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잘 피해 갔던 우리 집.
그런데 드디어 올 것이 왔나 보다.
갑자기 둘째가 새벽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39도의 고열.
6살인 아들은 그 전날까지도
쌩쌩했기에 갑작스러웠다.
잔병치레 없던 아들이라
아파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가 진단 키트를 해보니 ‘양성’.
시뻘건 불덩이가 되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6살 아들.
걱정되는 마음으로 첫째인 9살 아들과 함께 자주 가는 소아청소년과 병원에 갔다.
둘째가 코로나 양성인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확진을 위해 신속 항원으로 검사를 한 번 더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둘째는 집에서 검사하며 코를 쑤셨기에 검사하기 싫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만 참자며 어르고 달래보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겁먹은 둘째를 보시고
첫째에게 먼저 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평소 우리 첫째는 둘째보다 더 겁이 많다.
기질도 겁이 많고 여린 아이다. 무서운 것도 많아 울보였다.
어릴 적 A형 독감에 호되게 앓았는데 그 이후 독감 주사도 매년 힘들게 맞던 아이였다.
진퇴양난으로 둘 다 힘들게 검사받겠다 싶었다.
눈을 질끈 감으며 둘째를 안았다.
첫째는 어쩔 수 없이 혼자 검사실로 들어갔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첫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사 선생님께 하는 말이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생은 안 아프게 검사해주세요.”
분명 자신도 검사하기 싫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검사를 하는 차례임에도 불구하고
의사 선생님께 건넨 말이 동생은 안 아프게 검사해달라고 말한 것이다.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의사 선생님도 잘못 들으셨는지 “뭐라고?”라고 물어보셨다.
첫째는 다시 한번 큰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 동생 환이는 안 아프게 검사해주세요”
그 얘기를 들으신 의사 선생님은 웃으며
“그럼 너는 아프게 검사해도 돼?”라며 얘기하셨다.
첫째는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우선 첫째가 동생을 위하는 마음이 예뻤다.
자신도 겁나는 상황에서 용기 내어 말한 것이 기특했다.
그리고 나보다 더 둘째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둘째한테 “눈 딱 감고 한 번만 해보자.”라고 말했던 것과는 너무 비교가 되었다.
‘형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에
검사하기 싫어하고 있던 둘째도 용기를 내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에서 나오려고 할 때였다.
기다리고 있던 첫째 에게 집에 가자고 말했다.
그런데 첫째는 뒤돌아서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또르륵 흘리고 있는 아이.
검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팠나 보다.
평소라면 아프다고 큰 소리로 울었을것이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을 동생을 생각하며
울지 않고 꾹 참고 있다가 조용히 울고 있던 것이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어쩐지 짠하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또 한 번 동생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첫째 아이의 따뜻한 마음씨와 배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서 검사를 잘 받고 마음이 훈훈해져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날 이후 형제의 애틋한 얘기는 또 써볼 예정이다)
때로는 아이의 작은 행동, 말 한마디가 어른보다 나을 때가 있다.
아이보다 거의 30년 가까이 인생을 살아왔음에도 배울 점이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어른으로서 단시간 내에 빨리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아이처럼 생각하되 어른스러운 어른은 될 수는 없는 걸까?
아니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아이처럼 생각하는 어른스러운 어른.
메인사진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