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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소리 Dec 09. 2022

제주의 카페는, 가깝지만 멀다.

11세 남 : 야 임마, 그거 너무 비싸잖아. 그냥 싼 거 골라.

8세 남 : 아 진짜, 엄마 나 그냥 이거 먹으면 안 돼?

나 : 우리 요 마들렌 먹어볼까?

11세 남 : 엄마 그거 제일 싸서 고른 거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카페. 아이들이 한참 동안 디저트 앞에 서서 인생 최대의 고민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방과 후 참관 수업을 마친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카페에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마침 지나가다가 봐 둔 예쁜 카페도 있었다.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있다 보니, 요즘 낚시꾼 부캐에 크게 몰입해 있는 남편이 조금 얄밉기도 해서 보란 듯이 셋이서만 카페로 향했다. 물론 나만의 소심한 복수일 뿐 남편은 우리 셋이서 카페를 간 것도, 그것이 나의 소심한 복수라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셋이서 지글지글 고기를 굽고 왔다면 모를까.    

 

일단 도서관에 들러 책을 가득 빌렸다. 그러고는 미리 봐 둔 카페로 향했다. 주차장이 널찍하니 내가 가기에 딱 알맞은 카페이다. 복잡한 도로변에 세로 주차를 하다 보면 요리조리 핸들을 돌리다 날이 어둑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카페에 들어갔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아무도 없다. 아. 아무도 없으니 조금 부담스럽다. 정면에 디저트가 예쁘게 세팅되어있다. 오후 네 시가 넘어가자 배꼽시계가 간식 먹을 시간이라며 요란하게 알람을 울려댄다. 아이들과 나는 홀린 듯 디저트 쪽으로 다가갔다. 디저트를 보자마자 가격을 확인한 내 눈은 갈 곳을 잃어 방황하고, 반들반들 매끄럽고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분명 달콤할 빵들을 확인한 아이들의 눈은 반짝인다.


제주의 카페, 특히 조그마한 카페는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카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격이 비싸면 자주 갈 수가 없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크게 거부감을 가지지는 않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도 그 가게의 디저트들은 아주 조그맣고 비싼 편에 속했다.   


사진 출처 : Pixabay


  

신중한 큰아이는 무얼 고를까 한참을 고민에 빠져있다. 즉흥적인 막내는 제일 비싼 것으로 벌써 골라 두었다. 샤인 머스켓 ‘조각’케익. 가격은 조각 케이크답지 않으나 크기를 보니 조각 케이크가 확실히 맞다. 휴.    

 

디저트를 보고 입맛을 다시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위를 1/100도 채우지 못할 조그맣고 제일 비싼 조각케익을 고른 동생을, 큰아이가 아주 우렁차게 나무란다. 바로 옆에 여사장님이 우뚝 서 계시는데 말이다. 경제관념은 생기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직 눈치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사장님을 등지고 최대한 우아한 말투로 제일 저렴한 마들렌을 살포시 추천해 보았다. 조금 있으면 저녁 먹어야 하니까 작은 걸 고르자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기엔 다른 디저트들도 하나같이 조그맣긴 했다.   

   

그러는 중에 큰아이가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말을 우렁차게 내뱉는다. 눈치가 없는게 분명하다. 휴. 사장님은 여전히 디저트 바로 옆, 계산대 앞에 가만히 서 계신다. 그래 욘석아 제일 싸서 골랐다 왜. 그래야 나도 한 개 사 먹지. 나는 민망한 마음에 아이들에게 저녁을 잘 먹겠다는 다짐을 보란 듯이 받은 후, 그럼 먹고 싶은 것을 골라보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우아하게 해 보았다. 사장님을 등지고 서서 얼굴로는 욕을 날리면서 말이다. 이미 디저트에 마음을 뺏긴 아이들은 내 얼굴은 쳐다보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그날 4인 가족의 밥값에 버금가는 디저트와 음료를 해치웠다. 밥 배보다 디저트 배를 더 크게 설계해 둔 나는 홀짝홀짝 커피만 마셨다. 집에 돌아와서야 아이들에게 엄마가 생각하는 적당한 디저트 가격에 비해 그 카페의 디저트는 너무나 비싸서 아주 가끔 꼭 가고 싶을 때만 가도록 하자고 이야기해 주었다. 샤인 머스켓 조각케익 하나 가격이 츄파츕스 쉰 개랑 같은 가격이라고, 다음엔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는 좀 더 저렴한 카페를 발굴해 보자고도 말해 주었다.      


제주에 오기 전 자주 드나들던 도서관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서 팔던 3,000원짜리 [커피콩 빵 + 뜨.아] 세트와 함께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아이들과 책을 읽던 일상이 그리워지는 하루였다.


다음에는 내 얼굴보다 더 큰 6,000원짜리 달달한 맘모스 빵을 사다가 잔뜩 썰어 아이들에게 후하게 배식해 준 후 잔잔한 노래를 선곡해 주고, 커피숍에는 나 혼자 우아하게 방문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해 본다. 그때는 나를 위한 디저트도 하나 주문해야겠다.     

 

제주에는 예쁜 카페가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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