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복선

죽음의 소리를 듣는 킬러의 탄생

by 지영민

"눈 안 깔아? 이 년아. 낳아주고 키워준 엄마도 못 알아보고, 어디서!"

당신을 낳아 준 사람에게 저주를 받는, 그 기분을 아세요? 엄마는 나를 무서워했어요. 새아빠를 제가 죽였거든요. 당연히 고백한 적은 없죠. 제가 실토를 했다고 쳐도, 열 살 먹은 꼬맹이가 아빠를 죽인 걸 누가 믿겠어요? 그런데 엄마는 귀신같이 알고 있었어요. 죽인 방법은 몰라도 범인이 나라는 걸요. 직접 대 놓고 니가 죽였냐고, 묻지도 않았어요. 내가 무서워서 못 물어보는 거죠.


죽인 이유요? 아빠를 죽이지 않으면 제가 죽어야 했거든요. 살기 위해 죽인 거죠.


"아아, 참, 또 맛없게 끓이고 있지?"

엄마가 뚝배기에 김치, 애호박, 돼지고기 앞다리 살을 썩둑썩둑 썰어 넣어 찌개를 끓이고 있으면, 아빠는 바글바글 끓는 국물에 김치 국물 한 국자와 조미료 두 스푼을 떠 넣었어요. 아빠는 찌개 없이는 밥을 못 드셨어요. 거기에 외할머니가 자주 쓰시던 부적처럼, 붉은 글씨가 새겨진 병에 담긴, 독한 술도 곁들여야 했죠. 한자는 못 읽었지만 술병에 새겨진 빨간 글씨를 볼 때마다 불길한 기운을 느꼈어요.


'서걱서걱' 아빠 옆에 앉아 있으면 소금기와 알코올이 장기와 살을 파 먹는, 생명이 가차 없이 대패질당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쉽게도 귀신을 보는 능력은 없었지만 저는 그런 소리를 들었어요. 더 어렸을 때는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안 들렸던 건지 모르겠지만, 여덟 살 무렵 그 소리를 처음 들었죠.


'이게 무슨 소리지?'

길 한복판에서 무언가를 맛있게 먹는 소리가 들리다니 너무 이상했어요. 마치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기도, 멀리서 웅성거리는 것 같기도 했죠. 그 소리를 따라 슈퍼를 끼고돌아 막다른 골목 안쪽까지 저절로 발이 움직였어요.


"어이! 꼬맹이, 언니들 담배 피우는 거 첨 봐? 이리 와 봐."

골목길 안쪽에 모여 서서 담배를 피우는 언니들에게 다가가자 냠냠 쩝쩝 맛있게 먹는 소리가 점점 선명해졌어요. 추임새라도 넣듯 히힛, 키득, 하고 웃기도 했어요. 누가 새콤달콤 캐러멜이라도 맛있게 먹고 있는 건가, 쌍둥이들처럼 화장을 떡칠한 다섯의 얼굴을 하나씩 살폈고, 주변에 다른 사람이라도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아니었어요. 오줌을 지릴 정도로 식겁했죠. 졸았나 봐, 깔깔거리는 그 언니들 목소리를 뒤로 하고 줄행랑을 쳤어요.


이게 죽음을 부르는 소리라는 건 아홉 살 때 처음 알았어요. 새아빠가 월드컵 8강전은 치킨에 맥주 한 잔 걸치면서 이웃들과 함께 봐야 한다며, 엄마랑 나를 새마을금고 옆에 있는 청수통닭집에 데려갔어요. 형철이네 식구들과 아랫집 '백수 총각'도 와 있었어요. 수염이 따가운 형철이 아빠는 벌건 얼굴을 히죽거리며 "제수씨" 하면서 엄마에게 의자를 빼 주었어요.


자리에 앉으려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우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손 써 볼 틈도 없이 의자에 머리를 꽈당, 부딪힌 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어요. '벅벅벅' 철수세미로 사정없이 프라이팬 바닥에 눌어붙은 기름때를 벗기는 것 같은 소리가 할아버지에게서 들렸어요. 눈을 굳게 감은 할아버지는 아픔도 못 느끼는지 찡그리지도, 꿈틀거리지도 않았어요.


"어머머, 그러게 술 좀 그만 드시라니까. 얼른, 당신이 가서 좀, 일으켜 봐요."

닭집 사장님이 자기 남편 등을 떠밀었어요.

