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미니멀리스트인 나에게도 맥시멀리스트인 구석이 있다.
실은 내가 좋아서 많이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의도치 않게 나에게 왔는데 내가 미련이 남아 끈질기게 가둬두는 식이다. 이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도 해봤지만 역시나 비울 수가 없는 뭐 그런 것이다.
11개의 화분이 있다. 크기는 소형부터 중형 대형까지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더러 공중에 걸려있기도 하다.
이 녹색 식물들은 언제나 제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나 여기 버젓이 살아있네"라고 외치고 있다.
주말이면 꼬박꼬박 물을 주고 잘 살라고 덕담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느새 반려견, 반려묘 못지않은 생명력으로 내 옆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게 좀 웃긴 건 그중 내가 사 온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 집에 어떻게 오게 된 건지 간략히 얘기해 보겠다.
아기 손가락만 한 4개의 기둥을 가진 스투키는 내 엄마가 내 결혼 기념으로 어느 날 조그만 우리 집에 방문하며 사다 준 것이다. 그저 물만 주었을 뿐인데 이제 키가 30센티는 되게 훌쩍 자랐다. 결혼한 지 12년 되었으니 저것의 나이도 그것과 같다. 그런데 죽지도 않고 살아있다. 내 결혼 생활의 역사를 증명이나 해주는 듯 말이다.
자란 것도 일자로 쭉 자라지 못하고 허공에서 지들끼리 붙었다 떼어졌다를 반복하며 위로 크고 있다. 어떤 것은 너무 아래로 쳐져 니들끼리 좀 붙어있으라며 묶어준 가닥도 있다. 그렇게 창가 한켠을 지키며 내 결혼생활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무서운 놈들이다. 이혼하면 죽을까 봐 이혼도 못하고 있다.
피아노 위에는 난이 하나 있다. 이 난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가 태어나던, 그러니까 아이는 아직 태어나기 3개월 전쯤 초췌한 모습으로 우리 집에 온 녀석이다. 원래 있던 곳에서 다 죽어간다며 그나마 퍼런 기운이라도 있을 때 가져가라 했다며 신랑이 가져온 것이다. 내가 살려 보겠다며 배 나온 임산부는 화분을 맘에 드는 것으로 갈고 색이 바랜 잎은 떼어 정성스레 한켠에 모셔놨다. 그리고 곧 아이는 태어났다. 그런데 이 놈이 여태껏 죽지도 않고 잘만 산다. 우리 집에 온 지가 10년이니 내 아이랑 동갑이다.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 죽으라고 하지도 못하겠다. 아니, 이 난이 죽으면 내 아이가 죽을 것만 같아 고이고이 모시는 중이다.
고무나무가 하나 있다. 13년 전 가게를 개업하며 받은 것인데, 신경 쓰지 않아도 무럭무럭 잘 자라던 것이다. 키가 어른만큼이나 커졌을 때, 속 가지 하나를 칼로 베어 물에 담가 놓았다. 언제쯤 뿌리가 내릴까 3개월을 더 기다려 흙에 심어 주었다. 가지를 베어낼 때, 하얀 고무수액 같은 것이 뚝뚝 흘렀다. 하얀 수액을 보니 저것이 고무나무의 피가 아닌가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가지는 아기새끼손가락만 한 뿌리를 내리고야 내 집에 들어왔다. 그러더니 그 간 살아왔던 생명력을 자랑하듯 내 집에서도 키가 불쑥불쑥 크고 있다. 무서운 생명력을 가진 놈 같으니라고. 이왕 왔으니 내 키만 하게 키워보는 게 어느새 내 바람이 되었다.
5년이 지나도 크지 않던 화분이 가게에 하나 있었다. 가녀린 여인초였는데 어느 날 내 엄마는 나한테 가져가라고 했다. 저 놈은 크지도 않는다면서 구박을 했더랬다. 그런 여인초가 불쌍하기도 하고 길쭉하고 하얀 화분이 맘에 들어 내 집에 얼른 데리고 왔다. 워낙에 가녀린 놈이라, '그래 그래서 네가 여인초 인가 보다' 하며 해 잘 드는 베란다 출입구 옆에 관상용으로 두었던 녀석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베란다 출입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얕봐서 인가, 아니면 이제야 제 살자리를 찾은 건가, 이 녀석이 크기 시작했다. 자꾸 커가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리저리 자리를 잡아줘도 길쭉한 잎새가 여기저기로 늘어져 공간을 차지했다. 그러다 지금의 에어컨 모서리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 녀석의 생명력이 놀랍다. 언제 내가 가늘었냐는 듯 마구마구 속에서 새 잎이 삐죽거리며 나온다. 겉에 있는 잎들은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자란다. 그런 녀석이 놀라워 가끔은 속에서 비집고 나오는 새 잎사귀들을 말없이 쳐다볼 때도 있다. 대기만성형인 아주 무서운 놈이자, '모든 것은 다 내 때가 있다'라고 몸소 알려주는 생명체다.
천장에 매달린 행잉화분이 세 개나 있다. 이것들은 가게가 망해서 폐업하고 정리하던 날, 내가 가져오게 된 것인데, 원래 가게에서도 내 손으로 키우던 녀석들이다. 일요일이면 큰 양동이에 물을 담아 숨도 못 쉬게 풍덩하고 담가주던 것들이다. 그러고 나면 공중에서 먼지를 먹는 것인지, 빨아올린 수분을 일주일 동안 소분해서 먹는 것인지 죽지도 않고 잘 자라던 녀석들이다. 그러던 것들이 내 집에서도 보란 듯이 잘 자란다. 어쩔 땐 이주동안 먹지 않고도 대롱거리며 잘 살아있다.
이 외에도 몇 개의 화분이 더 있지만 의미가 있어 죽이지 못하는 화분들은 대략 이 정도다.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준다. 데리고 살려면 귀찮아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 화분들이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이것들을 데리고 살아야만 하는 의무가 생겼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어야 하고 잎이라도 떨어지면 바닥을 쓸고 닦아야 하지만 내 세월을 같이한 존재들이기에 귀찮음은 기꺼이 감수해 준다. 그리고 슬며시 그것들과 같이 살아온 내 아이에게 이 귀찮음을 넘기는 중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화분에 물 주는 날을 기다리는 내 아이는 저것들을 지 동생 내지는 지 분신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어차피 외동이니 잘 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