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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May 13. 2024

불안의 어원

불안도 잠재우는 우리집 방법

"그럼, 자녀분이 몇학년이세요?"

"올해 고1,중1,초4나이예요."

"아! 많이 크네요. 어느 학교 다니세요?"

"음" 하고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곤 이내 답한다.

"저희애들은 학교아니고 집에서 공부하는 홈스쿨해요."

"어머나, 말은 들어봤는데 주변에 이런 집이 있다니 신기해요."

그렇다 우리집은 이 작은 도시에선 그야말로 말로만 책으로만 tv프로그램에서만 볼 법한 신기한 가정에 속한다.

이정도가 되면 이야기의 주제는 너와 나의 만남이 아닌 스쿨러와 홈스쿨러로 바뀌는 수순이다. 예전엔 좀 피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대화 주제를 넘어 오히려 나름 즐기는 경지까지 오르게 되었다. 대화의 핑퐁이 좀 이어가고 대부분의 만남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에 몰입해야 하는 시기인데 학원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 혼자 하는데 불안하지 않으세요?"




현대사회에서 '불안'이라는 주제는 참 다방면에 쓰임받는 것 같다. 

국어사전에선 불안을 뭐라고 정의할까 싶어 찾아본다. 불안은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리고 뒤숭숭함, 몸이 편하지 아니함이라고 정의한다. 즉,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은 불편한 상태를 일으켜 불안이라고 하는것 같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거 아닐까. 막 태어난 갓난쟁이는 뭐 불안할까 싶지만 기저귀가 찝찝하고 잠을 자고 싶은데 맘처럼 되지 않아 불편하고 배고픈데 어찌하지 못해 불안하다. 좀 더 자란 꼬꼬마는 어떤가.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은데 못놀게 할까봐 불안하고 살살 단것을 못 먹게 될까봐 불안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불안은 더 가속화 된다. 친구들이 나 빼고 생일 파티할까봐 불안하다. 친구들은 너끈히 풀어내는 수학문제가 나에겐 외계어처럼 보일 때 좀 늦을뿐이야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난 왜 안되지라며 불안하다. 친구들이 학원으로 몰려가는데 나만 혼자 집으로 가야 할 때 불안하다. 한마디로 나만 뒤쳐질것 같은 느낌으로 불안을 느낀다. 

본격적인 공부의 시작이라는 중학생이 되면 다녀야 하는 학원과 나오지 않는 성적, 결정은 해야하는 진로 등은 지금껏 불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고등학생이라면 말뭐(말해뭐해)수준이다. 

그런 과정속에서도 자신을 다독이며 견뎌내 청년기에 접어들면 취업이나 결혼이 버티고 있다. 그 과정을 거쳐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면 내 삶의 견적서같은  자식의 삶으로 불안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인생의 길에 불안은 어찌보면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참 소중하고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을 알면서도 이 시대속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면  외계에서 온 사람일수도 있을 것이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둬야 하는 소위 경단녀가 되어 아이들이 흔들릴지언정 다시 자신의 궤도로 순회하기를반복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단단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 하나만으로 시작한 홈스쿨이지만 사실 그 결과는 알수가 없다는 것이 더욱 불안한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결국은 지들인생이기 때문이다. 난 이 단순한 사실을 아는데 홈스쿨을 한지 3년이 지나서 깨달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와 아이들과 제 2의 탯줄을 잘랐다. 첫번째 탯줄은 내 몸에서 분리되는 출산의 순간이고 두번째는 아이들이 걸어가는 길이 비틀거려 위태롭게 보일때 조차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앞서서 재촉하기보다 지속적인 관심과 인내로 너의 삶이 어떠하든 넌 존재로 사랑받는 존재임을 표현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다. 그런데 그게 현실에서의 삶에선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정임을 나는 이제 안다. 그러나 그 길을 통과해야 함도 안다. 그것이 자녀와 내가 둘다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녀는 삶을 자신의 그릇만큼 책임지면서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어느정도 클때까지 사랑으로 돌보되 자신의 삶도 돌봐야 한다. 그렇게 서로가  자신의 삶을 아끼며 사랑하며 소중하게 여기며 각자의 삶을 살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걸어야 가야 한다. 

자녀를 키우면서 정말 부모로서 먼저 살아가는 선배로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난 그렇게 우리 아이들이 걸어가는 길을 뜨겁게 응원함과 동시에 내가 걸어갈 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 

우린 그렇게 불안함 속에 하나처럼 각자를 다독거리며 일어선다.

우린 그렇게 하나처럼 각자 걸어간다.

우린 그렇게 하나처럼 각자의 인생이라는 날씨 속에 여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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