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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Aug 10. 2024

시경 속에 피어나는 꽃

이 땅의 어머니를 위한 풀 익모초 

익모초(益母草). 글자 그대로' 어머니에게 유익한 풀'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익모초는 동의보감, 산림경제, 향약제생집성방 등 수많은 의학 관련 서적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어 마치 만병통치약인 듯 여러 가지 질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 약효가 생리불순, 생리통 등 여성질환에 효험이 좋고 면역력증강, 혈압, 관절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어 더 기술하면 배가 산으로 오르기 마련이어서 여기서 멈춘다. 예로부터 익모초가 여성에게 좋다는 말은 대대로 내려오는 말이라 익모초와 관련하여 꽤 이름 있는 여인들을 열거해 보자면 조선 11대 왕인 중종의 비였던 문정왕후가 아들인 13대 명종을 얻기 위해 익모초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전기의 이름난 기녀이자 시인인 황진이도 익모초를 먹었다고 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인 측천무후도 익모초를 늘 가까이했다고 한다.


익모초의 효험이 좋다는 것은  까마귀 검고 백로 희듯 모르는 사람이 없어 때가 되면 들판마다 고개를 드는 것이 익모초요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풀을 구하니  최명희는 그녀의 대하소설 '혼불'에서 익모초가 약으로 쓰이고 있는 장면을 그림을 보듯 냄새가 나듯 묘사했다.


'습기가 많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들판이나 밭두둑 혹은 울타리 밑, 가리지 않고 우북하게 자라는 익모초를 뽑아 찧어 오류골댁은 동글동글 끝도 없이 환을 짓곤 하였다. 녹두알만씩 한 환약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또 익모초즙을 불에 달여 엿처럼 만들어 먹기도 했었다. 그래서 여름날의 무명옷 올 사이로는 익모초 진초록 쓴맛이 쌉쏘롬히 배어들어, 오류골댁이 소매를 들어올리거나 슥 옆으로 지나칠 때, 또 가까이 다가앉을 때면 냇내처럼 그 쓴내가 흩어졌다"

(우북하다:한데 많이 모여 더부룩하다. 쌉쏘롬하다:조금 쓴 맛이 있는 듯하다. 냇내:연기의 냄새)  


최명희는 소설에서 향토색 짙게 묻어나는 어휘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10권에 달하는 분량을 읽어 내려가려면 국어사전을 옆에 끼고 뒤적여가며 읽어야 할 정도로 그녀는 된장냄새와도 같은 토속적인 언어를 수두룩히 구사하고 있음을 본다. 필자는 간혹 시경에 나오는 식물에 대해서 몇 줄 써 내려가려고 할 때 작가들은 이러한 식물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그 내용이 우리의 정서에도 맞고 의미도 있을 것 같아 소용 있는 소설책을 섭렵할 때가 많다. 이렇게 소설을 인용하다 보면 역시 글 쓰는 사람의 펜을 놀리는 솜씨에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어 감탄하고는 한다. 혼불에서도 '소매를 들어 올리거나 슥 옆으로 지나칠 때, 또 가까이 다가앉을 때면' 쓴내가 난다고 하는 표현은 오류골댁이 지독히도 익모초와 씨름하였음을 짐작케 해 준다. 마치 독자가 익모초의 쓴 내를 맞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로 생생한 표현을 하려면  글쓴이 자신이 수없이 많은 시간을 익모초를 직접 달여보았거나 늘 접하지 않았으면 표현하기 어려운 문장일 것이다.


예로부터 익모초는 중국에서도 매우 친근하고도 흔하게 다가오는 풀이어서 시경 <<왕풍>> <중곡유퇴(中谷有蓷)> 에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한다.

