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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Aug 31. 2023

이탈리아 미술관 투어

꿈의 책여행 계획서

  ‘글쓰담’은 온라인플랫폼 작가로 활동 중인 엄마, 할머니들의 독서동아리입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오전 시간에 온라인에서 독후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언젠가 자유롭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우리들의 여행을 꿈꾸지요.


  양정무 교수의 <벌거벗은 미술관>에서 소개된 작품을 감상하며 창작하는 여행을 계획해 보았어요. 과거 대문호들이 영감을 얻었던 미술 투어를 우리 식으로 해 보려고요. 저는 2023년 2월에 친정 고모, 자녀들과 함께 ‘책 여행’을 다녀왔어요. 이 책을 읽고 다녀왔던 실제 여행을 토대로 작성한 계획서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희망 일정>

1일 차 (피렌체 도착) 베키오궁 인근의 야외 조각상 감상, 미켈란젤로 광장 관광

2일 차 우피치 미술관(오니산티의 마에스타) 단체 투어

3일 차 우피치 미술관 개인 감상

4일 차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스트로치 제대화)

5일 차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막달라 마리아)

6일 차 피렌체에서 로마로 이동

7일 차 로마 시내 투어(콜로세움, 포로로마노)

8일 차 바티칸 단체 투어(아폴로, 라오콘 군상,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최후의 심판)

9~10일 차 바티칸 개인 감상

11일 차 시내관광(나보나광장, 판테온, 대전차 경기장, 카라칼라욕장 야간 오페라 감상)

12일 차 한국으로 복귀



  글쓰담의 여행은 손자녀, 자녀들이 다 크고 난 후, 지난 1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여유롭게 진행될 예정이에요. 위에 희망 일정을 적어보긴 했지만, 여행 일정도 수시로 바뀔 수 있어요. 파리 로댕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처럼,  한 작품 앞에 앉아 생각하고 쓰고 그리며 며칠을 보내도 괜찮아요.


  베키오 궁전을 중심으로 볼거리, 먹을거리, 살 거리가 모여있는 피렌체는 여행하기 좋은 도시였습니다. 10년 후에 다리 힘이 약해졌더라도 여러 날 보내기에 딱 좋은 곳이지요. 피렌체에 머물면서 피사, 친퀘테레 해안 도시들까지 당일 여행으로 다닐 수 있답니다.


1. 도나텔로의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베키오 궁전 앞 시뇨리아 광장에는 여러 동상들이 전시되어, 피렌체가 예술의 도시임을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메디치 가문은 그들의 작은 공화국인 피렌체에 예술가들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지원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청동상은 메디치 가문이 축출된 것을 기념하여 시뇨리아 광장에 놓였다고 합니다.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성서 이야기는 예술작품에 자주 등장합니다.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회화 작품과 비교하여 볼 수 있습니다.


2. 조토의 <오니산티의 마에스타>

  이 그림은 인체의 굴곡이나 인간적인 표정을 최대한 배제했던 중세의 방식에서 벗어난 최초의 작품이라고 평가된답니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성모와 아기 예수가 등장하는 ‘제단화’가 여러 공간에 걸쳐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이 바로 이 작품이랍니다. 양정무 교수님의 책에서는 흑사병이 예술에 미친 영향을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어요. 조토의 작품보다 약 반세기 후 제작되었지만 오히려 중세 화풍으로 역행했던 <스트로치 제대화>를 예로 들면서, 공포스러운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에 의지했던 당시의 풍토가 미술에도 큰 영향을 주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3.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두오모 오페라 미술관에 가면 지옥의 문, 피에타 등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지만, 그중 꼭 봐야 하는 것이 바로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입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누더기를 걸친 깡마른 몸, 맨발에 두 손을 모으고 무언가 간절히 호소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이 성인(聖人)이 아름다운 육체에 절제된 표정의 신비로운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면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우피치 미술관, 두오모 오페라 미술관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도 꼭 가 보고 싶네요. 올 초 여행에서 일정이 맞지 않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진품을 못 보고 온 게 두고두고 한이 되거든요. 하긴, 아쉬움을 조금 남겨두고 여행을 마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다음을 기약하고 그 여행을 꿈꾸는 시간마저도 행복하니까요.


