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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 같은 현재 Dec 19. 2024

머리카락이 사라진 날

소아암과 함께한 시간

"저 사람은 왜 머리카락이 없어?" 아이가 내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치료를 하다 보면... 약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해."

"나도 저렇게 돼?"

"응.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치료가 끝나면 다시 나."

목 끝까지 올라온 슬픔을 삼키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라푼젤처럼 긴 머리카락이 예쁘다는 아이, 엘사 공주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어른의 슬픔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병동 샤워실에서 아이를 씻기며 머리를 감겨줬다. 늘 그렇듯 고무줄로 묶어 둔 머리카락을 풀고 손으로 이리저리 물을 적셔주는 순간, 머리카락 한 움큼이 내 손가락 사이에 걸려 빠졌다. 마치 어릴 때 갖고 놀던 뿔 인형의 머리카락이 고정되지 않아 빠지는 것처럼 속절없이 빠져버렸다. 며칠 전부터 원형 탈모가 보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많이 빠질 줄 몰랐다. 황급히 문구용 가위를 가져와 빠지면서 엉켜버린 머리카락을 잘랐다.

"머리가 빠지며 엉켰어. 엉켜버린 부분을 잘라줄게." 라며 사실 위주의 말 외에는 어떤 감정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내 감정을 얘기하는 순간 슬픔에 압도당하며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그저 아이 걱정에 '아이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떨리는 손에 힘을 주며 머리를 잘랐다.

"엄마, 나 머리카락 짧아서 남자처럼 보여?"

"아니, 넌 얼굴이 예뻐서 여자로 보여. 너한테 잘 어울리는 예쁜 머리띠 사줄게."

그 뒤로도 하얀 침대 시트가 검은색 머리카락으로 뒤덮였고, 결국 두피를 훤히 들어내게 되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침구를 정리하면서 베개와 침구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낯선 자신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병원 복도를 걸으며 마주하는 다른 환아와 비슷한 모습을 보며 적응해 갔다. 머리카락 없는 아이들, 마스크를 쓴 아이들, 링거를 끌고 다니는 아이들.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웠던 광경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독한 항암제가 들어가는 날, 아이는 녹초가 된다. 내 귀가에서 재잘대던 모습은 사라지고 침대에서 축 늘어져, 때론 웅크리고 눈을 감고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엄마 까투리' 영상도 싫어하고 잘 먹던 과자들도 거들떠보지 않는 순간이 오면, 침대 곁에 있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 된다. 그저 아이를 믿는 순간만 남는다. 아이가 이 상황을 오롯이 혼자 견뎌내는 것만 지켜볼 뿐이다. 노란 위액을 토해낼 때 말없이 비닐봉지를 입 앞에 갖다 대주고 휴지로 입을 닦아주며 싫다는 아이에게 물 한 모금 삼키길 권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항암치료는 무한정 길어지는 입원대기로 어쩔 수 없이 아침 입원, 저녁 퇴원하는 당일 입퇴원으로 진행했다. 병원으로 출퇴근하듯 아침 6시 30분경 병원 접수하고 오전 8시 입실, 오후 8시 퇴실하며 치료를 이어갔다. 병원을 가지 않는 날이 하루라도 생기면 남쪽 지역에 있는 집으로 갔다. 면역이 떨어진 아이의 감염 위험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 긴 시간 자차로 이동해야 했다. 어른도 힘든 시간을 만 5세의 아이가 견뎌야 했다.

아이는 이제 주삿바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인들도 싫어하는 채혈은 식은 죽 먹기만큼 쉬운 일이 되었다. 공복에 채혈 3통은 기본이고 10통을 채혈해도 눈빛 한 번 흔들리지 않고 주사 바늘이 꽂힌 자신의 팔을 또렷하게 쳐다보게 되는 내공이 생겼다. 대형 대학병원에서 길을 잃어도 걱정 없을 만큼 병원 내부 지리를 잘 알게 되고 심지어는 무엇이 맛있는지 맛집 목록까지 뽑을 수 있게 되었다.


일상은 계속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 나갔다. 적응해갈 수밖에 없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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