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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소리 Jun 16. 2023

그녀의 겨터파크는 한겨울에도 개장 중

세 번째 사고

4년 전 어느 날. 나는 기어이 세 번째 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첫 번째 사고>

주차장이었다. 아이들과 장을 보고 나가려는데 건물 주차장 통로에 커다란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차주에게 연락하지 않고 를 피해서 빠져나가려다 그만 내 차 운전석 문을 주차장 기둥에 박고 말았다.


운전석 문이 조금 찌그러졌다. 문이 이상했다. 분명 닫았는데 계기판 문 열림에 불이 들어와 있다. 아무리 문을 닫아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집이 가까우니 일단 출발했다.


좌회전을 하는데 시원하게 문이 열린다. 큰소리로 엄마를 여러 번 불러댔다. 불이 들어왔어도 문이 이렇게 활짝 열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뭣 모르는 아이들은 시원스레 문이 열리자 엄마의 차가 변신 로봇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지 아주 신이 났다. 분명 집이 가까웠는데 좌회전이 생각보다 많았다. 좌회전을 할 때마다 시원하게 열리는 문을 왼손으로 꽉 부여잡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운전 중엔 에어컨 버튼을 누르는 것도 버거웠던 당시의 나는  손으로 운전하는 사람을 보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날 나는 얼떨결에 한 손 운전에 성공하게 됐다.



<두 번째 사고>

또 주차장이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갔다. 식당 주차장의 통로가 좁은 편이었다. 좁디좁은 주차장에 차를 대느라 차 뒤쪽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내 차의 앞 범퍼와 맞은편에 주차되어 있던 길쭉 에쿠스의 앞 범퍼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구형 에쿠스와 내 차는 부딪히고 말았다.


아주 오래된 구형 에쿠스에는 다행히 별다른 스크래치가 난 것 같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차주에게 연락할지 말지 살짝 고민도 했다. 차주께 연락드렸다.


보험처리를 하게 됐다. 구형 에쿠스 차주는 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최대한의 수리를 하셨고 에쿠스와 동일한 CC의 차량을 렌트하셨다는 소식을 보험사 직원을 통해 전해 듣게 됐다.



<세 번째 사고>

이번엔 부산의 어느 대로변 사거리였다. 보닛에서 계란프라이를 거뜬히 구울 수 있을 것 같은 뜨거웠던 어느 여름날, 큰아들을 데리고 치과에 가던 길이었다. 초행길인 데다 복잡한 도로였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좌회전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던 나는 좌회전 후 바로 우회전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갑작스레 알게 됐다. 우회전을 하기 위해 차선 2개를 재빨리 변경해야 했다. 다행히 우회전하기 직전에 차선 변경에 성공했다. 우회전을 하고 나니 바로 횡단보도가 보였다.


초긴장 상태여서였을까. 우회전을 하는 도중 내 눈에 들어온 횡단보도 신호등의 빨간불을 보고서, 나는 횡단보도 앞에 갑자기 멈춰 서고 말았다. 차량 신호등과 횡단보도 신호등을 착각하는 황당한 실수를 저지른 거다. 도로 위의 폭탄 김여사가 저지르는 황당한 실수 TOP3에 거뜬히 들어갈만한 실수였다.


서자마자 뒤차가 내차를 쿵 박았다. 복잡한 도로여서였는지 도로에는 교통경찰관이 교통정리를 하고 계셨다. 경찰관이 우리 쪽으로 달려오셨다.


차에 타고 있던 큰아들에게 별일 아니라고 아들을 안심시키고는 문을 열고 나왔다. 뒤차 차주분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크게 화를 내신다. 차선 변경을 급하게 하더니 갑자기 멈추면 어쩌자는 거냐고. 맞는 말이니 죄송하다고 연신 굽실거렸다. 경찰관이 오셨다. 경찰관의 질문에 감추고 싶었던 내 실수를 술술 털어놨다. 내 이야기를 듣던 뒤차 차주분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다. 바쁘니까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 하신다. 내 차도, 뒤차도 찌그러졌다.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지난 사고에서 처럼 차가 얼마나 찌그러졌는지만 물어볼걸 알면서, 내가 다치지 않았는지는 안 물어볼 걸 알면서 그래도 아저씨의 헛웃음과 혼구녕을 들으면서는 결국 남편이 떠올랐다.


