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인 나에겐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있다.
이걸 말하면 '에이 그런 걸 모아? 그런 거야말로 버려야 하는 거 아니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바로 아이의 추억에 관한 물건이다. 그렇다고 아이 하면 자다가도 깨어나는 그런 엄마라고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아이가 잠들기 전에 잠드는 그런 엄마니까 말이다.
임신 내내 남들 다하는 태교로 책 한 권을 읽지 않았다. 태교음악이라곤 그놈의 '여수 밤바다'만 주야장천 들었다. 듣다 보니 가수의 목소리가 어찌나 구슬프게 들리는지, 마치 여수에 내려가 쓸쓸하게 밤바다를 걷고 있는 내가 다 떠오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임신기간은 나에겐 '여수밤바다'다. 임신기간 내내 '말 못 할 힘든 일'로 어째 잘 먹던 음식도 들어가질 않았고, 아이 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영양을 섭취했다. 그랬다. 말 그대로 영양만 섭취했다.
어수룩한 엄마는 아이를 낳고도 육아일기 한 줄을 쓰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들어가면 아이 배에 탈이 날까, 분유량을 눈금에 딱 맞추고는, 팔팔 끓인 물을 식혀 분유를 먹이는 게 다였다.
남들 다 만든다는 손바느질한 배냇저고리, 손싸개 하나조차 만들 생각을 못했던 엄마였다.
직업으로 얻은 정리병과 '아이맞이 대청소병'에 걸렸던 엄마는 출산 한 달을 앞두고 부지런히 청소와 정리를 했다. 아이침대를 중고로 들이고는, 해보지도 않았던 밤중수유를 상상하며 동선에 맞게 퀸사이즈 침대를 옮겼다. 그 덕인지 아이는 한 달이나 일찍 세상에 나왔다.
아이에 대해 무지했던 엄마, 아이가 태어난 후로도 잠을 잘 잤던 엄마, 이런 엄마가 아이에게 잘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말끔하게 씻겨주기와 깨끗한 환경에서 먹고 자게 해주는 것이었다. 뽀송하게 해주는 것, 쾌적하게 해주는 것, 태어난 아이도 따뜻한 햇빛샤워를 하며 상쾌함을 느끼길 바랬다.
미니멀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은 엄마는 아이의 물건도 최소화했다. 선물 받거나 얻은 것 이외에 손수건 한 장을 사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얻은 것이 많아 부족하지 않게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엄마에겐 아이를 키우면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버리기와 비우기를 좋아하는 엄마가 아이물건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은 아이의 작은 물건들이었다.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계급장처럼 하나씩 떼내었던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모은 것은 아이의 탯줄이었다. 예민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둔하기도 한 것 같았던 아이의 탯줄은 정확히 삼칠일인 21째 되던 날 밤 깨끗하고 정확하게 똑 떨어졌다. 똑 떨어진 집게 달린 탯줄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이와 엄마가 연결되어 있던 살이었다. 숱이 없어 대머리 아저씨 같던 아이의 머리카락을 노란 고무줄로 동여매 똑 자른 첫 머리카락을 버리지 못했다. 두께가 있는 액자를 준비해 그 안에 고이 넣어두는 게 모으기의 시작이었다.
병원에서 주었던 배냇저고리를 비롯해 더 이상 흔들지 않는 딸랑이를 버리지 못했다. 작은 상자를 하나 마련해 두고 아이의 숨결이라도 모으는 듯 그 냄새를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상자에는 물건이 하나 둘 늘어났다. 처음으로 사용했던 핑거칫솔, 처음으로 이를 닦아주었던 아주 작은 아기 칫솔, 돌전날 마지막으로 빨았던 젖병, 처음으로 입었던 점퍼, 처음으로 썼던 모자... 그 상자에는 작은 아기 시절의 아이가 숨을 쉬고 있었다. 상자를 열어볼 때마다 분유냄새가 났다.
아이가 점점 자라자 엄마가 모으지 않아도 아이의 하루하루는 그림이 되어 사진이 되어 돌아왔다. 힘을 들이지 않아도 일 년이면 두 권의 파일이 고스란히 생겼다. 파일을 들여다본 엄마는 다시는 돌아오질 않을 아이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리곤 어느새부턴가 스스로 아이의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매일 집에 가지고 들어오는 그림과 낙서를 모았다. 처음 쓴 이름이라며 액자를 사들이며 전시를 하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면 아이를 그린 그림을 슬며시 파일에 꽂아두기도 했다.
아이가 3학년을 마치니 이런 파일이 10권이나 되었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찍어놓고 추억의 물건도 다 비운다는데 미니멀리스트인 엄마는 높게 쌓인 상자와 파일을 제 손으로 비울 수가 없다. 물끄러미 바라만 봐도 십 년 치 아이를 보는 것 같아 도저히 저것들을 비울 엄두가 안나는 것이다.
이건 미니멀리스트에게 여간 고민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진으로 찍어 정리를 해둘까도 싶지만, 그렇게 하면 아이의 냄새가 사라질 것이기에 선뜻 그럴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저것들을 정리하자는 생각이 든다. 더 쌓이기 전에 정리를 해두자 싶은 것이다. 하얀색 종이 박스를 구입하고는 아이의 나이별로 추억의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잡다하고 부피가 있는 물건들이었지만 요리조리 자리를 잡아 하나하나 상자를 완성해 갔다. 정리를 하는 내내 잊었던 아이의 냄새가 났다. 잊고 있던 냄새다. 정리를 하던 엄마는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졌다. 내가 이렇게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냄새하나 숨결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엄마였구나. 엄마는 새삼 아이가 그리웠다. 이 마음을 잊지 말자 다짐하고 정리를 무사히 마쳤다.
혹시 아이가 나중에 커서 결혼이라도 한다면 이 물건을 필요로 할까? 가져가긴 할까? 너와 순간순간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너의 빠진 이빨까지 모아 온 주책맞은 엄마라고 놀리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추억에 약한 사람이었나? 그러고 보니 중학생인 내 동생이 주었던 크리스마스 카드가 한쪽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있잖아, 넌 원래 추억을 못 버리는 아이야. 그러니 아직도 내가 너랑 같이 있지"
트리모양의 녹색 크리스마스 카드, 우리가 대판 싸웠던 그 해, 어린 동생이 꼬물 거리는 글씨로 써주었던 카드를 못 버리고 있는 나. 아 이게 나구나. 미니멀리스트인 나도 원래의 나는 놓아주질 못했구나.
나는 나를 인정하기로 한다.
그래, 나도 못 비우는 구석이 있다고,
너무 싹 비우면 그것도 좀 비인간적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