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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섬결 생각

아줌마, 거기로 다니지 마!

찬물 샤워를 맞고......

by 나탈리


딸아이와 함께 가벼운 외출 후 귀가하던 길이었다. 식사도 했겠다, 차도 마셨겠다, 운동 삼아 슬슬 걸어가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낯익은 거리를 기웃대며 새로운 카페나 식당을 발견하는 것은 걷는 동안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눈동자는 어느새 반짝반짝 카멜레온급 모드로 전환! 다행히도 우리는 둘 다 그런 쪽으로 마음이 잘 맞는다. 동화 같은 분위기, 맛깔스러운 음식 포스터 앞에서는 걸음을 잠시 멈춰야 옳다. 다음에 꼭 한 번 와 보자는 말과 고갯짓이 있고 나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꼭 집어 저장해 놓은 곳에서 맛볼 시간 - 대략 며칠분의 행복을 앞당겨 저장하고는 흡족함에 겨워 아파트 뒷마당으로 네댓 걸음 걸었을까, 난데없이 날아오는 성난

말투.

“아줌마, 거기로 다니지 마, 다쳐!”

저만치에서 경비아저씨와 함께 걸어오는 낯선 이의 호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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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라니, 분명 나한테 하는 말이겠지? 심정이 팍 상해, 오던 길을 돌아보았다. 자동차 차단막이 올려진

상태라 우리가 무심코 보행로가 아닌 곳으로 걸어온 것을, 험상궂은 인상(화내는 사람의 인상은 모두 험상궂다!)의 아저씨가 지적한 것이다.

“저기 써 붙여놨잖아. 그리 다니지 말라고!”

뒤쪽을 가리키는, 동시에 나를 향한, 다소 거칠어 보이는 손짓. 삿대질인가...... 휘청이는 마음, 홧홧거리는 얼굴. 이웃의 위험을 진심으로 염려함인지, 안내문을 못 발견하고 자동차 통행로로 다닌 사실에 화가 난 건지. 상한 심정으로서는 후자에 더 무게가 기울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경고라 하기에는 감정이 너무 실렸다. 야속했다. 우럭우럭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달래며, 일단 죄송하다고 말하고 들어오긴 했건만, 생각할수록 당황스럽기만 했다.


‘좋은 의도인 것은 충분히 알겠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싸우자고 덤비는 꼴로 윽박지르며

말할 건 뭐람. 주위에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좀 더 가까이서 차분하게 얘기하면 못 알아들을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질풍노도기 청소년 같으면 비뚤어지기 딱 알맞은 말투로 그게 뭐냐고.

찬물을 끼얹어서 사람을 무안세수를 시키다니. 종이에 써 붙여 놨다고 다 읽나? 글자가 대문짝만하지 않은

이상 못 볼 수도 있지 말이야. 아, 정말이지, 못 보고 지나친 내 눈이여, 불쌍타! 가뜩이나 노안이 와서 심슨

학원이 삼촌네 학원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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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해명 한 마디 못하고, 사과 한 마디로 물러나온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이성이고 뭐고 시원하게 변명이나 해 볼 걸 그랬나.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후회만 곱씹다가 약속이 있어 나가는 길, 경비아저씨에게 아까 그분 누구냐 물었더니 같은 아파트 주민이란다. 마침 저기 계시다고 가리키기에, 침착하자 그리고 이성적으로 대화하자고 다짐을 해 가며 다가갔다. 평소 일면식도 없던 얼굴. 아니, 몇 번 마주쳤어도 기억에 남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다.


“아저씨, 아까 저한테 말씀하신 거 말인데요.”

“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하는 뻣뻣한 태도.

“잘못을 일깨워 주신 건 감사한데요.”

예까지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으로 돌려버리더니 그만하라는 듯 손짓으로 말문을 막아버린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기분 나쁘다 따지러 온 거 아니냐. 그는 온몸으로 이런 말을

주장하는 중이었다.

“목소리가 너무 컸어요, 꼭 싸우려는 사람 같이.”

“예, 내 목소리가 원래 좀 큽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저쪽으로 가버렸다. 어이없게도 경비아저씨가 죄송하다고 대신 사과를 한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어쩜, 사람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자긴 원래 그렇다고 뻗대는 저 태도는 뭘까. 아무리 연배가 높다고 해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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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옳은 말도 방법이 그르다면 효과가 있겠습니까? 저 같으면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그곳은 수시로

자동차가 다니는 곳이라 위험하니 다음부터는 꼭 보행로를 이용해 주세요, 이렇게요. 저 기분 무지 상했어요.

낯선 이웃 아저씨, 홍두깨 같은 말투를 바꿀 수 없겠지만 권고할 때는 언성을 조금만 낮춰 주세요, 부디.’

마음에 깊이 새겨두지 않으려 허공에라도 속삭여야 했으니, 금기어를 내뱉고자 모래구덩이를 파는 이솝 우화의 이발사처럼 되기는 싫음이었다. 옳은 말을 기분 상하게 하는 출중한 재주를 지닌 그가 내게 말할 기회를

준다면, 그리하여 이 얘기를 듣는다면, 아줌마가 뭔데 나를 가르치려 들어? 이러고 화를 낼지도 몰랐다. ‘나를

가르치려 들어?’ 이 말은 주로 완고한 어른들이, 말문이 막히거나 수세에 몰릴 때 쓰는 전형적인 대사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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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뭐 배울 점이 없는가요? 꼭 윗사람이 되어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도 있듯이, 갓난아기에게도 유치원생에게도 배울 점은 있을 거예요.'

나름대로 대비할 말을 떠올려 보아도 그런 기회가 과연 올까 싶은 의구심. 경청의 자세가 눈곱만치도 없는

이웃. 그런 이웃과는 굳이 마주하고 대화하고픈 생각마저도 더는 일지 않았다. 그날따라 옆 라인에서는 층간 소음 문제로 경찰까지 출동하여 뒤뜰이 시끌벅적한 상황이라, 고성의 반말로 인한 마음의 상처 따위는 더

이상 화제 축에도 못 들 것이 뻔했다. 그저 오지랖 넓은 이웃 주민이, 이웃을 지극히 생각하는 마음으로

언성을 높여(본인은 평소의 언성이라 주장하지만) 이웃에게 경종을 울린 일로, 잊어버리는 게 피차 만수무강에 보탬이 될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소한 가르침에도 감사할 것, 상한 기분은 가라. 그리고 안내문을 잘 읽고 다닐 것! 마음을 정돈하여

그날의 교훈을 새겨 본다. 마음과 마음이 상처를 입고 할퀴는 층간소음 문제는 어찌 되었는지. 원만히 해결되었기를!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잠언 15:1~2절)

잠언 구절로 생각을 갈무리하며, 언제나 ‘지혜 있는 자의 혀’를 지닐 수 있기를 진정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


KakaoTalk_20250321_132327211.jpg Chat GPT 그림 : 지혜로운 언어생활을 꿈꾸는 자아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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