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는 남자

by 지영민

무엇이든 내 취향에 맞추어 주던 그와 처음 싸운 건 떡볶이 때문이었다. 별 모양, 하트 모양 밀떡이 매콤 달달한 국물과 조화를 이룬 그 집 떡볶이는, 친구들과 내가 병원 3교대 생활에 지친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먹는 '소울푸드'였다. 당연히 그도 이 떡볶이를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러나 팔짱을 낀 채 한 입도 안 먹고 버티고 있는 모습에, 처음에는 당황했고 점점 화가 치밀었다. 결국 떡볶이 한 접시를 다 먹지도 못 하고 일어섰다. 길거리에서 말다툼을 하고 씩씩거리며 각자 집에 갔는지, 아니면 그날 바로 어찌어찌 화해를 했는지, 17년이 지난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머지않아 콩나물 국밥집에서 2차전이 있었다. 나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싫어하셨던 아버지를 닮아, 매운 걸 잘 못 먹는다.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맵찔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땡초(매운 고추) 절임을 씨앗째 다진 후 고추장까지 더해 밥을 비벼 먹는 무시무시한 집안 출신이었다. 그와 연애를 하게 되었으니, 매운데 뜨겁기까지 한 콩나물 국밥을 먹게 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는데, 그때는 미처 몰랐다.


한 번은 참았다. 그도 내가 좋아하는 달콤한 디저트를 같이 먹어 주었으니 콩나물 국밥 한 번 정도는 같이 먹어줘야 예의가 아닌가. 두 번째는 회유를 시도했다. "그거 말고 옆집 설렁탕은 어때?"라는 제안에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결국 먹는 내내 맵다, 뜨겁다, 헤헤, 후후 거리면서 싫은 내색을 했다. 세 번째에는 실토했다. 나는 콩나물 국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번 입천장이 다 까졌다, 이렇게 말하자 "그럼 진작에 말을 하지 그랬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섭섭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그와 나는 계속 함께 하기 위해 서로의 다름을 알게 되고 때로는 양보하고, 나의 다름을 상대에게 알리고 그의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갔다. 음식의 향이나 맛에 둔감한 나는 매운 음식과 삭힌 홍어 빼고는 가리는 게 없다. 그런데 남편은 고기를 구워도 어떤 굽기로 익히지 않으면 맛이 없고, 마늘이나 후추, 바질 같은 것을 곁들이지 않으면 비린 내가 나서 못 먹겠다는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는 유별나다. 챙기고 신경 쓸 것이 많아 귀찮다. 그런데 그를 닮은 사람이 하나 더 나타났다. 바로 내 배 아파 낳은 큰 아이.


냉장고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고기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한 점도 안 먹는다. 볶음밥에 슬쩍 넣어도 다 골라낸다. 스테이크를 주면 살코기 아닌 부분은 다 발라내고 먹는다. 지방의 물컹한 식감이 기분 나쁘단다. 돼지고기를 굽고 있으면 곁에 와서 바질을 뿌린다, 냄새가 난다며. 그 좋아하는 사과, 수박도 식감이 버석거리면 입에도 안 댄다. 남편의 까다로운 입맛은 그냥 귀찮기만 했는데, 그를 닮은 내 아들의 이런 모습은 애가 탄다. 잘 먹고 쑥 커야 하는 시기인데 좀 먹어주면 안 되겠니, 야속하다.


요즘 복숭아가 제철이다. 브런치에 글 쓰는 작가님 중 한 분이 복숭아 농장을 하신다는 소식에, 복숭아도 딱딱한 것만 골라 잡숫는 남편 생각이 났다. 어느새 흰머리가 제법 난 중년이다. 지방에 발령이 나서 기러기 생활을 한다. 기숙사에서 혼자 밥 해 먹고 빨래 바구니를 들고 다닌다. 예전에는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고 억울했는데, 요즘은 흰머리에 구부정한 그의 뒷모습이 떠올라, 그의 팔자도 내 것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도 하나 먹어봐, 진짜 맛있다!" 하며 복숭아를 먹을 모습을 생각하며 한 박스를 주문했다. 이번 주말에 남편이 집에 온다. 복숭아를 박스에서 꺼냈다. 어찌나 포장이 꼼꼼하게 되어 있던지 한 군데도 상한 곳 없이 온전하다. 외할머니가 생전에 항상 말씀하셨듯, 과일은 배 채우려고 먹는 게 아니니 무조건 크고 예쁜 걸로 산다. 발그스레하게 잘 익은 복숭아를 보니 왠지 뿌듯하다. 혹시 손가락에 눌려 멍이라도 들라,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구석구석 솜털을 씻어낸다.


내가 운동 간 사이에 남편이 도착할지도 모른다. 개운하게 목욕재계한 복숭아 네 개를 쟁반 가득 담아서 식탁에 올려두었다. 복숭아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뿐인데 복숭아 사놓은 걸 보면 기뻐할까, 기차 타고 오느라 힘들고 출출했는데 늦은 저녁이지만 하나쯤 맛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을 나선다.


* 사진 : 봄꽃복숭아

이전 08화길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