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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Feb 09. 2023

13화. 학교

굿바이, 마들(졸업식)



나는 5살 시후예요.
친구와 놀고 싶은데, 노는 방법을 잘 몰라요.
교구장 위에 오르면 운동장이 잘 보이는데 올라가면 안 된대요.
선생님 이야기보다 불도저 장난감이 좋아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어려워요.
그래서 시후는 속상해요.     

다람쥐가 좋아하는 도토리 찾으러 산에 가요.
엄마가 이제는 다른 유치원을 가자고 해요.
그런데 엄마 눈이 슬퍼요. 왜? 모르겠어요.
그렁그렁 엄마 눈에 비가 와요.
도토리를 꼭 쥔 주먹으로 쓱 닦아요.
도토리는 소중하니깐요.     

새로운 유치원을 갔어요.
이쁜 선생님이 나를 보고 웃어요. 나도 웃어요.
그러자 엄마도 웃어요.
마들유치원은 기타 연주처럼 아름다워요.     

원장님 무릎에 앉아요. 따뜻하게 안아줘요.
교실로 가야 해서 일어났지만 가기 싫어요.
옆에 있는 원감선생님 손을 잡고 도망가요.
교무실을 한 바퀴 산책을 해요.
오물오물 초코칩 과자는 맛있어요.
코끼리 이모가 있어요. 내게 인사를 해요.
나도 인사해요. ‘이모 안녕.’
결국 덕주선생님 손잡고 해 1반 교실로 가요.
‘시후 집 가고 싶어요.’

나는 박소연선생님이 좋아요.
선생님이 동생반 가는 거 싫어요.
그런데 가야 한대요.
나는 삐져서 강은혜선생님한테 가요.
선생님한테 기대어 있으면 좋아요.
엄마가 이제 유치원을 못 간대요.
그래서 조금 슬퍼요.     

선생님, 시후 없어도 괜찮아요?
시후가 학교 가도 마들유치원 놀러 갈게요.     






오색빛 찬란한 세상 속에, 혼자가 편한 아이였다. 다른 누군가와 주고받음이 무섭고 두려워, ‘혼자 놀 거야’라는 방패를 앞세웠다. 그런데 즐겁지 않다. 그 순간 당신은 따뜻함을 건다.


그 마음에 둘 사이, 미지근한 온기가 차오른다. 점점 올라가는 온도로, 따뜻함이 퍼질 때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린 뜨거워졌다.


이젠 친구에게 건네는 장난감의 무게는 가볍고,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던 두 글자 ‘안녕’이란 인사는 불쑥 나온다.

힘든 과제였던 눈 맞춤, 먼저 보내기도 한다.

 

아이는 조금씩 관계 형성의 재미를 알아간다.


고립된 꼬마가 독립된 시후로 이끌어준 당신. 그대의 진심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젠.

밝은 목소리로 맞이해 줄 당신이 없다는 사실에.
투덜거릴 때 ‘선생님이랑 놀자’하며 전환시켜 줄 당신이 없다는 사실에.
엄마가 게임을 안 줄 때 카톡으로 하소연할 당신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먹먹할 시후다.


수료의 즐거움 속, 눈물에 젖은 두 사람.

발길을 밖으로 향하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다.

보채는 이의 손을 붙잡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갈 수도,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없다.

지나가는 지금 이 순간이 야속하다.


시후가 없는 교실로 돌아가기 싫다는 선생님,

그렁그렁 슬픈 눈을 바라볼 수 없다.

나 역시, 이 시간 이후로 달라지는 일상이 두렵고 겁이 난다.

미련하게 못 받아들이고 우두커니 서있다.

슬픔도, 기쁨도, 아쉬움도 당연한 것을.

이별 또한 그러한 것을.     

     

오지 않을 거 같던 그날은,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당신과 주고받았던 그 많은 시간의 허전함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 사이에 경계가 생겼다.






아기오리는 코앞의 헤어짐보다,

 선생님에 더 마음이 간다.

해맑게 달려와, 선생님을 와락 끌어안는다.

3년의 사랑을, 뜨거운 포옹으로 보답한다.

그 모습이 어여쁘다.  

   

마주했던 희로애락은 시림의 여백으로 남을지 언정, 웃으며 떠나려 한다. 비록, 마음 아리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그 세월의 씨앗이 생긴다.

당신은 조심스레 물줄기를 쪼르륵 보낸다.

섬세함에, 아이 마음에 꽃이 피고 사랑스러움이란 열매가 맺혔다. 그 열매는 따스한 햇살을 듬뿍 받아 단단한 마음의 씨앗을 품는다.


이 씨앗 속 따스한 기억 덕분에, 아이는 앞으로 겪을 풍파를 헤쳐나갈 단단함을 얻었다.  

   

당신이 공들여 키워준 사랑스러운 꽃,

그 가르침 조심스레 넘겨받아,

시후스럽게 성장하도록 가슴 깊이 새긴다.    

 

마들 덕분에, 마들이었기에, 벅찬 3년이었다.

  


좋은 스승은 설명하고
뛰어난 스승은 증명하며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
-윌리엄 위드-



선생님.

 흔들리는  마음을 3년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설명해 주시고, 시후를 통해 증명하셨죠.

덕분에, 내 아이는 특별히 더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던 깜깜한 길을,

우리 곁에서 따스히 잡아준 그 손에 든든했습니다.

확언할 순 없지만, 이젠 조금 보입니다.

시후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요.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박소연선생님
너무너무 사랑해요(feat. 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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