가 하는 시간이다.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재치 있는 일상을 볼 수 있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주는 천정명 편이다. 한 때 사모했던 연예인 천정명. (천정명의 동그란 눈과 순진무구하고 귀여운 미소에 퐁당 빠져들었지.) 여전히 멋있고 잘생겼는데 어느덧 40대가 훌쩍 넘었다. 세월이 흘러 동경했던 연예인도 나처럼 나이가 들어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든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천정명은 최근 사는 집 빌라에 입주자 대표가 되었다고 한다. 반장 맡은 기념으로 입주민들을 위해 새해 인사 겸 스콘을 만든단다. 방산시장에서 베이킹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고 광장시장으로 향한다. 먹거리가 가득한 이곳에서 '인천집'(T.M.I지만 주소: 광장시장 동문 A 10호)이라고 쓰여있는 한 노상집에서 잔치국수, 순대, 어묵, 떡볶이 양념을 먹는다.
금요일 밤 11시면 저녁 먹고 소화가 진작에 되었을 시간. '나 혼자 산다'에 나온 연예인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 뭐든 다 맛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시장표 잔치국수는 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점점 TV속 잔치국수와 물아일체가 되고 있는 부부. (우리 부부는 안 맞는 거 천지이고 정 반대인 것 같은데 좋아하는 음식은 찰떡궁합이다.) 둘 다 맛있겠다며 빠져 들었다. 나는 광장시장을 한 번도 안 가봐서 가서 먹어보고 싶었다. 신랑은 광장시장에서 먹어봐서 아는 맛이라 더 못 참겠다고 했다.
그 영상을 보고 한참 동안 부부의 머릿속은 광장시장 잔치국수가 떠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신랑의 오프를 받아 아이들을 데리고 광장시장으로 향한다. 집에서 광장시장까지는 꽤 먼 거리다. 1시간 정도 차로 달려야 하는 거리. 생각보다 멀었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달려간다. 천정명이 먹은 잔치국수를 먹기 위해.
광장시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묻는다.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시장에 갈 거야. 광장시장이라는 곳인데, 잔치국수랑 맛난 음식 많이 먹을 거야. "
10분-20분 정도 걸리는 것도 아니고 1시간이 걸리니, 교통체증으로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자며 아우성이다. 다들 출출하다. 맛있게 먹기 위해 아침식사도 가볍게 먹었다.
(사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집밥 만들 생각도 안 했다.)
드디어 도착한 광장시장. 평일 낮시간인데도 인산인해다. 부부는 한 명씩 어린아이 손을 꼭 잡고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한다.
'천정명이 먹은 잔치국숫집을 찾자.'
직접 찍은 광장 시장 만국기
먹자골목을 지나며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너무 많다. 여기 자리 있는데 먹을까? 애들 있으니까 식당 같은 곳으로 가야 하나? 수많은 유혹 끝에 꼬르륵 거리는 배꼽시계 소리를 들으며 그곳을 찾아간다.
결국 발견한다.
쪼르르 앉은 엄마와 아들 둘
마침 자리는 있는데 비좁다. 일단 아이들과 내가 앉고 신랑은 서서 기다린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날씨였다. 다행히 열선이 있는 최신식 시장의자 덕분에 엉덩이가 뜨끈뜨끈해진다. 맛있어 보이는 게 너무 많았지만 짧은 고심 끝에 드디어 주문을 한다.
" 저희 잔치국수 2개, 순대, 어묵 4개, 떡볶이 주세요."
주인 할머니께서 말씀하신다
" 어른 둘, 아이 둘인데 너무 많이 시킨 건 아니여?"
" 저희 다 먹을 수 있어요."
(더 많이 먹을 수 있는데 간식 먹을 배 남겨놓고 조금 시킨 거예요.)