  피렌체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체력을 아끼고 유럽 시차에 적응했습니다. 이제는 고속열차를 타고 로마로 향합니다. 로마는 피렌체보다 몇 배나 큰 도시이니 조금 더 바삐 움직이게 될 겁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시간을 품고 있는, 지붕 없는 미술관에서 남은 여정을 보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로마가 품고 있는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으로 향합니다. 피렌체에서도 그랬듯, 첫날은 한국인 해설투어를 하면서 유명한 작품을 먼저 소개받고, 내키는 만큼 개인적으로 감상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실은, 바티칸 박물관은 여러 개의 미술관, 회화관, 전시관을 품고 있어서 일주일을 할애하더라도 샅샅이 감상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성 베드로 대성당까지 둘러보려면 튼튼한 두 다리가 필요하지요.


4. 벨베데레의 <아폴로>

  이 대리석상은 한때 유럽인들이 칭송하고 모방하고자 노력했던 ‘그리스 고전 미술’의 걸작 중 하나입니다. ‘빙켈만’이라는 도서관 사서 출신의 평론가가 펴낸 미술서적 몇 편은 유럽인들의 관심을 고전으로 돌릴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의 <고대미술사>에서 <아폴로>의 발걸음은 “경쾌한 바람의 날개를 갖고 있다”라고 설명되었답니다. 양정무 교수님은 이 석상이 그리스 고전기 문명의 ‘무표정성’을 보여준다고 평했습니다. 아폴로가 거대한 구렁이 피톤을 죽이기 위해 화살을 쏘는 장면임에도, ‘아무런 흔들림 없이 침착함을 유지’하는 ‘무덤덤한 얼굴형’이 만들어진 건, ‘특정 개인을 이상화’하는 예술표현을 경계했던 당시의 정치환경 때문이라고 합니다.


5. 작자 미상의 <라오콘 군상>

  이 대리석상은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이 트로이 목마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뱀에 물려 죽는 순간을 표현’ 한 것으로, 포도밭에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완벽한 육체의 굴곡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은 여느 고전 석상과 다를 바가 없지만, 주인공의 일그러진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표현이 이 조각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라오콘의 오른팔은 후대에 복원된 것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6.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성당이라는 신성한 공간이 아니라면, 수많은 인파 때문에 긴 시간 머물기 어려운 곳이 아니었다면, 누워서 하루 종일 뜯어보고 싶은 대작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교황님과도 신경전을 벌였을 만큼 성격이 대단했던 예술가라고 합니다. 조각에서 이미 천재성을 보여줬지만 그림까지 잘 그렸던 다방면의 재주꾼이었답니다. 완벽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천재 미켈란젤로도 수많은 밑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 합니다.


  ‘대작’을 꿈꾸며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우리들도, 지금의 습작을 토대로 언젠가 일생일대의 작품을 쓰게 될까요? 어쩌면 ‘인생 대작’이란 없을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현재진행형의 작품들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겠지요. 우리가 미술관을 돌며 감상했던 세계적인 걸작들도 탄생하는 순간부터 칭송을 받았던 건 아닐 거예요. 오랜 시간을 두고서도 변치 않는 감동, 시간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품고 있기에 비행기를 타고 대륙과 대양을 건너 보러 오는 이들이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예술가의 고뇌와, 붓 터치와, 땀방울을 느껴보겠어요.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 피렌체를 내려다보며 책을 읽고요. 물론 젊은이들이 요란하게 파티를 즐기는 밤 시간을 피해서요. 피렌체를 관통하는 아르노 강변에 앉아 젤라토를 먹으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도,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여행에는 꽉 짜여진 일정표도, 채근하는 가이드도 없답니다.



  로마에서는 지붕 없이 자유롭게 놓인, 고대의 돌무더기 앞에서 화려했던 제국의 잔상을 더듬어 볼 거예요. 지금은 공터에 불과한 대전차 경기장에서 로마인들의 함성과 광기를 상상해 보고요. 포로로마노에서는 눈부신 대리석 건물 사이로, 의기양양하게 군사를 이끌고 로마에 입성하는 어느 장군을 머릿속에 그려보겠어요.



  우리들이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도 언젠가는 희미하게 잊히고 후대의 상상 속에서나 재현되는 날이 오겠지요. 억겁의 시간 속에 오늘이 하나의 점에 불과할지라도, 여행하는 모든 순간을 영원할 것처럼 누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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