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등록했다. 사람들의 연령대도 잘 모르겠고, 그들이 얼마나 했는지도 모르겠고, 선생님이 따라 하라며 구령을 붙여준 동작은 더더 모르겠고. 내가 아는 것은 단 한 가지. 이 반에서 내가 제일 못한다는 것이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분명 허리도 잘 구부러졌고 몸이 꽤 유연했던 것 같은데. 과거는 과거일 뿐. 내 상태는 '과거는 묻지 마세요~'다. 특히나 두 번의 큰 수술로 인해 몸은 더 굳었고, 요즘은 또 갱년기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난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었으나, 우연한 기회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체육시간이었다. 공놀이가 너무 재미있어서 신나게 공을 따라갔는데. 선생님이 오더니 내 엉덩이를 톡, 치면서 말했다. '참 못하네.' 그날 이후 체육시간이 되면 난 주눅이 들었다. 여섯 살에 입학을 했으니 우리 반에서 제일 나이 어리고 작은 아이였는데, 선생님은 그런 배려는 없었다.
그래도 음악이 있으니 무용은 어찌해 볼 도리가 있으나 운동은 참. ㅠㅠ 울고 있는 ㅠ.ㅠ가 딱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요가를 끊었을까. 첫째는 더 이상 내 몸을 방치하겠다는 죽겠다 싶은 위기감이었고, 둘째는 어깨를 수술해 준 훈남 정** 선생님의 권유였다. 온화한 미소를 섞어 '이제는 요가 같은 운동을 해보세요~'라는 말하는데. 그래! 인간다운 몸으로 살아보자, 는 기분이 생겼다. 셋째는 재즈댄스에 가봤는데 시끄러운 트로트 음악이 계속 나와서였다. 두드러기가 날 것만 같았다. (모든 트로트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임영웅 같은 기품 있는 트로트는 언제든 환영이다)
요가를 가기는 가는데, 꼴찌의 마음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그 시간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수업 후 최소 이틀은 어깨도 쑤시고 다리도 후들거리는 것도 영 버겁다.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을 위해 더 이상의 마지노선이 없음을 알면서도 자꾸만 그 수업이 힘들어지는데.
오늘 저녁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진짜 기진맥진해서 휘청, 다리를 옮기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스톱! 나가지 마시고 기다리세요~"라면서 강의실 문을 닫았다. 요가를 더 시키나 하고 식겁했는데, 이어지는 말이 한없이 포근했다. "여기 회원님이 추석 선물을 가져오셨대요. 받아 가세요."
어떤 60대쯤 되어 보이는 분이 큰 배낭을 열더니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바스락, 비닐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알록달록한 색이 얼핏 보였다. 그분은 말 한마디 없이 급히 그것을 나눠주셨다. 내 손에도 그 선물이 왔다. 은사가 들어간 노란색, 보라색 꽃 모양 수세미가 들어있었다. 진짜 별것 아니지만 오랜만에 받는 이런 선물은 별것이었다. 기분 좋고 고마웠다. 요가 수업이니 회원들끼리 말하면서 친해진 것도 아닐 테고, 또 나는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참이니 얼굴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렇게 손뜨개를 해서 나눠주는 그 마음이라니. 그 선물이 있다고 먹고사는 데 딱히 도움이 될 일도 아니고, 다이소에 간다면 천 원, 이천 원이면 뒤집어쓸 테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뭔가 돌려받을 생각도 없고, 그저 누구든 좋은 추석을 보내라는 순박하고 따스한 마음이 아닌가. 그 수업에 붙어 있으면 요가도 나아질 것 같고, 덩달아 사람들과 인사도 하게 될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나도 선물을 돌려보면 어떨까. 작은 것이라도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이니, 어차피 선물에 대한 기대는 없을 테고, 사탕 하나를 줘도 즐거운 '서프라이즈'다. 겨우 사탕으로 기쁨을 나눈다면 완전 가성비 갑이다. 생존을 위해 등록한 요가 수업에서 졸지에 '어울려 사는 훈훈한 세상'을 보았으니, 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다. 쑥스럽기는 한데 과연 할 수 있을까. 마음을 다잡을 용기가 좀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음... 고민 중....
그나저나 다음에는 일찍 가서 꼭 그분께 고맙다는 말이라도 전해야겠다. 이것만은 확실히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