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문턱에서
오늘은, 평생 다닐 거라 생각하고 십수 년 다녔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1년 7개월 동안 계약직으로 서너 군데를 전전하다가, 5년 정도는 다녀야겠다 싶은 새 일터에서 수습기간을 마친 날입니다.
특별한 날이니만큼, 맛있는 점심식사를 스스로에게 대접하고, 저녁에는 와인 한 잔을 마시고, 강아지를 한참 껴안고 있다가 얼굴에 모델링팩을 바르고, 이렇게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씁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하루를 채우고 있지요.
십 대 이후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되겠다'는 강박과 싸웠습니다.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타인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부단히 노력하고, 계약직으로 일을 하면서도 경력직다운 남다른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어요.
아이를 남 부럽지 않은 인재로 길러야 한다, 일하는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 아껴 쓰고 착실히 돈을 모아야 한다, 집은 항상 깨끗하고 물건은 제자리에 둬야 한다, 브런치스토리에 매주 한 편은 글을 써야 한다, 책을 매일 읽어야 한다, 살찌면 안 된다, 아프면 안 된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
가혹한 잣대로 내 삶을 평가하고, 일분일초를 알차게 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매일 실패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어느 날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그게 불안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고요.
세상은 근면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지,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며 잠자리에 드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적어도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요.
힘이 들고 지칠 때는 청소도 설거지도 좀 미룹니다. 화장 안 지우고 잔다고 피부가 뒤집어지지 않아요. 수습직원이니 실수 좀 하면 어떤가요, 그 회사 오래 다닌 사람들보다 일을 더 잘하면 그 사람들은 뭐가 되나요. 아이들이 자기 인생 찾아가게 뒤로 좀 물러나 있는 게 더 좋은 것 아닐까요, 부모가 그렇게 통제하면 아이들이 정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나요.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안 쓴다고 해서 글을 못 쓰게 되나요, 글 좀 못 쓴다고 인생이 망가지나요.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했던 과거의 나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쓸모를 떠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로 다짐합니다. 매일 하나씩 무언가를 더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하나씩 덜어내고 내려놓으며 더 행복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