 '놀랬지, 몸은 안 다쳤어? 그럼 됐어 조심히 와' 하고 말해주길 기대하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게 문제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답을 정해놓고 기대하는 거. 기대와 달리 숨 막히는 긴 한숨소리와 혼구녕과 보험 처리하자는 말만 듣게 된 나는 심통이 났다. 아무리 단기간에 세 번이나 사고를 냈다 해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상대차주와 보험처리를 하기로 얘기하고 차에 올라타려다 바닥을 본다.


왼쪽 발엔 앞뒤 뻥뻥 뚫려 발등을 훤히 드러낸 여름샌들이, 오른쪽 발엔 운전하기 편한 드라이빙슈즈가 신겨져 있다. 그걸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신발 덕분에 기분 전환을 한 나는 아들이 눈에 들어온다. 별일 아니라고 해놓고 당황한 목소리로 남편과 통화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다 보여준 못난 애미를 보며 숨죽이고 있었을 큰아들이 짠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화이팅을 외치며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어린아이는, 덩치만 큰 어른 아이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치과로 향했다. 


좁디좁은 치과 지하 주차장에서 때마침 밖으로 나가는 차 덕분에 다행히도 복잡한 주차장의 마지막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놀랐을 아들에게, 벨트 하지 마자 사고 나서 다치지도 않았고, (출발할 때 아들 벨트하는 걸 깜빡했는데, 정말 벨트를 하고 2~3분 후에 사고가 났다) 꽉 찬 주차장에서 자리도 금세 잡았고. 오늘은 진짜 운이 좋은 날이라며 오버를 하는 여유도 찾았다. 다음에는 차를 타자마자 안전벨트를 했는지 서로 꼭 체크해 주기로 약속했다. 치과진료도 받았다. 집에도 무사히 도착했다.


그래놓고는 그날 아들 몰래 남편에게 부릉부릉 서운함을 토로했다. 남편이 말한다. 가만 얘기 들어보니까 이번에도 안 다쳤을 것 같아서 다쳤는지 안 물어봤다고. 하긴 지금까지 주차장에서 혼자 사고를 냈으니 다칠 일이 없긴 했지. 이 남자는 과연 생각이 깊은 걸까, 생각이 없는 걸까. 나 같으면 사고 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걱정부터 했을 텐데. 흥분하지 않고 안 다쳤을 걸 예상 한 걸 보면 생각이 깊은 것도 같고, 그렇다고 놀란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걸 보면 생각이 하나도 없는 로봇인 것 같고. 생각 깊은 사람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내가 남편감으로 로봇을 선택할 정도로 사람 보는 눈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


안전거리 미확보로 뒤차가 과실이 더 많았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뒤차 차주의 말을 듣지 않고 남편의 말대로 보험처리를 하길 잘했다 싶었다.


도로 위의 핵폭탄 김여사가 되기는 싫었는데 장롱면허 16년, 뜨문뜨문 운전 6년 차에도(당시 3년 차) 여전히 운전에 서툰 나. 매일같이 운전할 일이 없어서 아직 서툴 뿐이지 욕심내어 과속을 하거나, 상대의 불편에 대해 무감각해서 도로 한가운데 주차를 해대거나,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혼동하는 수준은 아니니까 앞으로 발전할 일만 남았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워터파크의 계절이어서였을까. 그날 나의 겨터파크는 개장 이래 가장 많은 수분을 배출해 내는 기염을 토했다. 







16년 간 폐장 상태였던 나의 겨터파크 재개장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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