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씻기와 혈액 검사만 잘했더라도
불치병에 걸린 줄 알았다. 딱 사흘간, 40도까지 열이 오르내렸다. 6살 둘째 아이처럼, 내가 신열에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바람에 남편은 잠을 설쳤다. 내리 3일을, 내가 근무하던 병원 응급실에서 수액과 해열제를 맞았지만, 효과는 그때뿐이고 집에 오면 다시 끙끙 앓기를 반복했다.
'내일이 월요일이니, 내과 진료를 제대로 받아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정작 월요일이 되자 거짓말 같이 열은 사라졌다. 그때 찾아온 울렁거림과 복통. 허리를 못 펼 정도로 찌르는 통증은 아니었지만, 묵직한 돌덩이가 지그시 누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시리고 따가운, 야릇한 통증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안 먹어도 되나 싶게, 아이들과 친정아버지 삼시 세 끼는 챙겨드리면서도 같이 수저를 들지 못했다. 식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게 이런 건가, 나도 놀랄 정도였다. 아버지는 어째서 통 먹지를 못하니, 큰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니니, 한 걱정을 하셨다. 내과 외래에서 가장 가까운 내시경 일정을 예약하고 소화제 등등을 처방받아 왔다.
차라리 몸져누웠다면 더 빨리 병명을 알았을까. 아픈 몸을 이끌고 새해맞이 제주도 여행까지 강행했던 미련둥이는, 바다 건너에서 진단명을 듣게 된다.
아프기 시작한 지 딱 일주일 되던 날이었다. 제주도 숙소의 화장실 거울에서, 노랗게 변한 공막(안구의 흰 부분)을 발견했던 그날이. 황달*이라니! 간담이 서늘했다. 담석증이나 담낭염인 게 틀림없다고 호들갑을 떨며, 다음 날 아침 일찍 대학병원 소화기내과를 찾아갔다.
*황달 : 빌리루빈이라는 노폐물이 배출되지 못하고 몸에 쌓여 피부, 점막, 공막이 노랗게 착색되는 증상
응급으로 혈액검사, 복부 CT를 했다. 아프면서도 무슨 정신인지, CT 대기실에서 교수님께 전화를 걸어,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연구원 출근이 당분간 어려울 수 있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전화를 마친 후에는, 배에 긴 관을 꽂고 수술부위 분비물이 흘러나오는 걸 힘없이 바라보다가, 양손에 폴대 하나씩 끌며 구부정하게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장면까지, 아주 세밀하게 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날, 두 아이가 코코몽파크에서 경주 자동차와 집라인(Zipline)을 타며 신나 하는 모습을, 구슬프게 바라보던 노란 눈의 엄마였다. 다음 날, 개복수술만은 면하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를 되뇌며 마주한 의사에게서, 의외의 진단명을 들었다.
"아이코, 피검사만 해 봤어도 되었겠네요. A형 간염입니다."
안도와 탄식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수술을 안 해도 된다니 다행이었고, 어쩌다 오염된 음식을 먹고 이 병에 걸린 건지, 도대체 언제, 손도 제대로 안 씻고 뭘 집어 먹은 건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다음 떠오른 건, 나를 진료했던 의사 네댓 명의 흐릿한 면상이었다. 휴가 끝나고 돌아가면 반드시 찾아가서 말해주리, 혈액검사는 기본입니다, 라고 다짐하며, 간 보호제 한 뭉치를 받아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A형 간염은 다른 간염들과 달리, 치료를 잘 받으면 급성으로 앓고 지나가지만, 환자가 입이나 항문으로 배출한 바이러스는 물이나 음식을 통해 전파될 수 있다. 천만 다행히도, 나와 함께 식사했던 아이 둘과 남편은 A형 간염 예방접종을 받았고, 아버지는 아마도 어릴 적 A형 간염을 앓고 난 후 면역력을 갖고 계실 터였다.
과거에는 식수나 식품의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A형 간염이 창궐했고, 어릴 때 가볍게 앓은 후 자연면역을 갖게 된 분들도 많았다고 한다. 최근 위생상태가 좋아 어린 시절 자연면역을 획득할 기회는 줄었고, 이 때문에 A형 간염으로 입원하는 성인 환자들이 오히려 늘었다.
남편이 간병을 위한 휴가를 내서 네 가족이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내가 일하던 병원 내과에 찾아가서 '그들'에게 자못 민망한 소식을 최대한 덤덤하게 알렸다. A형 간염 환자 치고는 고령인 삼십 대 중반이라서 입원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는 권고에 따르기로 했다.
이제 온몸이 노래진 엄마는 그보다 더 노란 수액을 맞으며 입원한 신세가 되었다. 하루종일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씻기던 일상과 완전히 분리된 24시간. 침대에 온종일 누워있어도 죄스럽지 않은 며칠. 좋은 건 텅 빈 시간뿐이었다.
무사히 간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걸 확인하고 퇴원했지만, 황달은 두 달쯤 남아, 내가 아직 회복 중임을 상기시켰다. 노랑의 보색인 연보라색 메이크업 베이스로 얼굴을 덮고, 아무렇지 않은 척 복직을 했다. (그러다 가끔 칼퇴근이 필요하면 선크림만 바르고 출근하였다.)
A형 간염에 걸리기 전, 식생활을 떠올려 보았다. 일주일에 이삼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지하철에서 고속철도, 버스로 갈아타고 서울 연구실에 나왔다가, 저녁 7시쯤 대전 집으로 돌아가는 삶을 1년째 이어왔다.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해서 편의점 김밥, 샌드위치를 사서 기차에서 아침, 저녁을 때웠다. 이미 휴직수당도 끊겼고 연구원은 자원봉사이자 취미였으며, 교통비와 베이비시터 비용은 빚내서 충당하던 시절이었다.
발목에 멍이 드는 줄도 모르고 대전역과 서울역 계단을 전력질주하고, 집에 오면 샤워 후 깡맥주로 고단함을 달래던 시절. 젊음으로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내 몸에는 노화가 꾸준히 쌓여가던 삼십 대의 중반. 박사과정과 연구원을 끝내면 뭐라도 될 수 있는 건지, 복직 후 언제쯤 이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건지 골몰하던 날들. 그때 나는 A형 간염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김밥과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그중 최근에 바이러스에 오염된 것을 먹었으리. 그 음식을 만들고 운반한 이는 필시 화장실을 나설 때 손을 제대로 씻지 않았으리! 보글보글 끓인 음식이었다면 바이러스가 죽었을 텐데, 손을 잘 씻은 주방장이 정성스레 내 온 음식이었다면 A형 간염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A형 간염은 말했다. 아무리 바빠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너 자신을 좀 돌보라고.
*사진 : Unsplash (Hanbyul Jeong)
**참고자료 :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 A형 간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