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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Dec 29. 2022

작은 개가 더 무섭다고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내가 9살 때의 일이다.

아빠의 투자실패로 우리 집은 빈털터리가 되었고 집까지 몽땅 날려먹어 아빠회사 사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택은 좁디좁았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옆집에 동갑내기 친구가 살고 있다는 것. 하지만 내가 그 집에 놀러 갈 수 없는 치명적인 이유가 있었다. 작지만 앙칼지고 무서운 개가 (품종은 생각이 안 난다 작았던 기억밖에)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또 세련미 넘치게 [폴]이다. 가을에 태어나서 그렇게 지었다나 뭐라나.




너무 좁아 서로 물리적 거리가 가까울 수밖에 없는 식탁에서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메뉴는 김치찌개였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집 현관문은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35도쯤 열려있었고

[캉캉캉] 앙칼진 소리와 함께 그 무서운 개가 우리 집으로 쏜살같이 들어왔다. 놀라 자빠질뻔한 나는 식탁 위로 부리나케 올라갔다. 기겁해서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내 발에 걷어 차인 접시만 바닥에 나뒹굴며 둔탁한 소리를 낼 뿐.





마흔이 된 나는 아직까지도 개가 무섭다. [캉캉]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움찔거리고 목줄을 하고 있는 개라도 내 옆을 스치기만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만약 아이와 함께 있을 때 개가 가까이 온다면 죽을힘을 다해 태연한 척할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피하고 싶은 존재인 건 확실하다.





이런 나에게 새로운 시련이 닥쳤다. 남편의 이직으로 타지로 이사를 해야 했는데 이사당일 통로에서

자꾸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멍멍] [왈왈]이 아닌 [캉캉] 소리 말이다. 설마 옆집은 아니겠지 했다.

왜 설마는 늘 사람을 잡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옆집이 확실하다.

옆집 개는 현관 앞에 작은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캉캉캉] 짖어댔고 옆집 사람들이 외출을 할 때마다 찢어질 듯 [캉캉캉]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옆집형을 만나 같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 형이 "우리 집 개는 사납고 까칠해서 나도 무서워" 라며 별이가 도어록을 누른 후 집 안으로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고 했다.



아파트 사는데 별 수가 없다. 최대한 나랑 마주치는 일만 없길 바라며 보내던 나날이었다.

달이는 번개같이 먼저 가버렸고 별이를 배웅해 주던 아침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올 때까지 현관에서

서로 손가락 하트와 뽀뽀를 날리던 참인데 달칵 문이 열렸다. [캉캉캉]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나온다.



"꺅!!! 깜짝이야!!!!!!"

비명을 지르고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 내가 이렇게 동작이 빠른 여자였던가.

"안녕하세요" 현관문 너머로 별이의 인사소리가 들린다. 다행이다. 우리 별이는 인사를 했네.

나는 어쩌지. 개가 무서워서 첫인사도 못 갔을뿐더러 마주칠 뻔했는데도 문전박대를 한 꼴이 되어버렸다.

내가 그렇게 막 예의 없는 사람이 아닌데. 내 마음을 어떻게 전하지.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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