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침등 아래에서 먹었던 닭강정

내 영혼을 위한 특별한 음식

by 지영민

난생처음 입덧을 할 때, 그게 먹고 싶었다. 하루에도 두세 번, 남편이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먹거리를 구해오느라 애를 먹었다.

"이 맛이 아니야, 우욱... 미안한데 저리 치워줄래?"

닭강정, 그것도 생도 2학년 때 먹었던 그 맛이어야 했다. 20년 전 룸메이트의 엄마가 만들어 보내주신 닭강정! 식당을 운영하시는 엄마가 군대 간 딸에게 보내시려고 평소의 몇 곱절로 요술을 부리셨던 게 틀림없다. 부드럽게 손질한 닭고기를 바삭하게 튀긴 뒤 꾸덕한 특제 양념을 버무리고, 직접 빻은 국산 땅콩 가루를 듬뿍 뿌려서 완성한 맛이었다. 게다가 딸내미가 택배로 받을 때는 2~3일쯤 지나있을 테니, 습기를 다 날려서 상하지 않도록 포장하셨을 것이다.


시원이는 식당집 세 자매 중 둘째 딸로 자랐는데, 눈에 띄는 생도는 아니었지만 진중하면서도 이해심이 많아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냈다. 시원이는 엄마가 닭강정을 보냈다는 전화를 받은 후, 언제쯤 택배가 도착하려나, 시간 날 때마다 당직실을 기웃거렸다. 우리도 닭목을 하고 함께 기다렸다. 이틀 뒤, 저녁 자습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드디어 훈육장교가 방송으로 친구를 호출했다.

"집에서 보내신 거니? 뭘 보내신 건지, 열어 봐."

"네... 닭강정입니다!"

"그렇군. 지금은 늦었으니 냉장고에 넣어 뒀다가 나중에 데워 먹도록 해."


앗싸! 취침시간이 가까웠지만 우리는 침실에 모였다. 훈육장교에게 걸리면 혼쭐나고 벌점까지 받게 될 터라 말소리도 낮추고 빨간 취침등만 켰다. 침대와 침대 사이에 예닐곱 명이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다들 나만큼 한 덩치하고 잘 먹는 녀석들이었다. 친구 엄마는 분명히 접시에 덜어서 우아하게 먹을 줄 아셨겠지만, 우리는 중간에 박스째 두고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킥킥, 웃지 마, 이러다가 걸린다고, 지금 우리 너무 웃긴데 어떻게 참냐, 킥킥. 이렇게 웃는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그 당시 나는 집안일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부모님이 자주 다투었고 고등학생이던 동생은 집 밖에서 방황했다. 나는 집에서 3시간 떨어진 사관학교에서 갇혀 지내다시피 했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갈등상황에 직접 뛰어들지 못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중전화를 붙잡고 직장에 있는 아빠, 집에 있는 엄마와 통화하다가 울고 화내고, 동생과 통화하다가 또 울고 애원했다. 방에 들어가지 않고 자습실 구석자리에서 밤을 새웠다. 밤에 순찰을 도는 불침번 친구들이 괜찮냐, 무슨 일이냐 물어와도 그 호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수업시간에도, 자습시간에도 슬픈 감정,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학사경고를 맞고 학교에서도 잘릴 판이었다. 집도 엉망, 학교생활도 엉망. 그렇게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게 한 보름쯤 되었던 것 같다.


그때 나를 알게 되었다. 외향적이고 무던한 사람인 척하고 있지만, 어떤 일로 정말 힘들 때는 그걸 말로 표현하는 것만으로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입는, 내성적이고 여린 사람이라는 것을. 자습실에서 살다시피 했던 내가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방으로 돌아간 후에도 한참 동안, 시원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같이 밥 먹고 수업 들으러 가고, 자유시간에는 피엑스에서 과자를 사고 수다를 떨며 나눠 먹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냈다. 나도 그게 좋았다.


3개월이 지난 후에야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힘이 들었던 건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다치치 않고 무덤덤하게 말이다. 가족의 갈등이 어떤 식으로든 일단락되고 나니, 마치 남의 일인 양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네가 먼저 말해 주길 기다렸어."

그 친구는 귀 기울여 내 얘기를 들어줬다. 스무 가지 버전쯤으로 변주를 해 가며 과거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동안 시원이는 같이 울고 같이 웃고 때로는 언니처럼 조언도 해 주었다.

"네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 그래서 네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했지? 진짜 복수는 말이야, 몇 년쯤 후에 네가 행복한 모습으로 선물을 사 들고 그 사람을 찾아가는 거야. 네가 잘 살면 돼."


좋은 생각, 내가 잘 되는 생각, 우리가 행복해지는 생각을 하라. 잠들기 전 감사할 만한 것을 세 가지 말해보라. 수많은 현자들이 성공하는 비밀을 쓰고 말했지만, 시원이의 말보다 더 와닿는 건 없었다. 사관학교 생활 내내 가장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결혼하고 아기 낳고 애 키우고 일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연락이 뜸해졌다. 오늘 아이들이 닭강정이 먹고 싶다고 하니, 그립고 고마운 그 친구가 생각난다. 내 영혼의 닭강정으로 평생 기억될 친구, 전화번호는 그대로이려나, 지금 카톡이라도 보내봐야겠다.


* 대문 이미지 : Daum에서 검색한 '닭강정' 이미지 화면을 캡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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