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이 떨어졌다

냉장고를 정리할 때

by 다몽 박작까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계란이 떨어졌다. 종이 재질의 하얀 계란 상자 사이로 노란 액체가 흘러나온다. 어제 사온 계란이었다. 유효기간이 쓰인 포장 종이도 뜯지 않은.


남편이 그런 것도, 애들이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문 열다 그랬다. 계란을 이상하게 넣은 것도 바로 '나'다. 어느 누구를 탓하랴.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다. 더러운 바닥에 깨진 계란까지 더해지니 기분 좋을 리 있나.


짜증이 솟구쳤지만 '휴-'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누구한테 화난 걸까? 내가 그러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 기묘한 순간)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확인한다. 역시 1개만 깨진 게 아니다. 1개는 완전 박살 났고 3개는 살짝 깨져있다. 물티슈로 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계란 상자를 닦아 본다. 살짝씩 깨진 3개의 계란은 '소생'해야 한다. 바로 '계란 프라이'로. 잠깐 멈칫하다 곧바로 가스불을 켠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살짝 깨진 계란 3개를 터뜨린다. (너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알맞게 반숙으로 익히고 접시에 담아 곧바로 먹는다. 계란 3개를 먹으며 생각한다.


'냉장고 정리가 시급하다.'


계란 3개를 야무지게 먹고 나서 힘차게 냉장실 문을 열어 본다.


'휴-' 또다시 한숨이 푹푹 나온다.


아주 꽉꽉 들어차있다. 마트 가서 사 온 물건들이 테트리스처럼 박혀있다. 문 열자마자 계란이 떨어진 이유도 문칸 빈 공간에 대충 넣어놔서였다. 정리가 시급했다.


사실, 정리가 시급하다고 느낀 건 며칠 되었다. 얼마 전부터 냉장고 문이 제대로 안 닫히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닫아도 다시 살짝 들뜨는 느낌이 있었다. 문이 살짝 열리니, 온도를 더 내리려고 냉각기가 더 세게 돌아갔나 보다. 요플레가 얼었다. 정리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 없다는 핑계로, 아니 귀찮다는 핑계로 못 본 척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문이 왜 잘 안 닫히는 것 같지. 고장인가? ' 생각했다. 신혼살림으로 산 냉장고니, 10년 된 냉장고였다. 요새 예쁜 냉장고들 많은데, 이 참에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고장이겠거니, 남편에게 슬쩍 얘기를 꺼냈다.


나 : 여보, 우리 집 냉장고 문이 안 닫히더라? 바꿀 때가 되었나 봐.

남편: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그런 것 같아. 좀 비워봐.


그 생각을 안 해 본건 아니었다. 정리를 하고도 문이 잘 안 닫히나 정리를 해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참에 예쁜 냉장고로 바꾸고 새 마음 새 뜻으로 냉장고를 사고 싶었다. 야심 찬 계획이 무산되어 정리를 시작했다.

어차피 한 번에 다 할 생각 하면 엄두도 안 나고 하기도 싫으니, 가볍게 마음먹었다.


'상한 거나 오래된 거를 버리자.'

'한 칸만 건드려 볼까?'


모른 척 쳐다보지 않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야채와 과일들이 다 얼어서 못 먹는 상태였다.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조리 비워내었다. 반찬 뚜껑 하나하나 열어보며 먹을 수 있는 건지 확인하였다. 못 먹는 것은 비워냈다.


그렇게 한참을 비워냈다. 얼마나 비웠을까? 숨도 못 쉴 정도로 빵빵했던 냉장고가 여유가 생겼다. 대충 닦아가며 정리를 했다. 정리를 마친 후, 싱싱한 야채가게에 들러 야채를 사고 과일을 샀다. 다이어트하고 한결 깨끗해진 냉장고에 기분 좋게 차곡차곡 정리했다.



이렇게 마무리하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들었다. 냉장실 문 칸과 야채칸은 정리를 못했다. 그래도 깨끗해진 공간을 보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더불어 뿌듯 뿌듯 기분이 상쾌하다. 냉장고문도 들뜸 없이 꼭 힘 있게 닫힌다.


정리를 다 하고 생각한다.


못 본 척 안 보면 그만이지 생각했지만

굉장히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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