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by 이다

청소를 하는데 머리카락이 끊임없이 보인다. 평소에도 하나, 둘 눈에 띄지만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날에는 어딘가에 꼭 머리카락이 박혀있는 걸 보게 된다. 난 그쪽으로 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저 구석에 머리카락이 있는 걸까. '머리카락에 발이라도 달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안을 어슬렁 거리다 보면 꼭 눈에 띄는 머리카락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한 올씩 잡아 올려 쓰레기통에 넣고 돌아서지만,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 듯 영락없이 한올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주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굽히기 싫은 허리를 굽혀 마지막 한올까지 잡아 올린다.


잠이라도 잘려 치면 여지없이 침대 주변으로 머리카락이 보인다. 옆에 상주하는 찍찍이로 찍찍 붙여보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꼭 같은 그곳에 한올이 떨어져 있다. 머리카락아 발이 달렸니. 아니면 자는 사이 내가 그리로 내려갔었니. 귀찮지만 또 찍찍이를 가져다 댄다.






어머니의 상을 마치고 서둘러 어머니의 남겨진 짐을 정리했다. 고인의 물건을 정리하고 버린다는 게 꺼림칙하기도, 미안하기도 했지만 장례식에서의 큰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가면 빨리 정리하라던 그 말씀말이다.

혼자 남겨질 아버님을 위해, 치울 힘도 없을 아버님을 위해, 힘을 내어 정리를 했다. 한 사람이 집에서 이사 나가기라도 하듯 많은 물건이 나왔다. 서랍을 열어 며칠 전에도 신었을 양말과 속옷을 꺼내고 아직은 냄새가 살아 숨 쉬는 옷가지들을 재빨리 재활용봉투에 담았다. 물건을 빼내는 데 끝도 없이 어머님의 머리카락이 나왔다. 동글동글 말려있는 파마머리카락이 서랍장 안에도, 양말에도 붙어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지는듯한 꺼림칙한 마음이 들어 더 속도를 내어 봉투에 욱여넣었다.


옷이며 살림살이며, 남아계신 아버님의 물건을 제외한 것들을 한 짐이나 내어놓았다. 어머님께는 죄송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영 아무도 비울 수 없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비어냈다. 그렇지만 비우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살아생전 꼬박 물을 주었을 화분은 치우지 못했다. 앞으로 누가 살릴까 걱정이 되면서도 예의 그 생명은 버릴 수가 없었다. 또 하나 어머님의 손길이 묻었을 장독대도 정리할 수 없었다. 콤콤한 냄새가 베란다를 꽉 채웠지만 그것만은 건드릴 수가 없었다. 장은 살아있고 그 안에 어머님 손길도 살아있을 것이기에 감히 비울 수가 없었다.


한바탕 정리를 마치고 대청소를 했다. 물건이 나간 장롱 구석구석, 서랍 안,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닥을 청소기로 밀었다. 청소기를 미는데 서랍장 발아래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엉겨 붙어 있었다. 떼어 내려해도 그곳이 제 집이라도 되는 양 잘 떼어지질 않았다. 어머님이 집을 떠나기 싫어한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래도 한올까지 마저 빼내 청소를 마쳤다.






명절 때마다 아버님이 혼자 사시는 시댁에 방문한다. 여든을 넘긴 노인이 혼자 사는 집. 나는 시댁에 가면 습관처럼 청소기를 민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나는 어머님의 머리카락을 만난다. 그것은 아무리 밀어내고 닦아내고 찍찍이를 갖다 대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가끔은 소름이 끼쳤다. 어머님의 흔적이 그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버님도 나처럼 머리카락을 주웠을까. 그렇게 두 분은 다시 만났을까.


화분은 의외로 어머님 살아생전보다 잘 자라고 있다. 아버님이 생전에 어머님이 쓰시던 물주전자로 물을 주시는 모양이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화분 옆에 주전자가 놓여있어 그렇게 짐작한다. 그러나 아무도 화분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 화분, 그들의 생명력에 그저 조금 감탄할 뿐이다.


오랜만에 베란다의 장독대도 쳐다봤다. 장독대는 다른 어떤 이의 손길도 묻지 않은 듯 그대로였다. 물론 나조차도 손을 덴 적이 없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아마 어떤 누구도 손을 데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 안에서 콤콤한 냄새를 풍기며 조금씩 익어갈 장을 식구들 모두 걱정하는 눈치다.






더 이상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지는 게 싫어 얼마 전 머리를 볶았지만(그렇게 하면 꼬불거림에 머리카락이 덜 떨어질 것 같아 그렇게 했다) 청소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다. 내가 가지도 않았던 그곳에 말이다. 머리카락은 이 집이 내 집이라는 흔적이 아닐까. 어머님의 집에 가면 언제나 어머님의 머리카락이 있듯, 치워도 치워도 끊임없이 어디선가 나오는 머리카락은 어쩌면 나보다도 생명력이 긴 내 조각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