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Dream a little dream of me

꿈속에서라도, 나를 떠올려줘

by 초아

집을 가졌으니 이제 일을 해야지.

내가 집을 구한 에센이라는 지역은 베를린처럼 영어를 보편적으로 쓰는 지역이 아니다. 독일어는 갓신생아였고 말이다. 독일에는 초밥집이 많았는데 마트에 도시락을 파는 초밥 체인점이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 지낸 방 크기와 비슷한 2평 남짓한 작은 매장 안에서 손님응대도 크게 없는, 해야 할 일을 끝내면 퇴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좋았다. 하루에 딱 6시간 반만 일하는 것도 좋았다. 홈페이지에 내 정보를 보냈다. 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일하는 곳이라 해당 나라에 맞게 채용매니저를 연결해 주었고 면접날짜를 잡았다. 면접 날, 정말 당황스러웠다. 일을 구하는데 필요한 증명서가 10개나 되는 것이다. 어떤 질문이 오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숙제만 가득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독일 워홀러들이 가진 서류로는 미니잡만 가능한 거였다. 세금을 제하지 않는 500유로(당시 60만 원가량)가 마지노선이었다. 여행도 가고 싶고 돈도 모으고 싶어서 온 워홀인데 생활비만 벌 수는 없었다. 집을 계약하고 외국인관청에서 집계약 증명서도 받아야 하고, 독일 보험도 다시 들어야 하고, 세금번호도 받아야 했다. 독일 관공서는 느리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처럼 동사무소에 가면 일사천리로 다 해결해주지 않는다. 안멜둥(거주증명서)를 받기 위해 외국인관청에 가야 했다. 예약 없이는 업무를 볼 수 없고, 예약 잡기부터 전쟁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하루에 예약할 수 있는 타임이 정해져 있고 예약이 다 차지 않는 시간대에 예약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분들이 과도한 업무와 민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보면 이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너는 서류가 필요하지만, 난 내 직장에서 대우받을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해.’ 노동자의 권리가 더 보장되어 있다고 느꼈다. 이사하고 나서 한 달 반 만에 10개의 서류를 다 준비할 수 있었다.


증명서가 날아오기 전까지 또 한 번의 여행을 계획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불안감과 나를 방치해 두는 관리자에 화가 나는 마음을 심신 단련 중이다. 여행이라도 가지 않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헛되어질 것 같았다. 나 홀로 3박 4일 프랑스 파리 여행이었다. 내 인생의 파리라니? 에펠탑이라니? 네덜란드처럼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옆동네지만 엄연히 해외였고 혼자는 오롯이 처음이었다. 이동하는 버스도 알아보고, 숙소도 예약해야 한다. 여행은 누가 보채지도 않고 가야 할 의무도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로지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많이 알아보고 움직이는 만큼 보고 느낄 수 있다. 비싸거나 값싼 것도 내가 선택하는 일이다.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고 혼자 하는 여행은 오로지 내 취향을 맛볼 수 있다. 언어 공부를 하는데 유튜브 선생님이 유머에 대한 얘기를 했다. 유머와 함께하면 세상은 좀 더 가벼워진다고.

“에라이, 파리나 가야지. 일 시작하기 전에 여행이나 다녀오라고 한 거구나~ 그래 고마워~다녀오면 꼭… 꼭… 꼭!!!! 일 시켜줘~”

유머와는 거리가 좀 있어서 이게 유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4월의 프랑스는 아름다웠다. 맑은 하늘에 수제비 구름들이 동동 떠있었고, 후드점퍼와 스카프 하나로도 괜찮은 스산하면서도 따듯한 날씨였다. 다리에는 금으로 포인트가 있는 영웅 동상들이 우뚝 서있었다. 파리에서 가야 할 미술관, 궁전, 대성당, 묘지를 돌아다니고 크루즈도 탔다. 기억에 남는 장소는 우연히 마주친 몽빠흐나스 묘지다. 김영하 작가님이 여행을 가면 묘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가를 보고 온다는 글을 보기도 했고 유럽사람들은 묘지를 공원처럼 다닌다는 말이 궁금했었다. 사람들은 묘지에서 산책을 했다. 한 할아버지는 벤치에 앉아 햇빛을 받고 있었고 코트를 입은 한 남성은 담배를 물고 한 비석으로 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오래된 친구를 오랜만에 찾아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아하고 고상한 글씨체로 적힌 한글 이름 앞에 소나무가 심어진 비석을 보기도 했다. 13살밖에 되지 않는 어린 소녀의 비석과 그녀의 가족들이 두고 간 예쁜 꽃과 그녀의 사진, 고양이 피규어들도 있었다. 죽음은 삶과 함께 있었고 삶이란 게 무섭다는 단어보다 행복이란 단어와 오묘하게 더 가깝게 느껴졌다.

유난히 도시에 하트들이 눈에 띄었다. 모두 연인과 가족과 함께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혼자여서인지, 이곳이 그런 건지. 사랑이 잔재한 파리에서 어떤 곳을 가도 미래의 가족들을 상상했다. 전시관을 다닐 때도, 몽마르뜨 언덕을 걸을 때도, 사랑의 벽 앞에서 한국어로 된 사랑의 문구를 찾을 때도 미래의 남편과 내 아이들과 함께 다시 파리에 올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사랑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 너 사랑해.’ 노을이 질 때 즈음 와인과 샐러드를 사다가 에펠탑이 보이는 트로카데로광장에 앉았다. franprix라는 프랑스 편의점에서 와인따개 없이 열 수 있는 프랑스 2년 산 레드와인과 먹고 싶은 종류를 골라 담은 샐러드였다. 와인 나발을 불으며, 흰색 유선 이어폰을 꽂고, Pink Martini의 Dream a little dream of you를 들었다. 환상에 빠져 허공과 우주와 대화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기분 좋게 취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미래의 아이들과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는 너희와 함께 이곳에 있는 걸 상상했어. 너희에게 더 넓고 자유로우면서도, 인간을 위해 투쟁하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그런 곳을,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 삶이 조금 힘들거나 버겁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믿어. 그리고 떠나! “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던 나는 당신을 마음 깊이 존중할 거예요. 저는 지금 생에서 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당신도 그러고 있을 테죠? 잘 살다가 때가 되면 만나요. 함께 할 그 날 봐요.“


9시 정각, 반짝거리는 에펠탑을 보고 신난 발걸음으로 호스텔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