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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Oct 02. 2023

有用之用 밤나무

 가지 樂 Ⅰ


나는 해마다 밤나무에서 네 가지의 즐거움을 느낀다. 첫째는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시위하듯 온 산을 뒤덮는 밤나무의 하얀 수꽃도 장관이지만 이 보다 먼저 피는 밤나무의 암꽃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밤나무의 암꽃은 수꽃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장차 밤을 보호 밤가시가 될 총포라고 불리는 꽃차례받침과 수분이 되어 밤이 될 암꽃차례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이 암꽃차례의 암꽃 세 개는 장차 밤송이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있 알밤 세 개를 만든다. 


암꽃이 수꽃보다 먼저 피는 이유는 자가수분을 방지하고 타가수분을 유도하여 종의 우월성을 확보하려는 식물의 전략이다. 식물학적 논거조차 필요 없이 이 작은 암꽃차례에서 숲에서 벌어지는 자연의 순환과 경이 그리고 신묘한 꽃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즐겨보는 것이다.  


밤나무의 암꽃의 흰 부분(작은 화살표)은 밤이 되고 큰 화살표 부분이 가시를 두른 껍질이 된다(좌). 밤나무 수꽃(긴 화살표)과 암꽃(작은 화살표) 은 따로 핀다(우)

둘째는 여름이 더하고 가을이 깊어질수록 무성한 잎이 이루는 녹음의 푸른 숲이다. 성한 밤나무른 잎이 바람에 넘실거리기라도 하면 푸른 파도가 물결치는 바다를 보는 듯하다.  한치윤은 <해동역사>에서 영남루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관을 '강 너머 널따란 들판에는 밤나무 숲이 있어서 보이는 것이 모두 온통 푸른빛이다'며 밤나무 숲의 장관에 감탄했다.


예로부터, 밤나무에 한번 잎이 나기 시작하면 그 풍성한 잎이 모여 바다와 같은 숲을 이루곤 했다. 사람들 밤나무가 많은 동네를 율(栗村)이네 율동(栗洞)이네, 혹은 율리(栗里)라고 하고, 또 고개에 밤나무가 많아 율현(栗峴)이라  밤나무 숲 정자를 율정(栗亭)이라고 한걸 보면 밤나무 숲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고 친근한 나무로 인식되어 왔는지 알 수 있다.


시경에도 무성한 밤나무 숲을 노래한 몇 편의 시가 있다. <<시경>> <진풍(秦風> 거린(車隣)은 무성한 밤나무 숲에 감복하여 사랑하는 님과 함께 노래라도 한번 불러보고 싶은 감정을 노래했다. 최초 인간의 고향은 숲이었기에 숲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숲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우리 몸의 DNA 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숲에서 느끼는 인간 상호 간의 감정은 고조되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되어 외로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언덕에는 옻나무 들에는 밤나무 / 우리 님을 만났으니 함께 앉아 슬을 뜨네 / 지금 아니 놀 것인가 세월 가면 늙어질걸

*거린:수레소리


 <<시경>> <정풍> 동문지선(東門之墠)은  밤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마을에서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는 시다. 마을이 들어선 우거진 밤나무 숲에서 사하는 님과 함께 같이 있다면 더 좋을 수 없을텐데, 사랑의 아픔 이런가, 님은 보이지 않아 애가 끓는다.


동문 밖 밤나무 골 집들이 늘어섰네 / 그대 사랑 여전한데 나에게 아니 오네

*동문지선:동문 밖 터


 시경》 <소아> 〈사월(四月)〉에 “산에 아름다운 초목 있으니, 밤나무와 매화나무로다"라고 하여 역시 밤나무 숲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밤나무에서 즐겨보는 세 번째 즐거움은 가을을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인  영글어 가는  밤송이의 풍경이다. 벌어진 밤송이에서 살짝 고개를 내민 알밤에서 생명의 태동과 함께 무한한 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무릇, 많은 식물들은 가을에 열매를 떨어뜨리고 씨를 날리니 가을은 생명이 탄생을 준비하는 위대한 계절인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마지막 네 번째 즐거움은 밤을 맛보는 것이다. 과일 중에 구워 먹고 익혀먹고 날로도 먹는 과일도 드믈것이다. 날로 먹는 밤은  자연의 맛이 고대로 살아있는 솔직고도 담백한 맛이요, 추억 속의 따끈따끈한 군밤 삶은 밤은 그 색이 노란 보름달과도 같아 달고도 호사 맛이 절로 느껴진다.

