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탈리 Oct 26. 2024

돌아온 도끼 칼



아이야, 너의 특별했던 9월에 대해 쓰고 싶구나. 1년 동안의 워킹 홀리데이를 마무리하고 귀국하기 위해 너의 9월은 무척 분주하였다. 며칠 안 되는 남은 날수의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타국에 펼쳐 놓은 너의 보금자리를 정리하느라 이래저래 골머리를 앓았다고 했지. 급선무는 항공권 구입이었다. 네가 떠난 지 만 1년째인 9월 30일 혹은 하루가 지난 10월 1일에는 반드시 출국을 해야만 했다. 거기서 하루만 늦어지면 불법 체류자가 된다. 항공권 예매를 겨우 마치고, 차근차근 짐을 꾸려야 할 때가 다가왔으나 정리정돈을 매우 버거워하는 너로선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너는 언니에게 호소했다. 

“와서 택배 싸는 것 좀 도와줘~” 


마음 약한 네 언니는 갈까 말까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갈 수밖에 없었다. 썩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동생의 

택배 세 박스를 마무리하고 24인치 캐리어에 네 짐을 한가득 채워가지고 온 네 언니! 형 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에서도 보듯, 언니 노릇도 참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아우보다 나은 형의 도움에 탄력을 받은 너는 비로소 

귀국 준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침대를 분해하여 낑낑대며 1층까지 내놓고 나눔을 하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는데, 리사이클 

업체에서 실어가 황당했다는 푸념. 나눔의 의미가 퇴색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했지. 너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가져가 주었으면 바랐겠지. 하지만 꼭 그리 생각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너는 짐을 무료로 처분해서 

좋고 업자는 팔아서 이익을 얻어 좋고 결국 누군가는 저렴하게 구입하여 사용하니 좋을 것이다. 돌고 돌아 

나눔은 이루어지니 그 의미 또한 퇴색되지 않으리라 생각하자.



1년 임대한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전자레인지는 때깔 나게 닦아 출국 며칠 전에 반납하고, 빌트 인 가스레인지는 철수세미로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박박 문질러 닦았다지? 처음보다 더 반짝이게 말이야. 김이나 

캔김치 같은 자잘하나 요긴한 식량, 드라이기나 다리미, 수납 선반이나 협탁은 도와준 친구들에게 나눠 주고, 

타월이랑 카펫, 기타 살림살이는 눈물을 머금고 버렸다 했다. 


정리되어 있을 땐 몰라도 꺼내 놓으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살림살이들에 새삼 놀랐을 테지? 시간만 되면 

달려가 말끔히 정리하고 청소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구나. 그래도 언니와,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의 도움 덕에 짐 정리도 끝나고, 무사히 집 검사도 마치고 일본에서의 마지막 며칠을 여행자처럼 호젓하게, 

여유롭게 보내다 올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까다롭기로 소문이 자자하던 집 검사가 의외로 순조로웠던 

것은 그만큼 대비를 잘했기 때문일 거야. 처음 임대할 때의 모습 그대로 되돌려놓기가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쓸고 닦느라 고생 많았겠구나.


공항까지 배웅하러 와 준 일본 친구 앞에서 흘린 너의 눈물 한 사발! 거기는 많은 것이 담겼을 것이다. 

언어가 서툰 외국인 동료에게 베풀어준 친절, 업무 중 얻은 여러 가르침, 그리고 교제, 1년 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에 대한 석별의 아쉬움, 뭐라 말로 표현할 길 없는 감정들...... 생각의 소용돌이를 달랠 시간, 석별의 아쉬움을 

희석할 시간은 짧은 저녁 시간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눈물은 모든 감정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찬사요 안식처였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너는 도끼 칼과 함께 돌아왔다. 간식을 잘라먹을 때 사용하던 너의 도끼 칼. 일본에 따라갔다 다시 너를 따라 귀국한 너의 도끼 칼! 자칭 식도락가인 네가 간식 타임을 위해 구입한 도끼 칼을 처음 대면하고 웃음이 

절로 나왔었다. 귀여운 생김새에 비해 이름이 좀 우악스럽다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주 요긴하더란 말이지. 

네가 없는 동안 그 칼이 생각나더란 말이지. 그러니 다시 돌아와 도끼 칼이 제 다리에 꽂혔을 때 참 반가웠단 말을 하고 싶더란 말이지. 



너는 또 애지중지 아끼던 접이식 원목탁자를 구입가보다 더 비싼 EMS비용을 감수하고 기어이 가져왔다. 

그것은 친구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포장의 비술 – 박스 두 개를 이어 붙이는 방법-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 기다림이 한계에 달할 무렵, 그것은 우리 집에 도착하였다. 너는 임대라는 이름으로 엄마에게 비싸디 비싼 탁자의 사용권을 넘겨주었다. 그냥 주긴 아까웠던 거니? 원목 탁자는 그동안 너의 빈 

방에서 네 책상과 네 의자를 사용하다가 식탁으로 밀려난 엄마를 위한 특별한 선물이 되어 주었다. 너의 

염원과 타국생활에서의 애환이 동시에 담긴 책상이라,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지만, 되돌려주는 그날까지 

아끼며 잘 쓰마.

  

택배를 학수고대하며 귀국 후 이십 여일이 지나도록 인상이 펴지지 않던 너. 옷 욕심이 가뜩이나 많은 네가 

열심히 인터넷에서 구입한 옷들. 엄마와 언니가 우체국까지 짊어지고 가, 수도 없이 부쳐야 했던 옷들. 

그 옷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야 네 일상이 가능할 정도로 너는 당장 입을 옷이 없다며 울상이었다. 

주인보다 

앞서 부쳐졌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올 생각을 하지 않는 택배! 덩달아 가족들까지 기분이 가라앉으며 염려가 깊어지던 즈음 세관에서 우편물이 날아왔다. 내용물 신고 액수를 잘못하여 세금을 내야 한다는 요지의 통보문! 너는 황급히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어 사정을 설명하고, 세금을 피할 방법을 물었다. 


워홀 생활을 마치고 입던 옷을 꾸린 짐인데 웬 세금? 수입하는 것도 아니고 입던 옷인데 세금이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이런 의문들이 마구 피어올랐다. 황급히 담당자의 지시대로 워홀 비자와 일본 재류카드를 보내고 며칠이나 지났던가. 찔끔찔끔 택배가 왔다. 먼저 부쳤던 것보다 나중에 부친 택배가 먼저 오기도 하고, 

하여튼 중구난방으로 오던 택배가 마침내 오늘로 끝이 났다. 뜯었다 재포장된 흔적이 역력한 택배상자! 

어떤 것은 그대로이고 어떤 것은 재포장된 채였다. 꺼림칙했지만 받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택배가 안 온다며 안달복달하던 네게, 세금 없이 무사히 통과되어 네 품에 안긴 네 옷들! 감사하자꾸나. 

정리하느라 분주한 너, 드디어 만면에는 미소가......


도끼 칼과 원목 탁자를 데리고 캐릭터 인형을 한 바구니쯤 짊어지고 돌아온 어른 애기! 가깝고도 먼 나라로 

용감히 떠났던 네가 일본에서 얻은 건 무얼까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바라건대 젊은 날의 노트에 빼곡하게 

수록하고픈 귀중한 추억이자 자산이기를! 새로운 삶을 여는 네게 의욕의 불쏘시개이기를! 

 



작가의 이전글 목요일, 성수동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