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일상 이야기
아이가 왼쪽 다리에 깁스를 차고 생활 한 지 어느덧 4주가 지났다.
(깁스를 하게 된 이야기는 아래 이야기에..)
https://brunch.co.kr/@70ca4e71c11944a/13
다니엘은 한 쪽 발을 쓸 수가 없어 학교에서도 휠체어 생활을 했고 집에서는 네발로 기어다녔다.
화장실을 갈 때, 손을 씻을 때 등 두 발이 필요한 때마다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니엘이 등하교를 할 때마다 나는 매번 휠체어를 차에서 내리고 실어야 했고, 어딜 가나 아이를 안아 이동하고, 깁스에 물이 닿지 않게 씻기는 일도 매번 일이었다. 제법 무거워진 아이를 들었다 내렸다 하다 보니 허리도 아팠다.
이번주 목요일, 그렇게 4주가 지나 드디어 아이가 깁스와 휠체어에서 벗어나는 D-Day 가 왔다!
부모인 우리는 이 모든 불편함으로부터 해방되는 D-Day로 인해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다니엘의 표정은 영 그렇지가 않았다.
자꾸 뭔가가 불안한지 입술을 깨물었다.
병원에 도착하면서부터 이 깁스를 빼면 어떻게 하느냐, 자기는 아직도 발이 아프다며 걱정을 했다.
프랑스 응급실에 처음 간 경험을 제외하고는 프랑스 국립병원 (프랑스는 각 도시 별로 한국의 대학병원 같은 규모의 국립병원이 있다)에는 처음 갔기 때문에 조금 낯설었다.
드디어 아이 발에 있던 깁스를 제거하는 순간이 왔다.
이 깁스는 레진으로 단단하게 굳어져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무슨 톱니바퀴같이 생긴 기계로 이 단단한 깁스를 가르는데 내 심장이 덜컥했다.
아이 때문에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지만 저러다 아이 살에 저 날카로운 톱이 닿을까 걱정이 되어 식은땀이 났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 톱니바퀴가 간지러운지 이리저리 몸을 배배 꼬았다.
다행히 아이는 얌전히 잘 있어주었고, 그 답답했던 깁스로부터 아이의 발이 해방되었다.
깁스를 벗겨내고 드러난 앙상한 아이의 종아리와 발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금방 다시 근육을 회복하겠지,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다음에는 아이 발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결과를 기다렸다.
드디어 엑스레이 사진 결과가 나오고,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다니엘도 무척 긴장하는 듯했다.
"아무 문제가 없어요. 뼈에도 이상이 없고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발이기 때문에 연골에 무리가 갔던 것 같아요. 이제는 걸을 수 있어요"
그 말을 듣자 나는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오히려 다니엘은 서럽게 울먹이며 말했다.
"아직도 발이 아파요..."
의사선생님은 아이가 4주 동안이나 깁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왼쪽 발을 쓰는 것을 무서워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동안 아픈 발을 보호하고 있었던 깁스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에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제 그 '보호장치'가 없어져 두려운 것이다.
의사선생님은 다니엘이 왼쪽 다리를 온전히 사용하기까지 한 4-5일은 걸릴 수 있다고 하셨다.
또 앞으로 약 2주간은 어떤 운동도 금지. 아이가 원하면 당분간은 휠체어를 조금 더 사용할 수 있게 하라고 조언해주셨다.
부모인 우리는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난관에 봉착했다.
아이가 깁스에서 해방되면 우리처럼 기뻐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신나서 두 발로 바로 방방 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의사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아이는 집에 와서도 이전처럼 계속 기어다니고, 이전에 깁스를 했었을 때처럼 왼쪽 발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걷게 하다 보면 발이 아프다며 울음보가 터지기 일쑤였다.
그다음 날 학교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학교에 보내야 하나 싶었다.
결국 남편과 상의 끝에 휠체어에 태워서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과 선생님과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걸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좀 있었다.
선생님께도 이러이러한 사정을 설명드렸더니 이해해 주셨다. 정말 정말 감사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꼭 보답해드려야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 잠깐이라도 아이가 가진 두려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예전에 오른쪽 어금니에 생긴 충치가 신경을 건드려 아팠던 기억이 났다.
치과의사선생님이 잘 치료해 주셨는데도 한동안 그 부위로 씹는 걸 잘 못했다.
그 부위로 음식물을 씹으면 아직도 조금 아프고 시큰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했었지?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부드러운 음식부터 하나씩 의식적으로 그 부위가 있는 오른쪽으로 옮겨 잘근잘근 씹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것도 아프게 느껴졌다.
매끼를 먹을 때마다 조금씩 그 부위로 씹는 연습을 하다 보니 점점 익숙해졌고, 어느덧 내가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 그 치료받은 이빨로 더 딱딱한 음식을 씹고 있었다.
아이를 출산했을 때 경력단절이 있었다. 경력단절 이후 다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두려움이 있었다.
이전처럼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주어진 업무 처리를 잘 할까? 내 역량이 제대로 발휘될까? 동료들이랑은 잘 지낼까? 등등
다시 복귀하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막상 복귀해서 하루하루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다 보니 두려워했던 게 무색했을 정도로 금방 일과 사람에 익숙해져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따로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하나 둘 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도 아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해낼 수 있게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 오후 아이를 학교에서 데리고 왔다. 휠체어에 태운 채로 말이다.
집에 와서 가장 먼저 아이와 놀이를 했다.
아이가 발을 사용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즐겁게 발을 사용하여 놀게 했다.
그런 다음 내 발 위에 아이의 발을 올려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같이 춤을 추었다.
아이가 아직 왼쪽 발에 힘을 주고 일어서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등위에 업고 기차놀이를 하며 오른발, 왼발이 하나씩 번갈아가며 바닥에 닿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아이의 팔을 붙들고 조금씩 걷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2시간을 보냈다.
땀을 잘 흘리지 않는 내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니엘이 이런 내 노력을 알아준 걸까?
아이가 드디어 두 발로 섰다!
아직은 조금 어색하지만, 그래도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다.
우리는 다니엘이 첫돌이 막 지나고 두 발을 떼며 걸음마를 처음으로 시작했을 때의 흥분과 감격을 느꼈다.
아이가 걸음마를 다시 배운 그런 느낌이었다.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다.
아이도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는지 입술을 씰룩거리며 웃는다.
오늘 밤 자기 전, "나 정말 정말 정말 잘했어??"라며 우리에게 재차 확인한다.
내일 오랜만에 가족 다 같이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할까 한다.
네 살 아이의 걸음마 축하 기념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