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올해 성과급은 몇 백 밖에 안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천도 아니고 몇백이라니.
우리는 연봉의 40% 를 기대하며 1월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금액의 온도차가 이렇게나 크다.
내 안에는 불안 버튼이 켜지는 항목이 두 가지 정도 있다.
1. 대출 금리가 오른다는 기사가 뉴스에 도배될 때
2. 주식잔고가 새파랗게 변했을 때
이때마다 내가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워크넷과 잡코리아 앱을 켜는 것.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이유로 불안버튼이 켜졌고 이사 온 후 처음으로 그 행동을 개시했다.
사실 앱을 켜고 성의 없이 여기저기 지원하기 버튼을 마구 눌러댈 뿐 진짜 취직이 되길 원해서는 아니다.
쓸데없는 나만의 의식 같은 거다. 서류통과 후 면접 연락이 오면 [아직 내가 갈 곳이 있긴 하네] 확인받고 싶은 걸지도.
화면을 대충 휙휙 넘기는데 [OO은행 경력직 채용]이 번쩍 빛을 뿜으며 내 눈길을 잡았다.
엇 여긴 내가 8년이나 다녔던 데잖아 한 번 써봐? 출퇴근시간이 왕복 1시간 좀 넘지만 이곳 시골에서 이 정도 연봉이면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거리다. 한 달에 적금 이백씩 1년 넣어서 이천사백 찾으면 딱 되겠다고 이력서도 쓰기 전에 대찬 생각을 해봤다. 퇴근한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그동안의 반응과는 좀 다르다.
내가 "여기 내볼까?" 하면 "왜 가? 가지 마"라고 말하기 일쑤였는데 이번엔 "오 진짜?" 하며 채용공고까지 다시 확인하는 성의를 보여줬다.
그동안 구직사이트에 등록해 놓았던 자기소개서는 애들 장난 수준이었고 이번 이력서는 경력기술서까지 보태어 차원이 다르다. 취준생들은 매번 이것들을 어떻게 써내는 건지 대단하다고 엄지 척을 날려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내겐 이력서 쓰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절친이 있다. 자기소개서라고 쓰고 소설이라 읽는다며 절친은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성장과정을 떠올려보며 부담스러운 여백을 한 줄 두 줄 채워나갔다.
경력증명서와 성적증명서도 발급했다. 십 몇년 만에 마주하는 성적은 맙소사 눈을 가리고 싶다.
지금은 배우고 싶고 도전해 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땐 왜 그렇게 하기 싫고 그저 놀고만 싶었을까.
돈도 시간도 충분했을 20대였는데. 남편은 경력 2년 이상 지원가능이라 20,30대 젊은 친구들이 많이 지원할 것 같다고 너무 기대하지 말고 조금은 가볍게 생각하고 있으라고 했다.
서류합격자 발표까지 남은 기간은 일주일. 혹시나 본사까지 면접을 보러 갈 일을 대비해 남편에게 회사에 휴가를 내고 같이 가줄 것을 부탁(아니 협박) 했다. 입고 갈 옷도 이미 머릿속에 그려놨다.
햇살 좋은 날. 오후 3시쯤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핫바를 먹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드르륵 진동이 울렸다.
[귀하께서는 2022년 경력직원 채용에 불합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엇 서류에서 탈락이라고? 취준생들이 말하는 그 서류광탈?
아니 8년이나 일했었는데 현장에 투입되면 적응도 필요 없이 뚝딱 잘할 텐데 나 같으면 나 뽑겠다. 흥
물론 나 같지 않으니까 나를 뽑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엄마 없는 집은 상상도 하기 싫다던 별이와 달이는 "와 엄마 떨어졌다 오예" 라며 환호했다.
절친에게도 메시지가 왔다.
"여보야 괜찮아? 멘털 꽉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