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리 아프다며 주저앉고 안아달라고 할 때 코로나19로 야외 활동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며 다리 힘을 길러야 하니까 안아줄 수 없다고 했다. 입술 색깔이 창백해지고 피부색이 노랗게 되었을 때 동네 소아과 의사가 했던 '귤을 많이 먹어 그런 것'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적혈구 수치가 바닥을 치며 어른들이었다면 이미 쓰러질 만큼의 어지러움으로 힘들어하는 건 줄 모르고...
워킹맘으로 승진과 인사이동으로 조직이 변화되고 연말, 연시로 바쁜 시기라 야근을 일삼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는 내가 그들의 안녕은 살폈으나 내 가족의 안녕은 살피지 못했다. 엄마인 내가 더 똑똑하지 못해서 아이의 아픈 신호를 놓쳤다는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는 순간 끝없이 눈물이 나온다. 밥을 먹어도, 창밖을 보아도, 아이를 보아도 고장 난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마냥 눈물이 흐른다. 다인실에 입원 중이라 옆 침대 가족들이 들을까 봐 울음소리를 삼키며 울어야 마음속 흘러넘치는 슬픔을 덜어낼 수 있었다. 가슴이 타들어가며 목구멍이 찢어진다.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부를 수 있는 신은 다 불러 물어본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저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답 없는 질문을 해봤지만 역시나 답을 들을 수 없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 준비를 함과 동시에 아이를 씻기고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예쁘기보다는 따뜻한 옷을 입히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기며 편안한 신발을 신겨 아이의 등원을 함께 했다. 갓 돌 지난 아이가 배를 튕기며 카시트에 앉지 않으려 할 땐 조급한 마음으로 시계를 보며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직장 내 역할에 맞춘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와 후배 직원 눈치 보며 일하다가 퇴근하여 아이를 데리러 가면 저 멀리서 뛰어나와 내 품 속에 안긴다. 말랑하고 보드라운 아이의 피부가 내 살갗에 닿으면 마음속 딱딱하게 굳었던 어떤 덩어리가 사르륵 녹는다.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타인의 손에 맡겨두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지 못했다.
내가 일했던 조직은 갑작스러운 코로나 시대가 닥쳤을 때 각종 후원물품이 몰려들었고 그것을 나누는 일을 했다. 끝없이 배분하고 나면 또다시 10톤은 족히 넘어 보이는 윙바디 트럭(적재함의 덮개를 들어올리는 트럭)이 사무실 앞마당에 도착하면 전 직원들이 뛰어내려 가 줄을 지어 박스를 옮긴다. 각지에서 도착한 다양한 후원물품을 고루 담아 새로운 박스로 포장하고 KF94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한 뒤 차에 실어 가가호호 배달했다. 그러다 보면 내가 택배 배달 노동자인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부재중인 세대는 다양한 방법으로 안부가 확인될 때까지 반복한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니 심리적인 우울감에 빠져 세상과 단절된 1인 가구들이 증가함에 따라 신규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사업의 특성상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꺼려하시는 분들이 대상이라 신뢰관계 형성에 담당자로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한 명씩 찾아뵙고 전화해서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사업 진행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렇게 10명 중 5명이라도 참석하면 대박 난 사업이 된다. 물론 담당하는 사업이 이것만 있는것은 아니다.
낮 동안 직접 만나는 일을 한다면 저녁엔 서류 업무 시간이다. 저녁은 볶음밥, 김치찌개, 김밥, 컵라면 중 그날 당기는 음식으로 먹는다. 담당하는 사업 진행에 필요한 각종 서류뿐 아니라 조직 공통의 업무를 수행한다. 이쯤 되면 가정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잊어버린다. 머리가 멍해지고 눈이 뻑뻑하고 뒷목과 어깨가 무거워져서 시계를 보면 밤 12시다. 지금부터 일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하에 퇴근한다.
‘열심히’ 살면 모든 것이 좋아질 줄 알았다. 상대가 하는 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하고, 어깨는 늘 솟아올라 누가 날 툭 치면 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온몸과 정신에 힘을 주고 살았다. 주어진 일, 주어진 역할에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면 지금과 같은 생활이 지금보다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하루 일과를 보내는 것이 우선이지만, 언젠가는 내 가족들에게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바랐다. 먼 훗날 돈 벌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부자가 될 것이고 돈 걱정 없이 가고 싶은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 여행도 가게 될 것이라고 기대도 했다.
얼굴은 퉁퉁 붓고 눈은 빨갛게 며칠을 지내며 의료진을 만났다. 내 마음이 어떤지도 따질 겨를 없이 아이의 항암치료는 시작되었고 자신의 이름과 직위를 밝혔지만 누가 누구인지 구분도 안 되는 여러 명의 의료진들이 다녀간다. '전신마취' 글자를 알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아이는 얼마나 불편한 기분인지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보며 무언가가 자신의 몸과 연결된 줄을 통해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힘껏 끌어안고 울며 소리 지르며 몸으로 저항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아는 나는 무기력하게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를 붙들고 있던 아이의 손에서 힘이 빠지면 아이와 헤어져 수술실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화장실도 가지 않고 의자도 없는 황량한 병원 복도에서 네가 언제든 나를 찾게 된다면 그때는 즉시 달려가겠다고 다짐했다.
핸드폰을 뒤적여 사진첩 속에 있는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그 속의 아이는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데 지금 아이는 혈색 없는 얼굴로 환자복을 입고 온 힘을 다해 나를 끌어안고 울부짖다가 수술실로 떠났다. 나 또한 며칠 전까지 출근해서 일했는데 지금은 낯선 도시의 병원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지금, 여기, 알아차림
스탠리는 자신 앞에 놓인 불가능한 일 대신 당장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만 생각했다(구덩이. 루이스쌔커. 창비출판).
얼마를 울었을까..
지금 슬퍼하고 속상해하고 화를 낸다고 아픈 아이가 낫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의료진의 실수로 의료사고를 겪으며 내 눈앞에서 아이를 잃어버릴 뻔했는데 이젠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지금 집중해야 할 나의 현실이었다. 내 입으로 아이의 병명을 말하면 더 이상 변화될 수 없는 현실이 도장에 글자 새기듯 아주 깊이 새겨져 내 마음속 깊이 헤집고 다닐 것 같아 말하기 어려웠지만, 아이는 백혈병을 진단받았고 난 백혈병을 앓는 아이의 엄마임이 내가 지금 마주하는 현재라는 것을 자각했다. 지금 발 디디고 있는 이 병원에서 나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있는 아이를 위해 찰나의 순간인 지금, 현재를 알아차려 집중하며 더 이상 눈물로 범벅된 채 이끌려가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살리기로 다짐했다. 먼 훗날 내가 죽게 되었을 때 가장 후회되는 일로 떠오르지 않도록...
그날 밤, 몸과 마음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물이 흐르는 대로 맡기되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세상과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시선을 주는 삶을 살겠다고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