맨 처음으로 나온 음식은 순대. 한입에 먹기 어려운 정도의 대왕 사이즈에 놀란다. 소금에 살짝 찍어서 한입 와아앙 베어 먹으니 부드럽고 찰지다. 맛있는데 크기까지 하니 입 안 가득 흐뭇하다. (지금껏 내가 먹은 순대는 순대가 아니었던가. 맛있는 순대의 기대치가 확 올라간 느낌이다. )
직접 찍은 찹쌀 순대 1인분과 소금
연이어 나온 음식은 잔치국수 2그릇. 우리 부부를 이곳까지 오게 한 바로 그 음식. 드디어 맛을 본다. 호호 불어 후루룩. 그리고 국물 한 입.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캬 하고 탄성이 나온다. 기대를 하늘 끝까지 하고 왔는데, 어쩜 그 이상이지. 우리가 너무 배고팠을 때 먹어서 그런 걸까? 배고프지 않은 상태에서 먹었어도 아니 배가 가득 부른 상태라도 맛있을 것 같다.
직접 찍은 잔치국수
기본에 충실하지만 깊게 우려진 육수에 감탄한다. 후추가 많이 뿌려져 더 개운하고 시원한 맛이 전통적인 멸치 육수 국물이다. 이 집 잔치국수에 후추는 유달리 특별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파송송, 김가루 솔솔, 고소한 깨가 듬뿍 뿌려져 혼연일체가 된 듯 모든 재료가 맛의 합을 이루고 있다. 적당히 익은 면에 간도 잘 베어 씹는 맛이 풍부한 면발이다. 절로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국수. 평범한 음식이지만 그만큼 깊은 맛을 내는 게 쉽지 않은 메뉴이기도 하다.
아이들도 엄지 척하며
"엄마 너무 맛있어서 기분 최고야."
라고 이야기 한다. (엄마도 격하게 공감하지)
같이 주신 갓 담근 김치는 최고. 흔히 식당에서 쓰는 중국 김치가 아니었다. 주인 할머니의 유려한 손맛이 더해져 아삭한 식감에 간도 딱 알맞은 맛깔난 김치였다. 김치 부심 있는 주인 할머니는 우리에게 김치를 줬는지 재차 확인하신다. "김치 더 줄까?" 라며 바쁜 와중에도 손님을 살뜰히 챙기신다. 넉넉한 인심이 묻어난다.
의자 가득 들어찬 손님들은 다들 국수를 시킨다. 주인 할머니는 "천정명이 때문에 국수가 잘 나가. 하하. " 라며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번진다. 잔치국수 3개 시킬걸 후회했다. 손님들의 끊임없는 주문에 잔치국수 1개 더 해달라고 하기 죄송해서 아쉬웠다.
첫째가 시킨 어묵. 4 개 시켜 한 사람 당 1개씩 사이좋게 나눠먹는다. 어묵은 우리가 아는 따끈따끈 쫄깃쫄깃한 맛이다. 마지막으로 나온 음식은 둘째가 시킨 떡볶이. '혹시 매우면 어떡하지.' 라며 살짝 걱정했다. 그런 걱정도 잠시, 한입 베어 먹자마자 유레카. 적당히 매콤하면서 달콤한 양념에 반하고. 왕순대만큼이나 큰 쌀떡은 찰지고 쫀득쫀득하다. (안 시키면 어쩔 뻔) 쫄깃하면서도 짭조름함 뒤에 단맛이 따라온다.
직접 찍은 떡볶이
순대의 간과 머리 고기까지 떡볶이 양념에 야무지게 찍어서 먹는다. 주신 음식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먹으며 비우고 자리에 일어서는데 그 황홀함이란. 이건 뭐 어떤 음식을 가져다줘도 비교할 수 없다랄까. 광장시장 인천집 잔치국수 예찬론자가 되었다.
지금껏 맛집이라고 소개한 음식점에서 생각보다 별로였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기대 잔뜩 한 이곳은 그 기대를 뛰어넘고도 그 기준 위로 올라가다니. 몇 번을 더 먹어야 먹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까. 거리만 조금 더 가깝다면 정말이지 매일 출근도장 찍듯 먹어 보고 싶다.
엄마의 품처럼 따스하게 마음을 품어주는 잔치국수. 입안 가득 황홀함으로 채워주는 광장시장의 정겨운 잔치국수. 단 돈 5000원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소. 확. 행 아이템이 됨이 틀림없다.
바로 어제 먹어 맛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지금 이 순간도 먹고 싶은 심정을 어떻게 설명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