"어르신, 눈 좀 떠 보세요." 아저씨가 할아버지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던 모자를 치웠어요. 그 순간 벅벅 거리는 소리에 고막이 터질 것 같았고, 할아버지 귀에서 피 한 방울이 주르륵 흐르는 걸 봤어요. 나는 겁에 질려서 울음을 터뜨렸어요.


"옆으로 비켜 주세요!"

와와 함성소리를 내뱉는 TV 끌 정신도 없이, 발만 동동 구르던 어른들은 119 구조대원에게 길을 터 주었어요. 할아버지는 실려나가셨고 얼마 후 형철이에게서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적잖이 충격이었는지 나는 며칠 동안 앓아누워서 학교에도 못 갔어요. 우리나라 팀이 스페인과 팽팽한 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이기고 4강에 진출했다는 것, 그즈음 연평도 부근 바다에서 북한군과 교전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가 없었죠.


어린 나에게 다른 선택권이 없었어요. 새아빠와 하루 두 번 같이 밥을 먹을 때마다 내 생명줄도 짧아지고 있었죠. 가끔 들어도 섬뜩한 그 소리를, 매일 들어야 한다니. 통닭집 사건이 자꾸 떠올라서 악몽도 자주 꾸었어요.


어차피 새아빠가 죽을 날이 멀지 않았었죠. 엄마도 우리 동네에서 제일가는 무녀의 피를 받았으니, 분명히 아빠 옆에 서 있는 저승사자라도 봤을 텐데. 하필 왜, 이런 남자를 왜 골랐을까요? 다른 집 엄마들은 아빠가 짜게 먹거나 술을 먹으면 잔소리를 한다던데,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배불뚝이 남편 비위를 상하게 하면 커다란 손바닥이 어김없이 날아들었으니까요.


결심하고 할머니를 졸랐어요. 학교에 아주 얄미운 년이 있는데 5년 정도 명(命)이 짧아지게 하는 부적을 써 달라고요. 그 년이 뭐라고 했는지 아시냐고, 내 눈이 초록색 개 눈깔이라서 아빠가 차 사고를 당했고, 엄마는 아빠 죽은 지 6개월도 안 되어 연하남을 홀려서 결혼했다, 이렇게 지껄이고 다닌다고.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대로(大怒) 하시는 두 가지 이야기를 다 써먹어야 했어요. 무슨 이유인지 토종 한국인이 분명한 내 눈동자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이었어요. 그게 재수가 없어서 복선이 아버지가 일찍 죽었다, 엄마가 지아비 상(喪)도 제대로 안 치르고 남자에 환장해서 급하게 재혼했다, 친가 어른들이 속닥였던 이야기를요.


할머니가 써 준 부적을 술병 넣어두는 수납장 바닥에 조심스레 숨겼어요. 엄마가 엊그제 수납장 바닥에 새 달력 종이를 깔았기 때문에, 그 아래에 부적을 넣어두면 한동안 들킬 염려가 없었거든요. 빨간 글씨에 깃든 분노와 저주가 고량주 술병을 뚫고 투명한 액체 속에 녹아들게 되길 빌었어요. 새아빠는 진짜 독주를 마시게 될 거예요.


뜨겁고 짜고 매운 국물에 한 번, 독한 술로 두 번. 식도에 먼저 화상을 입었어요. 다음은 위 점막. 염분이 보호막이던 점액을 걷어 냈고, 쇠덩이도 녹이는 소화액과 독한 알코올이 무방비 상태의 점막 세포를 공격했지요. 할머니의 저주까지 더해져 그 어떤 행운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빠는 깊은 내상을 입었어요.


아빠의 사인은 '십이지장 천공, 패혈증.' 소화성 궤양이 죽을병은 아니래요. 그런데 새아빠는 40대 초반에 이미 고혈압과 간경변을 앓고 있었대요. 저주가 깃든 독주를 마시고 잠자리에 든 그날 새벽, 배가 아파 응급실에 갔고 바로 내시경을 해서 클립으로 출혈부위를 봉합했지만 그게 다시 터졌고 오히려 장이 뚫려버렸대요.


이물질 없이 깨끗해야 할 복강에, 소화액과 혈액, 음식이 쏟아져 나왔으니 어찌 됐겠어요. 삽시간에 온몸에 염증이 퍼졌죠. 식도 정맥이 늘어져 있던 곳도 같이 터지는 바람에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대요. 중환자실로 옮겨진 새아빠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그렇게 나는 살인 조력자가 되었죠.


* 사진 : Unsplash (Egor Vikhr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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