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시도

10분짜리 소설

by 지영민

“동생이 자살했대요. 저 대신 부모님 좀 만나 주세요. 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다시는 그 소굴에 돌아가지 않기로, 맹세했어요.”


자살 유족을 상담해 온 지 일 년 남짓, 이런 부탁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만나는 가족들은 하나 같이 상처와 멍이 있었다. 은정의 가족 또한 금이 가고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도자기 같았다. 큰딸 은정의 가출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던 이들의 비극은, 작은딸 혜정이 자살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은정의 요청으로 자매의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뜻밖에도 엄마가 먼저 꺼낸 화두는 남편의 외도였다. 그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딸들이 없는 삶에서 엄마에게 시급했던 숙제는 남편에게 상처를 갚아주는 것이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집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깨고, 책상 앞에 앉았다.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집어 들었다. 이럴 때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자판을 두드리는 게 상책이다. 쓰다 보면 정리가 되겠지.

이번에도 네 앞에서 죽으려 했던 거야, 네게 짐스러웠던 그 아이는. 실은 과분했지. 다른 이의 시선을 먹고사는 네게, 혜정은 빛나는 트로피는 아니었어. 엄친딸인 은정의 그늘에 가려 지내면서도, 너의 텅 빈 눈동자와 위태롭게 비틀거리던 영혼을 읽어냈던 건 혜정뿐이었지.


네 남편은 네 엄마처럼 항상 너를 홀대했어. 은정이가 홀연히 사라진 지 두 달쯤 되던 날, 배은망덕한 남편이 말했지. 그 착하고 야무지던 아이가 왜 갑자기 부모 품을 떠났는지 모르겠다고.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은 건, 엄마와 끈끈한 애정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고, 남편은 또 네 탓을 했어. 아마 은정이가 남긴 일기장을 너와 함께 읽었더라면, 현금다발을 들고 사라졌다는 걸 알았더라면, 너를 야멸차게 버리고 내연녀에게로 영영 가버렸겠지.


혜정은 매사에 걸림돌이었어. 은정이 돌잔치를 마치고 복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덜컥 들어선 아기 때문에, 너는 집안 살림을 말끔히 하고 아이들을 반듯하게 기르는 일에 모든 걸 걸어야 했어. 아기 혜정은 설거지하는 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어. 빨래를 개려고 앉으면 무릎에 올라서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치댔지. 집사님들과 이야기를 할라치면 “나랑 얘기해!”악을 쓰며 네 입을 막아버렸어.


“그 아이는 두 번의 시도 만에 진짜로 죽었어요. 정말로 죽던 날, 남편이 그 아이를 수습해서 보냈어요.”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고. 나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아. 왜 자식을 부둥켜안고 쓰다듬고 마지막 온기라도 느끼려고 하지 않았는지. 오래전부터 혜정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어. 학교에 가기 싫다고 여러 번 자해했을 때, 그 후 거식증으로 몇 차례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아이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지. 너는 두 번이라고 했지만, 그보다 앞선 열일곱 번도 알아차렸어야 했어.


지금 당신도 위험해. 쌍꺼풀 수술, 눈꼬리 거상과 눈꺼풀 지방흡입술. 눈 수술만 서너 차례 받았다면서.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코 모양도 무척 부자연스러워. 곧 양악수술까지 받는다고. 자식이 죽은 마당에 성형수술받는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남편에게는 한동안 요양을 다녀온다고 했다지. 어차피 외모가 바뀌어도 못 알아본다고, 당신은 그게 가장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어.


여기까지 쓰다 말고 모니터를 노려보며 커피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바짝 타들어 가는 입안처럼, 커피잔은 갈색 얼룩만 남은 바닥을 내보이고 있었다. 아침 열 시, 이미 석 잔째다. 보이지 않는 실마리를 찾기 위한 중대한 작업처럼, 원두 가루를 포터에 꼭꼭 눌러 담고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이번과 같은 케이스가 종종 있었다. 못된 습관처럼 내담자를 계속 밀어내고 잣대질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 나를 정서적으로 잘 돌봐 주지 않았던 어머니를, 그들의 모습에서 찾아내고 증오하고 벌하고 싶어서 온갖 구실을 찾는다.


한 달 전에 딸의 자살을 경험한 내담자는, 꽃나무와 나비 문양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인 시폰 드레스를 입고 첫 면담에 나타났었다. 겨자색의 가죽 가방과 베이지색의 가죽 샌들은 공들여 고른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의 사인을 주변에 어떻게 알렸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장례를 성대하게 치렀다고 했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존재가 사라졌기에, 홀가분한 걸지 모른다. 그 존재가 스스로에게 행한 무자비한 폭력을 막지 못해 미안해하면서도. 둘 중 어떤 감정이 더 무거울까. 홀가분함과 죄책감 사이를 오고 가듯,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가 눈물을 훔쳤다가 어쩔 줄 몰라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죄책감에 삶의 의지를 저당 잡힌 채 흙빛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그녀가 덜 미웠을까.


혜정 엄마는 평생 유리로 된 집에서 살아왔다. 타인 앞에서 번듯한 안주인이어야 하고 남편이 무슨 짓을 해도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자식들도 하나 같이 기똥차게 잘 키우고 살림 또한 똑 소리 나게 해야 한다. 그녀의 친정엄마는 불행하지만 확신에 찬 얼굴로, 이렇게 설교해 왔다.


애석하게도 죽은 혜정은 엄마를 닮았던 것 같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타인이 그 사랑을 채워주기를 바랐으나, 공허한 마음을 슬픔과 절망으로 메우고 말았다. 그러나 할머니와 엄마가 살아온 견고한 세상을 부수려고 했던 점만큼은 엄마와 달랐다.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교회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너니까 사랑한다고 말해 주길 바랐다.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받고 싶었다. 끝내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문득 나를 돌아본다. 나는 잘하고 있나, 나의 감정을 철저히 외면했던 우리 엄마의 패턴을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학대가 내 딸에게 대물림되는 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엄마와 똑같은 형태의 정서적 학대를 가하고, 아이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건 아닐까. 이렇게 내담자를 미워하고 밀쳐내려 하는 건, 내 안에 그녀들과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살아남지 못했던 아이의 모습을 그려 본다.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였고, 너무 일찍 세상을 등진 아이. 그 여러 번의 시도가 살기 위한 것이었더라면, 그 아이는 도망친 언니처럼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었을 거다.


틀을 깨자, 부정적 감정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 보자, 나는 주문을 외웠다. 이번에 혜정의 엄마를 살리는 일이, 어쩌면 내가 증오했던 우리 엄마를 용서하는 일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시도 또한 이 세상의 수많은 ‘혜정 엄마’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제 그녀를 만날 준비가 되었구나, 생각하며 외출할 채비를 했다.



*사진 : Unsplash (Thomas Lefeb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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