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의 변화를 꿈꾸다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왔다. 재밌게 잘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오는 길에 내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만 가득했다. 바로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 넘치는 모습을 보았다. 개성이라고 하면 20대의 패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가지각색 남녀노소 나이 불문하고 자신을 꾸몄다.
초등학생 엄마인데 손수건 같은 탑을 입은 뚱뚱했지만 당당한 중국 엄마. 새초롬하게 화장하고 인형같이 입고 통굽을 신은 일본 여자. 트랙킹을 하는지 엄청나게 큰 백팩을 메고 있지만 탄탄한 몸매에 레깅스를 입은 미국 언니. 스포티한 무드의 져지 티셔츠에 힙한 카고바지와 선글라스를 매치한 스타일리시한 여자. 등등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사람이 많았다. 서로 어떤 아이템을 매치하느냐에 따라 개성을 극대화하여 트렌디한 패션을 시도하는 이들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지극히 평범했다. 시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개성을 뽐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흰 티에 긴통바지들만 챙겨가서 매일 같은 스타일이었다. 분명 4벌을 챙겨갔는데도 신랑이 맨날 같은 옷을 입은 것 같다고 했다. 평범한 게 결코 나쁜 것은 아닌데,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지극히 평범했지만 꾸밀 줄 모르는 사람 같다고 생각되었다.
그중에서 제일 많이 본 건 '히메컷'을 한 일본여자들이었다.
'히메컷' (姫カット)이란?
긴 생머리를 층계형으로 자른 헤어스타일이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앞머리와 귀를 덮으며 뺨이나 턱까지 내려오는 옆머리를 수평으로 자른다는 것이 특징이다.
옛날 일본의 지체 높은 집안 아가씨(히메)들이 하던 헤어 스타일이란 뜻으로 '히메컷'이라고 불린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발산하며 기품 있고 도도한 성격을 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20대 젊은 여자 친구들 머리가 하나같이 비슷했다. 앞머리는 뱅스타일에 볼 양쪽에 구레나룻처럼 애교머리를 내서 반묶음을 하거나 포니테일로 묶고 있었다. 처음에는 저런 머리스타일 신기하네. 왜 저렇게 머리를 잘랐지? 라며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자꾸 보다 보니까 저 머리 나도 해보고 싶다고 바뀌었다. 보다 보니까 중독되었나 보다. 아니면 뭐에 홀렸나?
원래 앞머리를 좋아해서 앞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앞머리 싫어하는 남편 만나 그 이후로는 잘 자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앞머리도 있고 양 옆에 애교머리는 넓은 내 광대와 사각턱을 가려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드니 당장에 미용실에 가고 싶었다.
어떤 머리 스타일인지도 모르고 일본여자들 머리를 얘기하며 남편에게 이렇게 잘라보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바로 '히메컷'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히메컷'을 어찌 아는지 모르겠지만 하도 잡지식이 많은 사람이라 놀랍지도 않다. 그래서 '히메컷'을 검색해 봤다. 많은 연예인들도 도전해서 예쁘게 화보도 찍고 있었다. 특히 수지는 원래도 이쁘지만 히메컷을 하니, 더 돋보이고 예뻐 보였다. 수지 외에 송혜교, 트와이서 모모 등 많은 연예인이 도전하고 있었다.
원래 나는 참 보수적이다. 그리고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 튀는 거 좋아하지 않고 무난한 색깔의 옷을 좋아하며 깔끔한 정장스타일을 좋아한다. 염색도 결혼하면서 처음 해봤을 정도다. 반면 우리 집 남편은 꾸미기 좋아하고 트렌디한 것을 추구한다. 10년 전에 다닌 회사 시절에는 별명이 '샤이니'였다. 샤이니처럼 꽃미남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중요!!) 샤이니처럼 알록달록한 바지색을 입는다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 정도로 패션과 유행에 민감한 남자를 만났다. 남편은 내 스타일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보수적인 나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랬던 나인데, 갑자기 '히메컷'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과감하게 잘라 보고 싶었다.
사실 현실에서 히메컷을 시도하는 것은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애니메이션이나 연예인이면 모를까 한국에서는 매우 희귀한 헤어스타일이다. 머리를 묶을 때도 이 부분을 묶지 않으면 어정쩡해 보일뿐더러 잘 묶이지도 않는다. 관리하는 난이도도 높다. 앞머리, 뒷머리를 지속적으로 쳐주는 것은 둘째치고 윤기 나는 긴 생머리를 관리해 주는 것이 가장 큰 골칫덩이라고 한다.
다양한 히메컷 사진들을 보며 히메컷의 폐해사진도 보았다.
우리나라에 이미 예전부터 히메컷을 하셨던 분이 있다. 바로 '최양락'씨. 무려 2011년부터 했다고 한다. 유행을 12년 전부터나 앞섰던 분.
이런 사진들도 보며 자르지 말까도 생각했다. 그래도 한번 마음먹은 거 해보기로 결심했다. 흐지부지 되기 전에 얼른 미용실에 디자인컷을 예약했다. 만약에 정말 안 어울리면 실삔 꽂아 가리고 다니지 뭐 하며 생각했다.
드디어 용기 내서 자르긴 했는데, 미용실에서 부터 거울을 보는 내내 나는 심란했다.
'점점 최양락 씨의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도 아니고 C컬파마를 한 것도 아니고 쭉쭉 뻗은 어정쩡한 머리에 볼륨 없고 얼굴에 딱 붙은 머리. 얼굴은 볼살 통통이라 살집이 가려지지 않고. 어색하기 그지없는 내 모습과 마주해야 했다.
역시 연예인만 소화가능한 머리였다. 얼굴 작고 이목구비 뚜렷하고 예쁜 사람만 소화할 수 있는 것 같다.
애들도 엄마 안 같다고 했다. 쌩얼에 눈곱이 끼고 머리 떡져도 예쁘다고 해주는 아들들인데, 예쁘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남편은 보자마자 웃음을 참는다.
돌려 돌려 말한 한마디.
"얼굴 살 좀 빼면 괜찮을 거야. "
다이어트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다이어트하면 어울려지는 걸까?
괜찮다. 머리는 곧 자라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