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히 기다리면
"ooo간호사 부모님이시죠? ooo간호사가 교통사고가 나서 좀 다쳤습니다. 지금 병원으로 와야 될 것 같습니다."
2004년으로 기억한다. 추석 명절 뒷날 동트기 전 새벽이었다. 난 병원의 간호사였고 이브닝(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하는 근무)근무였고, 가족들은 명절을 보내기 위해 친가로 갔다. 명절이라고 친지들과 함께 보내는 일상이 당연하지 않은 것은 간호사에게는 당연했다. 인수인계까지 근무를 마치고 명절이고 환자들도 많이 없고 집에가도 가족도 없이 혼자 있어야 하니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과 간호사실에서 이것 저것 음식을 먹으며 시시껄렁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여자 셋이서 여행부터 연애, 결혼 얘기까지 돌고 현실로 돌아오니 새벽 3시!! 차가 없었던 나는 선배 간호사의 차의 조수석에 얹혀 오는 길이었다.
"어...어..."
'쾅'!
헤드라이트 불빛이 너무 밝다가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렇다. 좌회전 신호 대기를 하고 있던 우리 차와 교차로 맞은편 좌회전 차로에서 직진한 상대편 차가 정면 충돌을 한 것이다. 조수석에 설치되어 있던 헤어백과 측면 에어백까지 다 터졌다고 한다. 에어백가스때문일까 난 정신을 잃은 채로 내가 근무하던 병원으로 119를 타고 갔다고 한다.
후일담으로 온 병원에 '코드블루(병원 내 응급상황을 알리는 멘트)'급의 응급소식이 돌았다고 한다. 몇시간 후 부모님과 담당의사선생님이 오셨고, 턱관절과 오른손목에 큰뼈 두개가 골절이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20대 초반에 시작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마주했다. 정신이 깬 후 몇차례의 수술과 시술을 마치고 병원에 복귀했다. 20대 여자의 오른손목에 그어진 선명한 15cn의 수술 자국. 성형을 했지만 선명했다.
상대편차주는 만취상태로 면허취소의 음주운전이었고, 중앙선 침범에 신호위반이었다고 한다. 어느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어린 아기의 아빠였다고 한다. 더군다나 중대과실이라 본인은 합의금도 없으니 그냥 형량대로 살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 후 어떤 상대차량에 대한 소식도 들은 것도 아는 것도 없다.
난 그 사고로 오른 손목의 신전(뒤로 젖히는 각도)이 되지 않았다. 우리 병동은 노인환자로 다들 혈관 찾기가 수맥 찾기 수준이었다. 난 그 병동에 3년차 병아리를 막 벗어난 간호사였다. 일을 못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 조차 어려운 연차였다.
밤이면 밤마다 병원 내 교회 예배당을 찾았다. 근무하는 병원에서의 입원생활은 그렇게 친절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아 낮에는 괜찮고 씩씩한 척을 해야 했다. 예배당 문을 열자마자 터진 눈물은 새벽녁이 되어서야 멈추었다. 병원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교통사고 환자를 마주하면서 정작 나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사건이었다.
밤에는 울고 낮에는 보험회사와 법 자문을 구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은 여전히 의도하지 않은 채 흘러갔다.
<지선아 사랑해>와 <꽤 괜찮은 해피엔딩>의 저자 이지선님은 인터뷰에서 밝혔다.
"가해자를 원망하지 않아요. 가해자에게는 합의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가족이 없었지만, 저에게는 정말 든든한 가족이 있었어요. 누구를 원망하면 마음이 아파요. 제가 다치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다쳤을 거 아니에요. 습관적으로 감사할 것을 찾으려고 해요. 손가락 마디가 조금 더 긴 왼손도 감사하고 발은 멀쩡해서 또 감사하고, 피부에 점점 주름이 생기는 것도 감사해요. 꼭 이야기하고 싶은 건, 남들과 비교해서 얻는 감사가 아니라 절대적인 감사를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누가 저를 보면서, ‘나는 이지선보다 나으니까 행복해’ 이렇게 생각했다가도 또 성유리 씨를 보면 이런 감사를 못할 거예요. 비교해서 얻는 감사는 언제나 무너져요. 자신 안에서 절대적인 행복과 감사를 찾아야 해요.”
그 어둠의 터널을 울며 웃으며 체념하며 기뻐하며 결국은 감사에 닿았다. 나 또한 그랬다. 추후 사고 차량 사진을 봤을 때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차를 태워준 선배간호사의 수척해진 얼굴에 괜찮다고 말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나도 죽음이라는 곳을 향해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 감사했다. 많은 병동 친구들과 선배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는 사람이라서 감사했다. 왼손으로 힘든 부분을 묵묵히 옆에서 지켜준 가족들이 아무일 없는 듯 자신의 일상을 살아줘서 감사했다. 그렇게 감사함으로 병원 생활을 마치고 여전히 신전하기도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오른 손목을 부여 잡으며 새로운 꿈을 꾸었다.
돌아서 생각 해 보면 그 시간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더욱 단단 해 지며 내게 주어진 사람, 관계, 일, 시간 등 어느 것 하나라도 우연히 되는 대로 되는 건 없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수 많은 이들의 응원과 기도와 헌신으로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나도 그렇게 살아야 된다.
이지선님도 말했다. '사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나도 동일한 고백을 한다. 오히려 지금이 좋다. 고난과 어려움으로 더욱 깊어진 나의 삶이 좋다. 이전보다 나를 사랑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고, 나누기 위해 공부하는 지금이 좋다. 이 공부가 어디서 어떻게 흘러 갈지는 모른다. 그러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대로 잠잠히 기다리며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또 다른 길을 마주하고 그 마주한 길에 또 잠잠히 걸어가다보면 또 다른 길을 만나고 그 과정에 난 성장과 성숙이란 이름을 얻을 것 같아 오히려 좋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로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예레미야애가 3: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