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위 점막이 까졌다

어느 신규 간호사와 미란성 위염

by 지영민

내가 욕하던 그와, 비슷해지고 말았다. 그도 식도가 다 까지고 피를 토해서 병원에 실려올 줄은 몰랐을 거다. 술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다가 '말로리바이스 증후군'으로 우리 병동에 입원했던 그 사람. 병원 밖에 나가 몰래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다른 병동에서 행패 부린 다음 날, 도망치듯 퇴원했던 그 사람. 갑자기 그가 생각났다.


나는 그저 살기 위해 먹었다, 야식도, 술도. 살아보려고 먹었노라, 변명하고 싶었다. 퇴원하는 환자들에게 '올바른 식이섭취'를 운운하였지만, 정작 나는 바르게 먹지 못했노라,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좀 봐. 여기 빨간 점 여러 개가 보이지? 위 점막이 까졌네. 쯧쯧. 교대근무하느라 힘들겠지만, 식사는 되도록 규칙적으로 하고. 참, 술 먹지 말고." 우리 병동에서 인성도, 의술도 가장 괜찮았던 윤 선생님이 정곡을 찔렀다.


'나 때' 교대근무는,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낮 근무(아침 8시~오후 5시),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근무(오후 4시~자정), 연이은 주말에 밤샘 근무(자정~아침 8시)를 하는 식이었다. 내리 9~10일 간 팽팽 돌고 나면, 그야말로 세상이 팽팽 돌았다. 밤샘 근무 후 인계인수를 하면 머리와 입이 따로 놀았다. 'WBC(백혈구)'를 생각하면서 'RBC(적혈구)'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밤샘 근무를 하는 날에는, 졸음을 쫓겠다며 새벽 2시에 믹스커피를 들이켰다. 빈 속에 카페인이 들어가자 위산이 더 많이 나왔을 거고, 믹스커피에 들어있던 당분과 우유성분 같은 것들이 위장 운동을 자극했을 것이다. 전날에도 밤샘 근무 후 낮에 자느라 식사를 제 때 못 했으니 배가 고픈가 보다, 착각하기 딱 좋았다.


결국 새벽 4시에 컵라면을 먹게 된다. 짭짤한 국물이, 식도와 위를 감싸고 있던 점액을 야무지게 닦아내고, 이로써 가련한 점막들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 결과를 내시경 화면에서 내 눈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실은, 그뿐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동기와 근무시간이 같아서 저녁약속을 했는데, 그날도 연장근무를 2시간이나 했다. 왜 입원환자들은 퇴근시간이 임박했을 때 병동에 당도하시는지. 병실 배정하고 저녁식사를 챙겨 드리고, 가져온 약과 서류를 살펴보고 면담하고, 처방 확인하고 기록을 작성하는 동안, 저녁근무하는 선배들은 편안히 저녁을 드셨다.


'거지 같은 선배들'과 '불합리한 병동 관습'을 안주 삼아, 동기와 소주 3병을 비우고 돌아온 그날 밤. 마치 경쟁하듯, 위(胃)는 치즈계란말이를 역류시키고 대장은 아래쪽으로 배출을 해 대는 통에,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날이었던 것 같다. 참다못한 위 점막이 벗겨져 나간 날이.


'뭔가 잘못 됐다. 이런 아픔은 처음이야.'

물만 삼켜도 목구멍부터 명치까지 따끔거리고 아렸다. 그리하여 우리 병동에서 내시경을 가장 잘하는 윤 선생님에게 검사를 부탁했던 것이다.


통증이 심했던 며칠 전, 피가 좀 났을 거라고 했다. 지금은 그 상처만 남아 있는 거고, 내가 '방탕한' 식생활을 계속한다면 더 악화될 거라고.


의식은 의지와 믹스커피로 깨울 수 있지만, 위장은 빠른 시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근무시간이야 어떻든, 아침 7시, 점심 1시, 저녁 7시에만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밤에는 물만 마셨다.


두툼한 암막 커튼을 구해서 기숙사 방 창문에 달았다. 귀 마개에, 두꺼운 안대를 하고 낮에 최대한 자기로 했다. 소음과 빛 때문에 중간에 깨더라도 애써 잠을 청했다. 수도자 같이 살아야 했다. 낮에 학원을 다니거나 외출을 하는 건, 교대근무자에게는 독(毒)이었다.


위 점막 다음에는 어디에 탈이 날지 겁이 났다. 열심히 공부해서 간호사가 되었는데, 정작 간호사로 살면서 자신의 건강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배운 기억이 없었다. 그건 각자에게 남겨진 숙제였다.


*사진: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rbDE93-0hHs

이전 03화UFO는 너희의 미래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