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별곡의 탄생 비화
살어리 살어리랏다
직장에 살어리랏다
급여랑 연차랑 먹고
직장에 살어리랏다
연차하면 떠오르는 목엣가시 같은 기억 하나. 전 직장에는 연차가 따로 없었다. 하여 최대한의 가련한 눈빛과
공손한 표정은 급한 볼일로 하루이틀 말미를 얻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고, 특히나 이를 잘 실천하는 직원이 몇몇 있었더랬다. 그럴듯한 핑계(99프로 핑계)로 조퇴와 결근이 잦은 동료가 있다 치자. 그를 지켜보는 직원들의 불편한 심정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도 두셋만 모이면 그 핑곗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일 것이다. 아니다, 분명 핑계일 것이다. 한 달에 일여덟 번 조퇴와 결근을 하는 사람이 어딨나, 회사가 장난도 아니고.....'
설전은 회사에서 그에게 주는 특혜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가 로열패밀리라 조퇴니
결근이니 그렇듯 빈번해도 중간관리자가 아무 소리 못 하는 거라고. 그런 불합리한 상황이 싫어 관리자에게 연차 얘기를 넌지시 꺼내 보았으나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고 오히려 별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어찌 생각하면, 우리가 못 찾아 먹는 연차를 그 혼자 다 누리는 듯했다.
‘연차를 갖고 싶어! 휴가도 연차도 아닌, 연차를. 초라한 구걸은 싫은 걸!’
급여도 연차도 찾아 누려가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는 것이 그 당시의 목표이자 소원이라면 소원이었다.
‘내게 연차를 달라, 달라, 달라~’
끝내 그리 현명하지 못한 방법으로 연차를 요구하다 석연찮게 퇴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측은 자발적 퇴사라 통보하고 지인들은 누가 봐도 해고 같다 하는 사태가 벌어지던 그때, 문득 떠오르던 ‘소탐대실!'
‘연차 좀 찾아 먹겠다고 떼쓰다가 직장을 잃고 말았구나. 따지고 보면 괜찮은 직장이었는데......’
사측은 그동안 허용하지 않던 연차를 환산하여 입금해 주는 대신 괘씸죄로 '연차바라기'를 응징해 버렸다.
처음, 부당한 처사에 길길이 날뛰는 마음을 억누르며 법정 싸움을 하다가 중도에 그만두었다. 끝까지
싸우기에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고,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될 게 불 보듯 훤한 일로 새해를 맞고 싶지
않았다. 또 존재 자체가 부끄러웠다. 숨을 데라도 있으면 꽁꽁 숨어, 머리카락 한 올조차 세상에 안 보이고
싶은 심정. 그러면서도 마치 실낙원이라도 되는 듯 그곳을 그리워하던 것이 당시의 심정이었으니, 어찌 보면
어리석음의 끝판 왕 같기도.
인생 공부 한 번 거창하게 한 덕분으로, 한동안 알바를 전전하며, 한두 해가 지나면 지혜도 좀 쌓이겠거니,
억지로 스스로를 위로해야만 했던 그때. 정녕 노한 사람에게서 슬기로움을 구하는 것은 무리였던가. 성낼
줄만 알았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궁리하지는 못했고, 사측 역시 괘씸하다는 이유로
협의란 것을 하려 들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괘씸죄일지도 모른다. 괘씸죄인은 졸지에 연차 없이도 그럭저럭 굴러가던 회사(방죽)를 어지럽힌 미꾸라지가 되어 차가운 세상에 내쳐졌다. 서러운 몸부림은, 창피도 하고 집안에 우환도 있어 생략되어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생활하느라 지독히도 힘들었다.
그때, 알바라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정신줄을 반쯤 놓고 말았으리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하는 듯했다. 일용직(알바)과 정규직! 또다시 알바를 세분하자면 중식 제공도 없는 그야말로 서러운 알바, 중식을 제공해 주어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최소한의 자존감을 느끼게 해 주는 알바. 짧은 기간 동안 두 종류의 알바를 다 해 보았으나 기분은 극과 극의 차이였다.
‘두 번 다시 밥 안 주는 알바는 하지 않을 거야! 세상에 밥심도 없이 어떻게 일을 하란 말이냐고. 시급도 그저 그런 수준에.'
한시바삐 직장다운 직장을 찾아야 했다. 그래야만 사람 대우를 받을 수 있으니. 알바는 사람도 아니다. 알바는 알바일 뿐! 대체 가능한 소모품 같은 하찮은 기분을 더 이상 나에게 선사하지 말자!
살어리 살어리랏다
직장에 살어리랏다
급여랑 연차랑 먹고
직장에 살어리랏다
간절하게 좁디좁은 문을 두드리던 구직자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노래를 몇 번이고 되뇌어 본다. 찾았고, 두드렸고, 드디어 구했다, 새 직장을! 내게도 알바 아닌 직장이 생긴 것이다! 여리디 여린 갈대가 납죽 엎드려 폭풍우를 피하듯, 한껏 낮은 자세로 괴로운 시간들을 견뎌낸 후 찾은 직장이라 그런가, 새 직장은 마냥 귀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새 직장이 어떻게 나에게로 왔는가
여명처럼 바람처럼
또는 샘물처럼 왔는가
합격 문자 핸드폰에서 달려와
포로롱 아기새 몸짓으로
간절한 내 가슴에 안겨온 것을
-------릴케의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변용 ------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AI가 절대 침범하지 못할 업종이고 직설적으로는 3D업종에 가까운 일이지만, 누가 뭐라 해도 이 일을 귀하게 여길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알바 시절은 갔다.
이제 새로운 직장에서의 보람찬 나날을, 희로애락을, 어루만지듯 담아 보려 한다. 지구인의 직장 별곡이라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