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녀에게 내 직업을 권할 수 없다
운전하는 데 써먹지 않는 운전면허를 '장롱면허'라고 한다. 간호업무를 할 수 있는데 간호사로 취업하지 않을 때에도 같은 말을 쓴다. 나는 도로주행에서 2번이나 낙방하는 바람에 운전면허를 3개월 만에 땄다. 간호사 면허는 간호대학에서 4년 간 이론공부와 실습을 병행하며 힘든 학사과정을 졸업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받을 수 있기에, 감히 운전면허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장롱면허'라는 씁쓸한 표현으로 홀대받는 처지를 자조(自嘲)한다.
나는 간호사 면허를 받자마자 공무원으로 일을 해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 간호사가 어떠한 처우를 받고 있는지 피부로 느낄 기회가 없었다. 오히려 학부생들에게 간호사로서의 자부심을 북돋우며, 앞으로 그대들이 진출할 분야가 무궁무진함을 역설했었다. 예상보다 이른 퇴직을 하고 마흔에 취준생이 되어 간호사 일자리를 찾아 전전해 보니, 이제는 그때를 떠올리면 낯이 뜨겁다.
'간호사 일자리가 많다'는 문장 속의 '일자리'는 3교대 근무, 토요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주간 외래 근무가 대부분이다. 24시간 생체리듬을 무시하고 돌고 돌아야 하는, 20대임에도 매일 골수가 삭는 것을 느끼게 되는 3교대 근무를 제외하고는 월 300만 원을 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간호사 면허만으로는 독자적으로 대상자에게 건강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상담하는 클리닉 하나 차릴 수도 없다. 학기마다 수백만 원의 등록금을 지불하고 어려운 시험까지 통과해서 면허를 받았는데, 전문직으로 활동할 수 없는 유일한 의료인 직군이 간호사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주어지는 업무나 하면서 박봉에 3교대 근무라도 버티기를 기대받는 직군. 너무 힘이 들어서 2~3년 버티다가 그만두어도 다음 후배들이 입사할 테니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는 의료인. 간호학 박사 수료증을 내밀면 대우가 달라지기는커녕, 월급을 많이 달라고 할까 봐 오히려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그게 바로 내가 간호사로서 마주하게 된 현실이다. 올해 초 퇴직한 후부터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해 온 3개월 만에, 이 서글픈 현실을 십 수년간 스스로도 외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호사 처우개선 활동은 번번이 실패해 왔고 그 누구의 지지도 얻지 못한 채 우리끼리 목 놓아 외치는 슬픈 구호에 그쳤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유휴간호사 비율이 10년 만에 5% 감소했다. 이게 다 간호인력 정책 효과 덕분"이라며 축배라도 들 기세다. 신종 감염병의 기세에 온 국민이 벌벌 떨 때, 그 무서운 현장에 뛰어들어 환자 곁을 지켰다며 칭송을 받던 것도 잠시의 영광일 뿐이다. 우리는 배가 고프다. 손님이 줄어 힘들다며 폐과를 선언한 이웃은 관심과 지지를 받던 그때, 간호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이면지로도 못 쓸 휴지조각이 되었다.
보건소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띠동갑 후배 간호사 선생님과 같이 일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병원 근무가 힘이 들어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남들처럼 낮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 자리는 월급이 적더라도 경쟁률이 몇 백대, 몇 천대 1이라고 한숨짓는다. 게다가 다른 '자격증'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 간호사 면허만으로는 경쟁력이 없어 무슨 자격증을 더 따야 하나 고민한다니 웃지 못할 일이다. 그 친구에게 희망이 되어 주지 못해 면목이 없다.
자질은 있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며 놀고먹는 사람을 '잉여인간'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강제로 잉여인간이 되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사진: Unsplash (Vladimir Fedot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