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up

by 이다

엄마의 화장대는 늘 화장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섀도우만 해도 족히 20개가 넘었고,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빨간색이었던 립스틱이 줄 지어 서 있었다. 매일 화장대 앞에 서서 입술을 에~하며 빨간 립스틱을 바르던 엄마, 매일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빨리 커서 화장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크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엄마 몰래 립스틱을 바르며 놀곤 했다.


준비시작. 땡 하듯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화장을 시작했다. 여자는 빨간 립스틱만 바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화장에도 유행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모든 여자들이 그 유행을 따랐다. 지금 생각하면 슬프게도 나의 첫 화장법은 뱀파이어 화장이었다. 립라이너로 입술을 최대한 크게 그리고 그 안을 짙은 카키색으로 가득 채웠다. 시크한 여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때의 사진을 보면 통통한 아이가 저승사자 입술을 하며 웃고 있다.


그 이후로도 화장을 꽤 열심히 했다. 그때 유튜브라도 있었다면 뷰티유튜버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기한 화장법을 좋아해 미친 척 눈두덩이에 노란 섀도우를 발랐고 눈썹을 보라색으로 칠하기도 했다. 생각하기도 싫은 화장법이지만 그때는 내가 그랬다.








현재의 나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그러기를 십 년째다. 뭐 얼굴이 맑고 깨끗해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내 얼굴엔 주근깨와 잡티가 꽤 있는 편이다. 그래서 잡티를 가리는 진한 화장을 했을지도 모른다. 누가 그랬다. 화장 안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다고. 눈썹이 점점 진해져 어느새 부담스러운 숯덩이 눈썹이 되어가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내가 아이를 낳고 나니 아이에게 화장품이 닿을까 염려되어 화장을 안 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십 년째 인 것이다.


엄마가 되어 화장을 안 하는 사이 나는 서서히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갔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다른 것은 잘도 비워가면서 이상하게 화장품만은 한동안 버리지 못했다. 오래된 립스틱으로 가끔 입술을 바르는 날도 있었고, 외출용 눈썹을 그리는 날도 있었으니 비상용으로라도 몇 개는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그마저도 안 하고 있는 나였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이도 저도 다 귀찮은 건가. 뭐 그 둘 사이에 내가 있기는 했다.


화장을 안 하니 편하고 좋았다. 예전 같으면 맨 얼굴로 돌아다니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엄마가 된 나는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는지 얼굴을 벗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랬다. 화장을 안 한 느낌은 마치 옷을 벗은 느낌이었다. 아이 앞에서 벗을 수는 있었지만 차마 밖에서 벗어지진 않았다. 그러던 것이 매일 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거리낄 것 없이 맨 얼굴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게, 기분이 꽤 괜찮았다. 가리고만 싶던 주근깨도 어쩐지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알았다. 나에게 더 이상의 화장품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걸.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걸. 그렇게 비움의 절정에 다다른 어느 날, 섀도우, 펜슬, 립스틱 몇 가지만을 남겨둔 채 아낌없이 버렸다. 더 이상 얼굴을 덮는 화장품은 안녕이었다.


메이크업에서 해방된 나는 얼굴을 덮는 화장을 하지 않기 위해 기초 화장품을 열심히 바른다. 종류는 단 하나, 수분크림이다.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툭툭 턴 다음 재빠르게 수분크림을 듬뿍 발라준다. 가끔은 건조해진 팔, 다리에도 슥슥 발라준다. 얼굴에 무언가를 바를 때 공들이지 않는다. 그저 바르는 것만 잊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미니멀리스트가 된 나의 화장품 바르는 과정이다. 수분크림 외에 아무것도 쓰고 있지 않지만, 여러 가지를 덧대어 바를 때와 얼굴 상태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한 가지만을 고수하는지 모른다. 화장품이 거의 없으니 화장대도 필요 없고 화장실이 화장대가 된 지 오래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려 슬쩍 내 소망을 말해 본다면 나는 크림 하나만을 두어 아이와 같이 쓰고 싶다. 그런데 자꾸 어디선가 1+1의 잔재들이 나에게 들어오니, 일단은 그것들을 해치운 후, 온 가족이 단 하나의 크림을 찍어 바를 날을 기다리기로 한다.








어렸을 때 생각했다. 난 결혼하면 매일 화장하겠다고. 드라마에 나오는 엄마들은 모두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왠지 화장 안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무릎 나온 츄리닝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지금 십 년째 화장은 고사하고 츄리닝은 고사하고 더 험한 꼴을 하고 있다. 지금은 머리까지 추노를 하고 있으니 아이가 엄마를 슬슬 피한다. 학원차량이 픽업 오는 시간, 절대 나오지 말라던 아이의 작은 목소리를 들었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 나를 피했다. 물론 난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어째 잊히지는 않는다.




그래도 말이다. 이 엄마는 더 이상 얼굴을 가리는 화장을 하지 않을 거란다.
너를 위해 시작한 노 메이크업이지만 그게 엄마를 더 메이크업 시켜 주었거든.
아무 때나 세수할 수 있는 가벼움을 알게 해 주어 고마워.
세수하고 크림하나 바르면 끝나는 이 편안함을 엄마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