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디오 괜찮아도 괜찮아

네 모습 그대로 그래 괜찮아 괜찮아도

by 초아


초밥 도시락집에서 일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새벽 5시 반에 출근해서 12반이면 끝이 난다. 오후 1시부터 밤 9시 전까지, 약 8시간이 온전한 내 시간이었다. 시간이 많아졌는데 일상은 단순해졌다. 뛰고 샤워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는 등의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바쁠 때, 아니 사실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이 바쁠 때 여유가 생기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 새로운 걸 해야 한다는 생각에 휴식을 온전히 취하지 못했다. 외국에서 사는 것 자체를 도전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집에 있을 때만큼은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 안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나의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표를 짤 수 있다는 자주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방학 때면 아버지가 강조하셨던 시간계획표가 있었다. “이제 뭐 하는 시간이야, 가서 보고와.”하시면 시간을 동그랗게 만들어놓은 피자판의 아주 잘게 쪼개진 피자를 들여다보았었다. 그땐 먹기 싫은 맛도 있었지만 이젠 내가 좋아하는 맛의 피자를 취향껏 만들 수 있었다. 내 몸의 상태의 따라 피자 조각들은 작아지고 커지기도 했다.


학원도 백화점도 없어 보이는 이 잔잔한 마을에는 친구도 없고 가봐야 할 카페리스트도 없고 밤마다 유혹하는 배달서비스와 막걸리집도 없다. 자연스레 나의 경로는 일과 집 그 반복이었다. 일하는 시간은 많지 않지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무거운 쌀을 지어 밥을 푸고, 빠른 속도로 초밥을 만들고 라벨도 붙여야 했다. 일이 끝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긴장이 풀려 낮잠을 잤다. 집에 돌아와서는 독일어 공부를 한다. 4시가 되면 열쇠와 이어폰을 들고나간다. 딱 공원 한 바퀴. 뛰거나 걷다 돌아오면 30-40분이 지나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독일사람들보다 터키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독일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사는데 이 지역엔 터키사람들이 많다. 날이 좋으면 너도 나도 잔디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물담배를 피웠다. 터키사람들은 일찍 결혼하고 아이들을 많이 낳는다. 그게 삶이고 매일인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촉촉해진 옷을 벗어던지고 곧장 샤워실로 향한다. 노래를 틀어놓고 따듯한 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하게 닦은 후에는 찬물로 허벅지를 공격한다. 고통으로 시작되지만 감각이 없어질 때 즈음 상체 그리고 머리를 재빨리 마비시켜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따듯한 물로 몸을 달래주면 온몸이 따듯한 물에 감싸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코끼리만 했던 허벅지가 타조 다리처럼 가뿐해진다. 작은 습관이 반복되면서 만족감이 되었다.


나는 어떤 자리에 있는 걸까? 사람들은 시간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젠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려고 한다. 하루는 슬픈 순간도 있고 기쁜 순간도 있다. 아름다운 건 설렜지만 무뎌지고 불쾌한 건 익숙해졌다가도 다시 불쾌해진다. 태양과 달은 하루도 빠짐없이 우주를 돌고 있다. 초밥집에서 일하냐고, 꿈은 포기한 거냐고, 얼마나 벌고 있는 거냐고 스쳐 지나가는 관심도 여긴 없다.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도 괜찮다. 내 모습 그대로여도 괜찮다. 발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뭔가 이루지 않아도 괜찮은 땅이다. 시간의 개념 없이 별은 그 자리에서 항상 빛나는 것처럼 나는 나대로 빛나며 행복한 순간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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