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병원 다닌 시절 직장 후배의 소개팅으로 만났다. 우리는 동갑내기로 커플 아이템을 유난히 좋아했다. 커플 펜 같은 문구템은 기본, 커플 후드티와 커플 운동화 장착에 이어 커플 자전거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주황, 하늘 두 색으로 맞춘 알톤 자전거.
자전거를 구매한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한강을 향해 달려 나갔다. 붉게 변하는 노을이 진풍경이었다. 반짝이는 별처럼 자전거 조명을 켜고 늦도록 자전거 드라이브에 푹 빠져들었다.
그 때 두 개였던 자전거는 하나만 곁에 남았다. 하늘색 내 자전거.
(남편 자전거는 많이 타지도 못했는데 없어졌다. 어디서 엿 바꿔먹었는지도;;)
풋풋했던 하늘색 자전거의 주인은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두 아들이 자라는 동안 하늘색 자전거는 멈춰있었다. 아들 둘과 함께 자전거 타는 모습을 떠올리는 나의 상상 속에서 가끔 페달이 움직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인생의 미션이 있었다.
바로 '남편에게 같이 나가자고 하는거. '
남편이 순도 백 프로의 집돌이라는 사실을 결혼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야 숨이 쉬어지는 나와 집에서의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남편. 어떻게 이렇게 다른 성향의 남녀가 만난 걸까. 연애 시절의 남편이 부던한 노력으로 나의 취향에 맞춰주었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아들의 자전거도 내가 직접 가르쳤다. 첫째 아들도, 둘째아들도 모두 엄마가 가르치는 가족. 하나만 생각했다.
우리 가족 네 명이 함께하는 자전거 트레킹의 꿈.
그 꿈은 결혼 10년 만에 이루어졌다.
화창한 날씨.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푸른 하늘.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였다. 집에서 쉬고 싶던 남편은 끌려 나오다시피 하여 자전거 핸들을 겨우 잡았다.
아빠, 엄마, 10살인 첫째, 7살인 둘째. 4개의 자전거가 한 줄 기차처럼 나란히 줄지어간다. 나오기가 죽기보다 싫다던 남편이 두 손 다 놓고 자전거로 묘기 대행진을 한다. 첫째가 아빠의 묘기를 이기겠다고 한 발을 높이 쳐든다. 페달을 열심히 밟지만 둘째의 작은 자전거는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선 채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가족의 속도를 맞추려 안간힘을 쓴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맨 뒤에서 페이스를 조절하는 건 늘 나의 몫이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면서 둘째의 엉덩이춤을 볼 수 있다니, 너무 귀엽고 행복해져서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자전거부대의 목적지는 없다. 동네 하천을 따라 자전거 길이 닿는 대로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 어디까지 가면 끝이 날까? 미로 찾기 하듯이.
한 시간쯤 달렸을까. 다들 배고파진다. 돌아오는 길에는 와퍼가 맛난 햄버거집. '버거킹'에 들른다. 소스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맛있게 햄버거를 먹고 나면 그야말로 행복이 두 배, 두둑해진 배만큼 행복감을 채우고 집에 들어온다.
집에 도착한 남편의 외마디!
“임무 완료!”
저렇게 방으로 들어가면 반나절은 꼼짝도 하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그래, 당신 오늘 애썼어. 나도 인정.
그날이 시작이었다. 이제 자전거를 타는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최고의 이벤트가 되었다. 잔소리 화산이 폭발한 날에는 아이에게 감정 해우소가 되어주었다. 동네 어디든 구석구석 가능한 최고의 이동 수단이기도 했다. 야심한 밤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서면 일탈의 짜릿한 기분마저 들었다. 집돌이 남편도 마다하지 않는 자전거 심야 데이트, 12년 전 풋풋했던 그날 속으로 우리는 가끔 달린다.
자전거가 우리 가족에게 주고 있는 행복감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한 줄 요약: 자전거는 평범한 일상을 바꿔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우리 가족 행복 아이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