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사랑 아들의 공간을 위해
베란다는 보통 '건드리지 않는 공간'이다. 눈에 띄지 않을 뿐 아니라, (나만 그런가?) 더러워졌다 싶으면 커튼으로 덮어 숨기면 그만이다. 자주 가는 공간이 아니니 외면하게 된다. 베란다 말고도 청소와 정리가 필요한 공간은 넘쳐나니, 우선순위 끝자락쯤에 있는 공간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부엌과 거실이 항상 난장판이었으므로 베란다가 눈에 들어올 리가 있나. 그런데 큰 마음먹고 베란다 청소를 했다. 정말이지. 큰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공간. 마지막으로 정리했던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아니, 결혼하고 그 공간을 정리한 게 다섯 손가락 안쪽인 것 같다. 그렇게 '안 본 눈 삽니다.'로 피하고 정리하기 싫은 공간이다. 심지어 집안일 못하는 내가 정리할 수 있는 범위 밖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할 수 없다 생각하고 엄두가 안 나는 공간을 청소하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첫째 아들 때문이다. 아들은 말 그대로 '곤충 소년'이다. 4살 무렵에 "엄마 사마귀가 멋있는 것 같아."라는 말과 함께 곤충 사랑에 푹 빠졌다. 10살이 된 지금까지도 반 평생을 변함없이 곤충 소년으로 살고 있다. 참 희한하다. 곤충을 싫어하는 아빠와 엄마 밑에 곤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나다니. 아마도 자연을 좋아하는 엄마의 영향을 받은 걸까? 아니면 아빠의 어릴 적엔 곤충을 좋아했나?
곤충소년은 좋아하는 거에만 그치지 않는다. 곤충 잡기를 좋아하고 키우며 관찰하고 싶어 한다. 처음에는 "안돼."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밖에서만 관찰하고 놔주라고. 그러다 점점 허용하게 되다 보니, 우리 집에 많은 곤충들이 살게 되었다. 사슴벌레 6마리, 장수풍뎅이 3마리, 장수풍뎅이 애벌레 4마리, 사마귀 2마리. (으윽. 곤충 싫어하는 엄마는 이거 쓰면서도 몸에서 찌릿찌릿 전기가 온다.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쩔 수 없는 마음)
곤충 사육만큼은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하기 싫은 공부 열심히 해서 원하는 소원들이 '곤충 사육세트', '곤충 먹이' 들이었다. 아들에게는 이게 '힐링'이니, 인정할 수밖에.
그렇게 하나 둘 늘어나는 곤충만큼 사육 공간이 필요했다. 공간이 없어 거실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영양제 2알을 먹고 레모나까지 챙겨 먹고 야무지게 검은 라텍스 장갑을 끼고는 아이들에게 선포한다.
"얘들아, 우리 베란다 청소 하자. "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막막하다. 일단 쓰레기부터 정리하기로 한다. 재활용할 것과 쓰레기를 모은다. 봉지 2개를 가져와 쓰레기를 정리한다. 정리의 시작은 쓰레기를 비우는 거다. (그만큼 쓰레기 정리도 안되어 있다) 봉지에 넣다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세탁기 문짝에 고리를 붙이고 정리를 한다. 한결 수월하다. 큰 봉지에 한가득 쌓이면 봉지 바꿔 주고 반복한다.
쓰레기를 정리하며, 먼지가 뽀얗게 쌓여 더러워졌지만 다시 써야 하는 물건들이 보인다. 물티슈로 쓰윽 닦아서 먼지를 닦아낸다. 물티슈로 해결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들도 있다. 아이들의 곤충 채집통이 너무 더럽다. 아이들에게 화장실 가서 깨끗이 닦아 오라고 시킨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물건들이니, 신나게 씻어 온다. 아이들에게 이런 말도 잊지 않고 한다.
"얘들아, 엄마 정리 잘 못하는 거 알지? 그런데도 이렇게 열심히 정리하는 거는 다 너희들 때문이야. 우리 아들에게 곤충사육하는 공간 마련해주고 싶어서. 그러니까 우리 열심히 일하자." (정리하는 티를 팍팍 낸다)
곤충채집통 설거지를 어떻게 한 건지, 아이들 옷이 죄다 젖어있다. 물이 뚝뚝 떨어져 돌아다니고 있으니,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얘기한다.
" 화장실 가서 물총 싸움 하고 있어. 그리고 샤워해."
아이들은 물총 싸움이라는 말에 바로 신나서 달려간다. (단순한 녀석들^^) 바로 씻으라고 했으면 싫다고 아우성일 게 뻔해서 잠깐 잔머리를 굴렸다. 이제 다시 정리모드. 비워진 쓰레기만큼, 공간이 나오고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슬리퍼가 있어도 맨발로 다닐게 뻔한 아이들을 위해 바닥까지 열심히 닦아낸다. 점점 깨끗해진 공간을 보니 차오르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생긴다. 집안일 못하는 엄마인데, 오늘만큼은 나 자신을 칭찬하게 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긴다. 다른 공간도 한번 건드려봐야겠다는 생각이 셈 솟는다. (건드려줘야 하는 공간이 너무 많기에 언제 다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베란다를 청소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지 2시간이 넘게 흘렀다. 손이 빨라 뚝딱뚝딱 정리하는 사람에게는 30분 밖에 안 걸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속도에 맞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느긋하게 정리를 했다. 그리고 하다 보니 완벽주의 본성이 떠오르며 꼼꼼히 하게 되었다. (완벽주의인데 게으른 이런 아이러니;;) 부디 이 공간 오래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에게도 말한다. 우리 이 공간 소중히 가꿔서 이 상태 유지하자고.
정리한 지 며칠이 지나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베란다를 쳐다본다. 물건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있다.
"아들, 베란다가 또 더러워지려고 하네. 5분만 정리하자."
2시간 아니고 5분이면 정리가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