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얼마만큼의 물건이 필요한 걸까. 나는 왜 비우려고 하는 걸까. 그래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정리하고 비우면서 늘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비우면 일단 후련하다. 공간을 싹 비워냈을 때의 쾌감은 흡사 추운 겨울날 목욕탕에서 때를 박박 밀고, 바나나 우유 하나를 쪽쪽 빨고 나왔을 때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비움에는 그런 후련함이 있다. 그런데 후련함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이 후련함을 느끼려고 비우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러려면 때를 밀러 가야지.
비우는 과정을 몆 년간 해오면서 가장 크게 깨닫게 된 건 비우는 과정은 다름 아닌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여정이었다는 것이다. 설레지 않는 옷을 버리며 내 스타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색과 싫어하는 색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간혹 아깝다며 애써 남겨 두었던 것도 몇 해가 지나 비우는 나를 보며 더 정확하게 나의 느낌을 신뢰하게 되었다. 살림살이를 하나 살 때도 비움을 전제로 생각하게 되자 웬만하면 사지 않을 뚝심을 갖게 되었다. 예쁘면 사고 싶다는 생각은 더 이상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꼭 필요한 물건이 생겼을 때, 그때 그 물건의 예쁨을 따지게 된다. 꼭 필요한데 예쁘기까지 하면 그 물건을 쓰는 내내 행복하다. 나에게 물건에서 오는 행복이란 그런 것이다.
이 지난한 시간은 특히나 쇼핑을 할 때, 엄청난 재주를 갖게 해 주었다. 나에게 맞는 물건과 아닌 물건,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정확히 알게 되자, 어떤 물건이든 눈에 띄면 망설이 없이 바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가 고른 물건에 실패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것은 심지어 보기만 하고 구매하는 온라인 쇼핑에서도 통하게 되었다. 비움을 통한 내 취향의 발견이었고, 결국은 그 물건을 좋아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비우지 못하는 물건을 마주했을 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 물건을 비우지 못하는가. 비우던 손을 놓고 박스를 뒤적이며 한참 동안 추억에 빠져 웃고 있는 나를 보기도 했다. 나는 꽤 단호하고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지만, 그것이 추억 앞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집 벽 여기저기엔 아이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냉장고엔 편지가 붙어있다. 심지어 한쪽 벽이 온통 그림으로 도배되어도 그 벽을 가리지 못하고 있다. 이사를 간다면 뜯어갈 수 없는 벽이니 그게 아쉬울 뿐이다. 추억을 비우지 못하면 더 쌓일 텐데, 앞으로 이 추억을 어느 상자에 담아야 할지가 나에겐 남은 과제다.
그럼에도 생각해 본다. 내가 되고 싶은 미니멀리스트의 모습을.
나는 가방 안에 파우치가 없는 여자. 그래서 가방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저 핸드폰 하나 달랑 들어갈 작은 크로스백이 있으면 좋겠다.
화장은 십 년째 하고 있지 않으므로 아이와 함께 바를 로션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아이섀도와 립스틱하나 추가요)
욕실에는 비누 하나만을 두어 머리도 몸도 비누 하나로만 씻어내고 싶다. 여차하면 노푸족까지도 꿈꾸지만 남편이 반대해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샴푸나 린스를 자꾸 사들고 온다)
그러나 이것은 내 작은 소망이다.
락스 이외의 세제를 쓰지 않는 삶. 최소한의 거품만을 내는 삶을 살고 싶다.
왜 이렇게 비우는 삶을 바라는 걸까. 세례를 받은 나는 불교에라도 귀의하려는 것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느 날 집을 떠난다면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과연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나는 칫솔하나로도 잘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0일 동안의 여행 짐을 꾸리며 이런 생각은 더 커진다. 여행가방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 티셔츠 두벌, 셔츠 두벌, 바지 두 벌, 양말과 팬티 몇 개, 노브라족이므로 브라는 필요 없고, 로션하나, 칫솔 하나 그리고 물티슈하나. 나머지는 내가 입고 가는 옷과 신발이 될 것이다. 자그마한 물건들은 파우치 하나에 쏙 넣고.
이렇게 쭉 적어놓고 보니 내가 원하는 삶은 결국 최소한의 물건만 소지하는 가벼운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무겁게 하지 않는 것. 그래서 가방하나 끌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삶. 바리바리 챙기지 않아도 아쉬울 것 없는 삶. 내 몸도 내 맘도. 그래 그거였구나. 그래서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거였구나.
미니멀리스트로 살면서 알게 된 나란 사람, 어쩌면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나였을지 모른다. 설령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지니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서 후련하다.
이 기분을 알았는데 여기서 더 쌓고 살지는 않겠지.
쌓는 것은 추억만 쌓기로.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오늘도 약속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