무성한 밤나무 잎 사이로 밤송이가 영글어 가고 있다


밤나무의 효용


밤나무는 참나무과의 밤나무속에 속하는 식물이다. 같은 참나무과이므로 잎이나 나무껍질이 유사해서 혼동하기 쉬우나 꽃과 열매가 많은 차이가 있어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특히 밤나무 잎과 참나무과의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의 잎 매우 유사하므로 잎만 가지고 구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포인트는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잎의 가장자리에 뾰족하게 돋아난 거치의 색이 흰색이면 상수리나무나 굴참나무요 푸른색을 띠면 밤나무다. 밤나무 잎의 거치는 푸른색을 띠고 있어 광합성에도 작용한다.


땔감


사람들은 알밤을 세상에 내어 놓고 가시투성이만 남은 밤송이를 땔감으로도 많이 사용해 왔다. 일찍이 고려 중기 뛰어난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이규보는 밤송이를 두고 고슴도치 털 같이 생긴  껍질을 모아 넉넉하게 땔감으로 사용하기 족하다고 하였다.


<<시경>> <빈풍> 동산(東山)에 '둥근 오이 쓴 것들은 밤나무 장작 덤에 나뒹구네 / 그대 본 지 얼마인가 벌써 삼 년 지났구나'라고 하여 전장에서 돌아온 남자가 고향으로 돌아온 집의 풍경을 노래한 시에서 밤나무가 땔감으로 사용되었음을 말해준다. 밤나무는 중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도 밤나무를 많이 심어 땔감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악기


밤나무는 악기를 만드는 데에도 쓰였다.  <<시경>> <용풍> 정지방중(定之方中)에 밤나무가 거문고의 재료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악학궤범> 에도거문고를  만들 때 앞면은 오동나무, 뒷면은 밤나무를 쓴다고 했다.


 개암과 밤나무 산유자 오동 가래 옻 심어 / 자란 뒤에 잘라다가 금과 슬을 만드시네

*정지방중:정성이 정남에 있을 때


조상숭배


밤나무는 제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나무다. 밤나무  주나라 때부터 신주를 밤나무로 깎아 만들어 썼다. 우리 조상들도 제사를 지내는 과일로 대추나 밤을 이용했다. 밤나무는 재질이 단단하여 악기나 신주를 만들기에 적합했다.


이순원의 소설 장편소설 『나무』는 백 살의  할아버지 밤나무와  어린 손자 밤나무를 인격화하여 자연의 소중함과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작품 중에  할아버지 밤나무가 손자 밤나무에게 "첫해에 뿌리와 줄기를 뻗어 나무 모양을 갖춘 다음에도 씨밤이 썩지 않고 땅속에 그대로 있단다. 그러다 다음 해 줄기가 더 크게 자라야 할 때 껍질만 남기곤 자기 몸의 영양을 다 내주는 거야"라고 한다. 그리고 "아마 네가 제대로 첫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너를 지켜보며 응원할 게다"라고 하며 손자 밤나무에 대한 아버지 밤나무의 사랑과 응원을 이야기해 주는 장면이다.


밤껍질은 오래도록 썩지 않고 땅속에 남아 있는다. 그래서 자신의 조상을 잊지 않는 나무라고 여겨 제사상에 올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상에 대한 공경을 노래한 것은 뽕나무와 가래나무 그리고 오동나무도 있거니와 조상의 신주를 밤나무로 쓰는 것을 보면 밤나무 또한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게 하는 나무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권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신주와 위판을 밤나무로 만든다고 하였으며  종묘 왕과 왕비의 신주도 밤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종묘사직의 사직에 있어서도 사직의 위판은 밤나무로 만드는 것이니 밤나무는 종묘와 사직에 있어서도 엄연히 귀중하게 쓰인 권위 있는 나무가 되었다.


구황작물


밤은 구황작물로서도 큰 역할을 해왔다.  가뭄이나 홍수 등의 날씨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구황 관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 역대 왕조의 큰 일이었다. 중국의 주례에 의하면 구황이 들었을 때 곡식 종자와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과 조세를 적게 거두는 것 등의 12가지 시책을 련하여 실시하였다. 조선시대 때도  시기를 정하여 사전에 밤을 주워 모아두게 하고 또, 세금을 깎는 등 구황대책을 미리 강구하여 놓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명종 때는 <구황촬요>가 간행되어 가뭄이나 흉년에 대비하는 방법을 정리해 두었다. 려운 식량난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 밤을 주워 채워놓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효능


밤에는 다양하고 풍부한 영양소가 포함되어 있다. 항산화작용 및 심장건강 그리고 위장에 좋고 면역력을 키워준다. 피부에 좋고 노화를 늦춘다. 근육을 길러주고 신장을 보호해 준다. 당뇨를 완화시키고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도 효과가 있다. 피로회복에 관여하고 치매방지에도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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