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라족으로 살렵니다
가슴이 봉긋해지던 그때부터 착용해야 했던 브라를 어느 날 집어던졌다.
사실 그 시작은 별것이 아니었다.
왜 그 전에는 집에서도 벗어버릴 생각을 못했던 걸까.
그때부터였나 보다.
노브라족의 맛을 알기 시작한 것이.
처음엔 식구들 조차 나를 보는 시선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아니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했을 거다.
갑자기 속옷 안 입은 여자가 된 기분.
그런데 이게 이게 참 편하다.
아주 작은 해방감도 느껴졌다.
뭔가를 아주 살짝 엇나가는 기분.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본인은 팬티를 입지 않는다고. 헉.
세상에 이렇게 편한걸 왜 입는지 모르겠다던 말씀을 기억해냈다.
저 등살을 가로지르는 끈을 왜 해야 하는 걸까.
안 하면 이렇게 편한걸 왜 해야 하는 걸까.
브래지어를 하는 이유
1. 단지 툭 튀어나오는 젖꼭지를 가리려 하는 것.
2. 할머니들의 축 늘어진 젖을 보며 내 젖도 저렇게 늘어질까 봐에서 오는 불안함.
내 결론은 이 두 가지였다.
저 두 가지를 감수할 수 있다면 안 해도 되는 거잖아.
맞다. 난 저 두 가지를 감수할 능력이 된다.
그러므로 벗어야겠다.
그날 이후로 난 당당한 노브라족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나만 당당하면 뭐하나.
사람들의 시선 또한 당당해줘야 하는데 그것이 만만치 않은 산이다.
민망함.
내가 넘어야 할 산은 바로 민망함이다.
사회가 여성들로 하여금 브래지어를 하게 하는 이유.
아마도 이 민망함이란 감정이 없어진다면 아무도 안 할 것 같은데. 아닌가.
애초에 옷을 입고 살지 않았다면 본래 안 입어도 되는 속옷 아니었나.
자, 그렇다면 감정을 없앨 수는 없으니 옷으로 커버를 해줘야겠다.
겨울엔 괜찮다. 두꺼운 코트와 패딩이 있으니.
그게 아니더라도 두꺼운 니트가 꼭지쯤은 거뜬히 커버해준다.
문제는 여름이다.
브라는 싫지만 꼭지의 튀어나옴은 사회적 인간인 나 스스로도 민망하기에 최대한 머리를 굴려본다.
밴드도 붙여보고 누드브라로 커버도 해보았지만
꼭지를 짓무르게 하는 그것들이 참 불편했다.
짓무르다 못해 가렵고 벅벅 긁다 보면 피가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언제나 여름이다.
다시 머리를 굴려본다.
쫄티 따윈 입지 않는다.
최대한 옷을 크게 입는다.
당당한 노브라족 마인드를 장착한다.
사람들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꼭지가 튀어나와 있으므로 커버는 필요하다.
우습게도 이런 나의 고민을 한방에 날려준 것이 있었으니 그 이름 또한 브라.
동생이 선물해준 무봉재 인생 브라.
인생 브라의 장점은
등살을 둘로 나눠주지 않는다.
안 입은 듯 편안하다.
민망함은 제로.
브라가 브라를 커버해주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노브라족이다.
최소한의 사회적 예의를 지키기 위해 여름에만 인생 브라를 착용하는 난 당당한 노브라족이다.
가끔은 여름에도 그냥 외출한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