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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Jan 19. 2023

스위스, 왜 이리 어렵나요

가장 확실하게 여행 경비를 절약하는 방법

 스위스를 지나쳤을 것이다. 같이 여행 가는 친정고모가 설득하지 않으셨다면. 물가도 비싸고, 별스럽게 유로화를 쓰지 않아 스위스 프랑을 환전해 주는 은행을 따로 찾아가야 한다. 가뜩이나 추운 겨울에 설산(雪山)을 간다는 것이 가장 싫었다. 추위를 극도로 싫어하면서 겨울 여행을 가겠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지만, 천하의 나폴레옹도 고생시킨 알프스 추위만은 피하고 싶었다.


 계획 짜기도 복잡했다. 국영철도 외에도 파노라마 관광열차, 산악열차는 왜 이리 많은지. 게다가 고타드 파노라마 특급열차처럼 겨울에 운행하지 않는 노선도 있어서 머리가 아파왔다. 여행사 대행 수수료만큼 맛있는 걸 더 사 먹겠다며, 몇 달간 공부하며 준비해 왔지만 스위스에서는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살면서 처음으로 카페 유료 회원이 되었다. 3만 원을 내고 '스위스 프렌즈' 카페(https://cafe.naver.com/swissfriends) 정회원이 되어 게시글을 하나씩 살펴보고 '차가운 순대' 가이드님의 유튜브 영상도 몇 번씩 돌려보며 공부를 했다. 가장 최신으로 발간된 여행책자를 구입하여 읽기도 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을 게시판에 올리고, 고수님들의 댓글을 구걸했다.


(좌) 스위스 프렌즈 카페 첫 화면, (우) 맹현정 & 조원미. 스위스 셀프트레블(2022-2023). 상상출판


 여행 보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한 오픈 채팅방에는 실시간 현지 영상, 사진이 올라온다. 유명한 산꼭대기는 영하 10~20도가 예사이고, 산 아래의 날씨도 변화무쌍하다. 눈보라가 치고 비가 내려 열차 노선 운행이 취소되거나 정상에 올라가도 경치를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어제는 흐렸던 곳이 오늘은 거짓말처럼 개어 동화 속 풍경을 보여준다. 같은 시각, 체르마트(Zermatt)에서는 선명하게 마터호른(Matterhorn)을 볼 수 있는데 루체른(Luzern)은 그야말로 '겨울왕국'이다.


 복잡한 노선만큼 많은 선택지, 변덕스러운 날씨, 입에 붙지 않는 지명들. 자유여행에 도전하는 초짜를 시험에 들게 한다. 신께서 내가 계획한 날짜에 융프라우 정상의 파란 하늘을 보여주신다는 보장이 없고, 궂은 날 고집스럽게 산악열차를 타고 정상에 오른다고 한들, 전망대 밖 구경도 못하고 아까운 돈만 날릴 수도 있다.


 눈물 나는 스위스 물가, 특히 교통비를 아껴보고자 인터라켄(Interlaken) 밖으로 3일, 융프라우(Jungfrau) 3일을 연속하여 갈 수 있는 두 가지 '패스(pass)'를 조합하는 게 처음 구상이었다. 그게 가장 가성비가 높다고 확신했다.


 먼저 '스위스 패스'로 3일 간 연이어 체르마트(Zermatt), 루체른(Luzern), 베른(Bern)과 인근 관광지로 알뜰히 다닌다. 다음 3일은 '융프라우 VIP 패스'를 이용해서 '유럽의 지붕'인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 '제임스 본드 여행 촬영지'였던 쉴트호른(Schilthorn)을 차례로 오르고, 인터라켄(Interlaken) 서쪽 역에서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건너 툰(Thun)을 둘러본 후, 렝크 임 지멘탈(Lenk im Simmental)의 산악 마을까지 가 본다. 내 계획대로 날씨까지 준비된다면.


 찝찝한 마음에 이 완벽한 계획을 두 달 넘게 깔고 앉아 있다가, '여늬랑'이라는 고수님의 글을 읽고 체증이 시원히 가셨다. 돈을 조금 아끼려는 심산에 '스위스 패스'를 최소 기간만 샀다가 날씨 변수를 만나 오히려 여행을 망치고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단다. 하루 만에 이 산 저 산, 이 도시 저 도시를 다 보려고 욕심내다가 열차가 끊겨 설산(雪山)을 걸어서 내려온 한국인들을 종종 봤다는 거다. '차가운 순대'님도 유튜브 영상에서 한마디 보탰다. 가성비 높은 여행 전략이야 많지만, 가장 돈을 아끼는 방법은 여행을 안 하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스위스 여행 기간 내내 '스위스 패스'를 이용하기로. 2023년 1월 기준 성인의 1등석 6일 패스는 77만 원이다. 체르마트에서 인터라켄 2등석 열차 1회 탑승권만 해도 11만 원이니 답은 나왔다. 스위스 여행의 백미는 열차에서 보는 풍경이라고 한다. 편안히 알프스를 감상하기 위해서 성인 6일 패스 기준 30만 원, 다시 말해 하루에 5만 원씩 더 내고 1등석에 앉기로 했다. 이런 결정이 스위스다운 거지, 생각하니 흐뭇하다.


