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뚜껑 위에 기름기 쏙 빠진 두툼한 고기와 미나리, 콩나물, 김치가 고기 기름에 버무려져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사진출처: 픽사 베이
다들 허기져 있는 저녁 시간이다. 스테이크 두께의 두꺼운 목살이 야들야들하게 익었다. 목살이 이리 부드러울 줄이야. 비빔면도 2인분 시켰다.
6살인 둘째가 배고팠는지 비빔면을 후루룩 짭짭 소리를 내며 맛나게 먹고 있다. 남편은 둘째 옆에 앉아 비빔면만 먹을까 고기도 호호 불어가며 입에 쏙 넣어준다. 모처럼 다 같이 외식을 즐기고 있었다.
첫째도 내 옆에 앉아 먹을 준비를 한다. 삼겹살 귀신인 첫째는 삼겹살부터 손이 간다.
한 참 먹고 있는데
“우 웩.”
첫째가 바닥에 토를 했다. 당황스러웠다. 순식간에 일이었고 양은 많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러웠다.
식당 안에 사람들도 많았고 다들 식사하고 있는데 민폐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이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 또 시작이다. 또 시작이야. 목구멍이 어떻게 생겼길래 맨날 그 모양이야. ”
첫째는 바로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이 삐쭉 나왔다. 첫째가 어릴 적부터 입이 짧고 목에 잘 걸려 토한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우리 남편은 맨날 이런 식이다. 가끔 가시가 날카로운 말을 생각 없이 내뱉어서 아이들 마음에 못을 박는다. 가끔은 나도 그랬다. 내가 열심히 한 요리를 먹고도 그런 적이 많아 아이에게 짜증을 낸 적이 종종 있었다. (내 요리가 맛없다는 사실은 인정 안 하고) 그렇지만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첫째한테 말했다.
“괜찮아. 아빠도 어릴 적에 맨날 컥컥 걸려서 토했다고 할머니가 얘기하셨어. 의현이도 아빠처럼 자라면서 안 그럴 거니까 괜찮아. 아빠는 자기도 어렸을 때 그랬으면서 의현이 한 테 뭐라고 한다. 그렇지?”라고 이야기하며 바닥을 휴지로 닦았다.
탄산음료를 시켜 입가심을 시켜주고 다시 밥을 먹였다. 다행히 다시 밥을 잘 먹기 시작했다.
대신 삼겹살은 주지 말라고 말했다.
첫째는 밥 잘 먹고 기분이 좋아져 집에 돌아와 둘째와 신나게 놀았다.
한참 놀고는 씻고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아빠는 아빠도 어렸을 적에 자주 토했다면서, 의현이 한 테 왜 그렇게 뭐라 했지. 의현이는 9살처럼 행동하고 아빠는 37살처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37살은 어떻게 하는 거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너무 맞는 말만 하는 9살 아이의 말에 해줄 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게. 37살은 어떻게 하는 거지? ”라고 물어봤다.
“의현이도 챙기고 환이도 챙기는 거 아니야?”
신랑한테 잔소리를 퍼부었다. 토하고 싶어서 토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해도 부모가 감싸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다음부터는 그런 상처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철부지인 우리 남편은 한번 튕기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인생 모토가 '철들지 말자'이니 말 다했다. 그래서 퍼붓듯 잔소리하지 않고 조용히 달랬다.)
신랑이 얘기했다. 그 식당이 목살은 맛있었는데 삼겹살은 좀 별로였다고. 목살 맛나게 먹다가 삼겹살 먹는데 갑자기 돼지 냄새가 나서 젓가락 내려놓았다고. 갑자기 삼겹살 주지 말라는 첫째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토한 거구나.
"억울하면 소통할 수 없다."는 오은영 박사님의 말이 떠오른다.
어릴 적 부모님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놓은 일들이 있기에 더욱 공감이 되었다. 그런데 나와 신랑도 그런 부모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아이가 부모를 키운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 집은 아이가 부모를 성장하게 만드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나이만 많다고 어른이 아니니.
부모만 아이를 가르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아이도 부모를 성장하게 하는 양방통행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