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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Feb 18. 2024

방 임자가 왔습니다!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지 4개월여 만에 딸내미-방 임자가 왔다. 할머니 장례식 참석 차

4박 5일의 일정으로 귀국하게 된 울 막내.

며칠 전 여행을 떠나는 딸내미의 친구 편에 김치며 과자며 옷가지 몇 개를 전해 주었었다.

모처럼 만에 친구랑 즐거이 지내던 아이는 친구가 떠나는 날, 너무 슬퍼서 공항까지는 못 데려다주겠다고 선언했다는데, 할머니의 부음을 그날 받고 말았다. 부리나케 항공권을

예약하고, 슬프니 배웅 안 하겠다던 친구랑 같은 비행기(성수기이고, 갑작스레 예매하여 값이

좀 비싼 게 흠)를 타고 올 수 있었다는.....



한밤중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의 치킨을 발견한 치킨마니아! 먹어도 되냐 톡을 날린다.

일본 치킨은 비싸기도 하고 우리나라 치킨만 못해서 치킨이 너무도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아이. 한밤중에 식어빠진 치킨일망정 맛나게 먹었단다.


다음날 오후에사 장례식장에 온 아이는 할머니 영전에 인사를 드리고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할머니 장례식에 오려고 물 건너왔다 설명하니 기특하네, 칭찬하는 어른들.

"당연히 와야지 뭘..... "

"그래, 울 막내. 잘 왔어."

식사를 차려 주니 육개장도 맛있고 코다리조림도 맛있고 김치도 맛있다며 연신 수저를 움직인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컨디션이 안 좋은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졸고 있다. 휴게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라 몇 차례 권했더니 제 언니와 아빠를 이끌고(혼자 가긴 뻘쭘하니까) 가는 것이 피곤하긴 피곤한가 보았다. 현해탄을 건너왔으니 피곤도 하겠지 싶었다.


마지막 제사, 발인, 일련의 절차를 거쳐 할아버지 할머니를 합장한 묘에 황토흙 한 줌

덮어드리는 것까지 아이는 외손녀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시내에서 '외할머니가 베푸는 마지막 식사'로 일가친척이 다 모여 갈비탕을 먹고, 아이는 제 언니와 먼저 출발하였다. 몸상태가 안 좋아 찌푸린 얼굴이 이모에겐 밉상으로 보였던가, 언니의 지나는 듯한 몇 마디를 듣고 엄마로서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다.



고국에서의 4박 5일 휴가는 이제 딱 하루가 남았다. 목 금 토- 할머니 장례식 3일 빼고 나면

일요일만 온전한 휴가로 보낼 수 있는 셈이다. 나 물 건너온 몸이야, 를 내세우며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작성하는 딸내미.

"삼겹살 김치찜을 먹고 싶어. 소고기뭇국도. 카페도 가고 싶어. 엄마랑 언니랑."

무조건 따라야 했다. 물 건너온 딸내미의 주문이니까. 안 그러면 뭔가를 호소하는 간절한 눈빛(짱구처럼)을 쏘아보내, 어찌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어느 카페에 갈까를 고민하다, 전에

간 적이 있는 카페를 고른다.


"카페 갔다 오는 길에 붕어빵도 먹어야 하고, 마트에서 김치랑 과자 몇 가지를 사야 하고, 에 또

고모 집에 가서 로제 떡볶이를 먹고".

"잠깐만. 김치는 친구 편에 보냈잖아?"

"김치? 친구가 공항에서 빼겼대."

"어쩌다?"

"15킬로가 넘어서 기내에 들고 탔더니 빼앗더래."

"아까워라! 파김치 비싼 건데...... 캔에 들은 김치도 몽땅?"

"응. 깻잎은 받았어."

"아까워. 멀쩡한 김치를 왜 빼앗고 난리래?"

"몰라, 백 그램을 초과하면 액체로 인식이 되어, 비행 금지 물품으로 인식이 된대."


이만 원 가량의 물품을 빼앗겨 속이 쓰린 어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미션을 주욱 늘어놓는다. 몸은 한 개인데 수행해야 할 미션은 너무 많다. 컨디션 안 좋은 거 맞아? 했더니

집에 오고부터 나아졌다 하는 딸내미. 일정이 너무 빠듯해 친구를 못 만나고 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집에 새로 들여온 살림살이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아이. 프라이팬이나 깔끔한 양념통 같은

자잘한 소품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집이 많이 변했다며 좋아한다.

"쉬는 동안 정리하고 쓸고 닦고 꾸미고 했지. 엄마가 또, 한 깔끔하잖니."

어깨를 으쓱대며 너스레를 떨어 보았다. 방 임자가 돌아와 제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니, 집안이 따사롭고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빈 공간이 싫어 아이의 침대에서 자곤 했는데, 오늘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다.


떠나는 당일. 웬일로 아이가 공항에 나오지 말라 한다. 공항에서 먹고픈 음식이 별로 없다며.

이제 공항 메뉴는 다 섭렵했나 보네? 은근히 같이 가자 해 주길 기대했기에, 내심 섭섭다.

아빠도 언니도 출근하고 엄마는 당연히 시간 있으니 가 줄 수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니 여유작작 아침을 챙겨 주었다. 주문한 소고기뭇국, 삼겹살 김치찜, 멸치조림, 큰애 출근 메뉴로 만든 토스트 반쪽까지 깨끗이 비워내는 방 임자!


어제저녁 고모집에서, 로제 떡볶이랑 교촌치킨이랑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흡입하고도 속이 말짱한  모양이다. 아무리 4개월 만에 맛보는 고국음식이라지만, 며칠 사이에 기름진 음식을 연달아

섭취해도 괜찮을까. 잘 먹는 모습이 흐뭇하면서도 걱정이 이는 걱정댁 엄마. 멸치조림을 꽁꽁 싸매 캐리어 속에 쑤셔 넣었다. 멸치조림 속에 간간이 숨어 있는 '주꾸미 골라먹기'를 좋아하는

아이.  


공항에 갈까 말까, 중심을 못 잡고 춤추는 마음추가 마침내 결정타를 맞고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이의 권유대로 공항에 가기로 한 것이다. 두 아이 아침 차려주느라 준비할 시간도 없었는데, 후줄근한 모습 그대로 세수만 하고 머리만 빗고 길을 나섰다. 내가 빛나니까 엄마는 좀 후줄근해도 괜찮다는 아이. 칭찬인지, 욕인지.


제2 인천 공항까지 무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하여 딸애가 체크 인 하는 과정을 찬찬히 관찰했다. 혹시라도 해외 나갈 일이 있으면 헤매지 않으려고. 정오가 조금 남은 시각. 

"엄마 배 고파. 너희 챙겨주느라, 아침도 못 먹었단 말이야."

점심을 안 먹겠다는 아이를 달래 점심을 챙겨 먹이고, 사진을 백 장은 좋이 찍어 준 후,

탑승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방 임자는 그렇게 아쉬움 많은 휴가를 마치고 또 타국으로 떠나갔다. 젊은 시절의 경험치를

쌓기 위해. 방 임자가 떠나간 집은 다시금 재부팅된 허전함만 와락 안겨줄 것이다.

홀로 돌아오는 길, 하늘이 참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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