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겁할 뻔했다. 아홉 살 22kg인 우리 작은아이 덩치보다 더 커 보이는 들개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그들은 자유롭다. 그들을 구속할 목줄 같은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 집 앞마당으로만 안 지나다니면 좋겠다 싶을 정도이니 말이다. 거실에 앉아 있다가 깜짝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의 눈빛은 살아있고 몸은 단단해 보인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음. 우사인볼트 느낌이랄까. 한적한 시골길을 산책하다 보면 거의 매번 그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들을 마주치면 최대한 관심 없는 척 고개는 고정시키고 눈알은 돌릴 수 있는 최대치로 돌려 힐끔거리며 그들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혹시라도 눈을 마주쳤다가 잔뜩 겁먹은 내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면, 그들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한껏 드러내며 나에게로 돌진할 것 같아서 말이다. 센 사람 약한 사람 감별해 내는 데는 도가 텄을 그들이니 말이다.
주인집 긴 생머리 그녀는 매일 자전거를 타는데, 자전거를 탈 때마다 매일같이 들개를 만나서 한동안 무서움에 떨어야 했다. 그들이 돌진할 때를 대비해서 몽둥이를 들고 다닐까 전기충격기를 들고 다닐까 가스총을 들고 다닐까를 고민하곤 했었는데, 요즘 그녀는 뿌리는 파스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뒷 줄 가운데 집에 사시는 최전방 군인 출신의 이웃은 들개가 손을 물면 당황하지 말고 들개의 목구멍이 꽉 막히게끔 주먹을 더 깊이 넣으라고 매우 진지하게 조언해 주셨다. 멧돼지를 만났을 때 멧돼지의 뿔을 잡아 때려잡곤 했다는 분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 같았다. 사장님의 왕주먹이면 들개의 목구멍이 막히고도 남겠다 싶었다. 하지만 바퀴벌레를 잡을 때도 긴 다리를 후들거리며 호들갑을 떠는 우리 삼식씨나, 큰 개를 만나면 힐끔거리느라 목에는 담이 오고 눈알은 흰자가 90%를 차지할 정도로 겁먹는 나에겐 만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해결책이었다.
뭣 모르는 우리 아이들은 개를 만나면 말을 걸며 가까이 다가가고싶어 했었다. 큰아이가 열 살이었던 2021년 9월, 제주 남서쪽 끄트머리 어느 시골마을 돌담집에서 한 달 살이를 할 때 들개를 처음 마주쳤다. 아이들이 들개를 자꾸 쳐다보고 손짓을 해대서 얼마나 맘을 졸였는지 모른다. 아무리 이리로 오라고 외쳐도 실실 웃으며 들개들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을 신기한 듯 마주 보는 들개를 보며 얼마나 진땀을 흘렸던지.
제주엔 무시무시한 들개들이 많다.
2. 동물의 배설물
개똥.
한 번은 신산포구 산책을 하다가 길쭉하고 굵직한 빅 바나나 똥을 밟을 뻔했다. 나는 그 빅 바나나가 들개들의 그것이라 확신했다. 당당하게 길 한가운데 편안하게 누워 따사로운 햇빛에 일광욕을 하고, 시원한 바람에 풍욕을 즐기고 있는 그것들을 보며 아, 똥도 주인을 닮는구나 생각했다. 사람이라면 아무리 급똥이 왔더라도 술에 잔뜩 취해 정신줄을 놓지 않은 이상 구석진 곳이나 우거진 곳을 찾아 살포시 해결했을 테니 말이다.
말똥.
영주산을 오를 때는 말똥을 조심해야 한다. 경치를 감상하기 전에 반드시 발밑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경치에 감탄하면서 앞만 보고 걷다가는 똥 밟을 확률 100%라고 단언한다. 말들은 비탈진 산도 꽤 잘 오르는 모양이다.아무리 오르고 올라도 펑퍼짐한 말똥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것이 과연 똥인가 싶을 만큼 넓적하고 양이 많다. 원래 그렇게 피자같이 생긴 건지, 사람들이 발로 많이 토닥여 주어 넓적해진 건지 모를 일이었다. 말은 도대체 무얼 먹는지를 생각해 보면 아마 먹은 것 중 거의 대부분을 똥으로 내보내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나도 말의 체질을 닮았다면 평생 이놈의 다이어트 안 하고 참 좋았을 텐데.
소똥.
제주의 소들은 자유롭다. 넓은 초원에서 매일같이 소풍을 한다. 울타리도 없는 넓은 초원에서 유유자적 거닌다. 한 번은 남편과 바닷가 근처를 거닐었는데, 오른쪽은 광활한 바다였고 왼쪽은 드넓은 초원이었다. 그곳에는 소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와 저 소들은 참 행복하겠다. 결국 도축될 슬픈 운명이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은 소풍도 하고 바다도 보고 행복하겠네." 소들을 바라보며걷기도 잠시, '아 지금 저 소들을 신경 쓸 때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곳은 소똥밭이었다.
제주 곳곳에는 각종 똥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당당하다.
3. 귤나무, 금귤나무
제주에는 귤나무가 정말 많다.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이게 사과나무인지 배나무인지 감나무인지 반드시 열매가 열려야만 구분할 수 있었던 나는, 열매를 맺지 않아도 이제 귤나무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 보도로 고개를 삐죽 내민 동글동글 귀여운 귤들을 볼 때마다 '저거 진짜 누가 따 먹어도 모르겠네' 하고 생각하곤 했다.
어느 날 남편과 산책을 하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차와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걷게 된 적이 있다. 저혈압인 나는 편의점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걷다가 갑자기 정말 이러다 쓰러지겠구나 싶게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길가에 고개를 내민 귤나무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마침내 금귤나무를 발견한 우리는 주변을 살피며 금귤 네 알을 조심스럽게 따서 두 알씩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5개월 이상 제주에서 지내다 보니 이제 들개, 각종 배설물, 귤나무나 바닥에 잔뜩 버려진 귤을 봐도 놀랍지 않다. 들개를 보면 여전히 무섭지만 조심스레 피할 수 있고, 각종 똥을 밟지 않기 위해 바닥을 잘 살피면서도 좋은 경치를 놓치지 않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