 오늘 5시 50분. 고요한 아침에 '스위스 패스' 연속권 구매 링크(https://shop.switzerlandtravelcentre.com/?affiliateId=370#/ko/product/swissPass)에 접속했다. 운 좋게도 지난달부터 '트래블 월렛' 카드에서 스위스 프랑을 쓸 수 있게 되어, 몇 푼 안 되지만 환전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니, 표값을 치르면서도 콧노래가 나온다. 오랜 고민을 보상받은 기분이다.


(좌) 스위스 패스 구입 화면, (우) 동신항운 쿠폰을 신청하면 받게 되는 메일의 일부


 융프라우는 날씨가 좋을 때 이틀 정도, 스위스 패스와 '동신항운' 쿠폰(https://jungfrau.co.kr/coupon/couponlist.asp)을 이용하여, 할인가에 VIP 2일 패스를 구입해 다닐 계획이다. VIP 패스 가격이 구간권과 큰 차이가 없고, VIP 패스를 이용하면 융프라우 정상을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각기 다른 경로로 내려올 수 있다. 예를 들면, 올라갈 때는 산악열차를 이용하여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 방면으로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그린델발트(Grindelwald) 노선으로 내려오고, 방향을 틀어 멘리헨(Maennlichen)이나 피르스트(First)에 들를 수도 있다.




 스위스 물가 극복을 위한 또 다른 전략은, 식비를 아끼는 것이다. 처음부터 식도락(食道樂)이 여행 콘셉트는 아니었으므로, 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탈리아에서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기로' 하고, 스위스에서의 제대로 된 외식은 한두 번만 할까 싶다. 파리의 숙소 근처 한인마트에서 잔뜩 장을 봐서 스위스로 넘어가면 숙소에서 집밥을 해 먹을 수 있다.


 대학생 시절 그린델발트에서 묵었던 기간은 딱 하루. 여행 다녀왔노라 말하기에도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스호스텔의 조식뷔페에서 먹었던 치즈, 버터, 우유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공기가 맑아서였을까, 아니면 동화 속 마을에서 꿈꾸는 듯해서였을까. 가족들과도 다시 한번 느껴 보고 싶은, 고소하고 신선한 맛이었다. 체르마트의 윔퍼 슈투베(Whymper-stube)에서 치즈 퐁뒤는 꼭 먹어야겠다.


 미국 여행 때 잘 써먹던 페이스북(Facebook)이 유럽에서도 잘 통할 지 모르겠지만, 윔퍼 슈투베(Whymper-stube) 페이지를 팔로우(Follow)해 두었다. 현지인들과 여행객으로 항상 붐비는 곳이라는 소문에, 예약 문의라도 한 후 방문할 요량에서다.


 큰 짐 가방을 끌고 다니는 것도 일인데, 여행용으로 구입한 보온밥솥을 넣고 보니 한숨이 나왔다. 이다 작가님의 '미니멀리즘'에 동화되어 보온밥솥을 덜어내기로 결심했다. 주부 99단쯤 되는 친정고모도, 부피가 큰 겨울옷 때문에 부담스러운데 숙소에 있는 냄비로 밥을 지어먹자고 하신다. 이제야 오뚜기밥, 티아시아 카레분, 밥이랑 플레이크, 대천 파래김, 진라면, 팔도비빔면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좌) 다이소에서 산 장바구니 (목베개, 도난방지용 휴대폰 줄, 옷핀, 반지고리와 함께), (우) 해외에 나가면 소중함을 더 느끼는 우리나라 식재료들


 당장 하루 이틀 해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을 소진하고 나면, 스위스로 넘어가기 전 파리의 ‘K Mart'나 'Ace Mart'에서 우리나라 식재료를 잔뜩 구입할 예정이다. 둘 다 위치도 비슷해서 어딜 가도 될 성싶다. 미국에서처럼 H Mart는 없지만, 작은 가게라도 있다니 마음이 푸근하다.


 다이소 장바구니에 햇반, 볶음고추장, 신라면, 김치 등을 되는 만큼 쓸어 담고 우버(Uber)나 볼트(Bolt)를 잡아탄 후 파리 리옹역으로 가서 스위스행 열차를 탈 거다. 6시간 동안 목베개를 하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는 동안 한국산 식재료를 안고 마음 든든하게 스위스에 가까워지는 상상을 하며, 이제야말로 계획 짜기를 일단락 짓고 짐을 다시 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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