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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여인, 보따리를 꾸리다

보따리를 끄르며,

by 나탈리 Nov 21. 2024



귀여운 여인, 오늘도 보따리를 꾸리셨네

노쇠한 몸 의탁하러 피난 오셔서는

또다시 어디메로 떠나가려는지

보자기도 못 구해

양말, 속옷, 손수건을 고이 감싼 

어르신의 낡은 메리야스!

목욕재계 후 보따리를 꾸리는 신성한 의식

그런 낙으로 하루를 사는 

귀여운 여인, 

우리네 어머니

날마다 보따리를 풀며 생각합니다

보따리는 그저 보따리가 아니라 

소망의 보따리라고

영혼의 쉼터를 향한 아름다운 갈구라고


센터에는 귀여운 여인들이 많다. 어르신에게 귀엽다 하면 실례일지 몰라도 어르신들은 참으로 귀여우시다. 

목욕 순서를 기다리며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도, 인사를 하면 아까도 보고 또 보니 반가워요,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도 귀여우시다. 프로그램에 열성적으로 임하는 어르신들, 세면 수건을 가져가면 몇 개씩 접어? 묻는 모습, 밥 먹을 때 안 되었어? 요양보호사 님들께 묻는 모습은 영락없는 천진난만한 어린애다. 


그 중에서도 제일 귀엽게 느껴지는 어르신이 있다. 바로 보따리 싸는 어르신. 처음에는 요양 보호사님이 

재미 삼아 꽁꽁 묶으셨나 생각했다. 보따리가 거의 날마다 내려오기에 동료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어르신이 

손수 보따리를 싸 놓는다는 것이었다. 

‘참 어르신도! 어차피 이 옷 저 옷 다 섞어 세탁할 건데 뭣 하러 힘들게 묶으실까?’ 

날마다 보따리 풀기는 계속되고, 보따리를 풀다, 풀다, 아마도 보따리는 어르신이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집으로 가고픈 어르신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당신의 체취가 배어 있는 집으로 돌아가, 지내고 싶은 소망의 표지 같은 것.

귀여운 여인으로 인해 보따리를 풀 때마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의 보따리는 절로 열리곤 한다. 보따리가 

그리움을 감지하는 자동 센서인 셈이다.

‘울 엄마는 한 손을 사용하지 못하였으니 이 어르신처럼 피난 보따리를 쌀 수도 없으셨겠구나.’

차츰, 귀여운 여인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다가가 다정스러운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 보면 어떨까? 

손도 잡아 드린다면 오지랖을 떤다 비웃음을 당할까......


브런치 글 이미지 1


보따리 싸는 귀여운 여인은 또 한 분 계신다. 그날도 마지막 배달을 갔다. 햄퍼를 끌고 가, 5층에 인계를 

마치고 나오는데, 어르신 한 분이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한 손에 보퉁이를 들고 안절부절못하다 

물으신다.

“어디로 나가야 돼요? 선상님, 나가는 문 어디여요?”

아담한 체구의 귀여운 어르신. 그 눈빛은 절망과 초조가 뒤엉켜 있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게 나가는 

문 좀 가르쳐 달라고 애원하는 그 눈빛! 가슴이 저려 왔다. 그런데 요양 보호사 선생님들은 깔깔거리며 

어르신을 만류하는 것이었다. 

“어르신, 지금 나가시면 안 돼요!”

“내가 웃을 일이 없었는데 어르신 때문에 웃네.”

서너 명의 요양보호사 님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거리고, 어르신은 애처로이 구원만을 바라고 계셨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들은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아마도 이런 일이 때때로 있었던가 보다. 그들 중 한 분이 어르신의 보따리를 가져다 풀어 본다. 그래도 이 어르신은 어디서 구했는지, 초록색 보자기로 보퉁이를 꾸리셨다. 요양 보호사 님이 비닐 소재 앞치마를 집어 들고, 이런 걸 왜 넣었냐고 원위치(빨래 건조대)로 가져가려 

하니, 어르신은 울상을 하며 “안 돼-, 도로 집어넣어-” 하신다. 식사 때 꼭 필요한 앞치마를 가지고 집에 가고 싶으셨던 거였다. 결국 모세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귀여운 어르신의 피난 보따리 사건은 해프닝으로 

그치고 말았다. 홍해가 갈라지고 뒤쫓아오는 병거를 피해  무사히 애급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에게는 모세가 있었으나 귀여운 여인이 집으로 이를 수 있는 길은 시간을 되돌려 젊음을 되찾는 길밖에 없을 것이었다. '출구를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진 어르신이 낯선 요양원에 잘 적응하게끔 애쓰는 것도 그녀들의 임무이자 

능력인 것. 잘 알아서 하시겠지.....’  

안타까운 마음을 살포시 접어 그 자리를 떠나와야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결코 사랑 없이는 힘들 것이다, 귀여운 여인들을 돌보는 요양 보호사 님들의 업무는. 과도한 인정에 흔들려서도 안 되고, 연민에 마음추가 기울어가도 임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생길 듯하다. 사랑과 긍휼을 품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업무에 충실하는 프로의 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 는 말리 출신의 작가 '아마다우 한 파트 바(Ahmadou Hampâté Bâ)의 격언이나 노인 인권선언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오랜 세월 사랑을 베풀다가 도서관 분량의 지혜와 경륜마저 내려놓고, 이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놓인 어르신들! 그 존재에 감사와 사랑과 존중 말고 무엇을 더 바칠 게 있을까.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서유석 님의 노래 가사조차 마음에 자꾸만 와닿는 요즘, 어르신들에게는 

건강과 평안을 바라 마지않으며, 요양 보호사 선생님들의 수고에는 박수를 무한 반복하여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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