(*蓷익모최퇴)


산골짝의 익모초가 시들어가네 / 집 떠나온 여인의 한숨과 탄식이라 / 탄식하는 것이 소박을 맞은 듯하네

산골짝의 익모초가 말라가네 / 남편과 헤어져 긴 한숨으로 탄식하네 / 한숨 쉬는 것을 보니 불행을 당했는가

산골짝의 익모초가 시들어가네 / 집 떠나온 여인의 흐느끼는 울음소리 / 흐느끼며 운다 해도 어이하랴


원래 익모초는 수분이 많아 웬만하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익모초가 마를 정도라면 극심한 가뭄이 닥쳐 백성들의 삶은 그야말로 자식까지 팔아 곡식으로 바꿔 연명을 할 정도로 피폐해지기 마련이었다. 글 좀 읽고 쓰는 옛 선비들도 가뭄이 들어 비참한 농촌의 현실을 노래하곤 했는데 조선시대 효종 때 걸출한 시인 윤선도가  비가 하도 오지 않아 임금이 기우제를 드린 후에 비가 오자 기뻐 읊은 시가 전한다. 시의 부분을 전하고자 하면


골짜기 속에 익모초 말라 버림받는 여인이 있었을 쏘냐  / 中谷暵蓷無女棄

궁한 집에서 아들 팔아 곡식 바꿀 사람이 있었겠는가 / 窮廬易粟絶男持


윤선도가 익모초가 말라 버림받는 여인을 이야기한 것은 필시 시경의 중곡유퇴를 비유한 것이 틀림없다. 이처럼 옛날에는 관리가 시경 읽기를 소홀히 하면 시작()이 불가한 것은 물론이요  왕과 같이 경연이라도 할 때면 학창시절 매일 칠판의 수학문제를 풀지 못해 손등을 맞아야 하는 듯한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만큼 시경은 선비들이 유희를 즐길 때나 혹은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서도 많이 인용되어지곤 했다.

익모초가 점차 시들어 가고 있다

익모초는 꿀풀과의 두해살이식물인데 익모초를 처음 마주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익모초의 기이한 줄기와 아름다운 꽃, 특히 4개의 수술의 조합에 저절로 시선이 고정되리라. 다름 아닌 줄기가 원형이 아닌 4 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기이한데 익모초를 비롯한 풀과의 식물이 4 각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진화적 과정은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하나 그 모습은 무척이나 호기심을 일으킨다.


한편 식물의 원형과 사각형의 줄기를 비교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식물의 입장에서 바람이나 외부의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를 갖는 것이 이로울까? 바람이 매우 셀 경우 원형의 줄기는 바람을 쉽게 스쳐 지나가게 하고 보다 탄력성을 가져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여 바람에 저항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수목은 거센 바람을 분산시키고 탄력성을 지닌 원형의 줄기를 더 선호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반면에 사각형이나 삼각형의 줄기를 가진 식물은 바람을 정면에서 다 맞아야 하므로 키가 큰 수목이라면 바람을 견디기에 벅차다. 그러나 익모초와 같이 1~2미터 정도 자라는 정사각형 줄기의 식물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구조적 지지대를 제공하여 키가 크고 똑바로 서 있을 수 있게 해 준다. 생물 다양성 입장에서 본다면 자연환경에 원형의 줄기가 혹은 사각형의 식물이 살아남던지 형태가 다양할수록 식물이 지속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꿀풀과인 익모초의 4각 줄기는 볼수록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어머니에게 유익하다'는 뜻의 익모초(益母草)는 영어로도 motherwort, 즉 '어머니 풀'이다. wort는 '초목, 풀'이란 뜻이다.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곤궁함과 피폐함은 사람이 살아가는 일생동안 끈질기게 달라붙는 속성이 있어 특히 어머니들이 짊어져야 하는 수많은 고초를 익모초는 달래주려는 것일까. 익모초는 7~8월에 자줏빛 꽃을 피우는데 꽃은 화사한 홍자색으로 7~8월에 피며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에 1개씩 4개가 돌려난다(윤산화서). 꽃의 모양이 특이한 것이 마치 악어가 입을 벌린 듯 위아래로 꽃잎이 벌어지는가 하면 또 어떻게 보면 새의 새끼들이 어미에게 먹이를 조르듯 입을 벌려 먹이를 보채는 듯한 표정이 앙증스럽다.


익모초의 수술을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그림에서 보듯이 수술 4개 중 2개는 길게 나란하고 나머지 2개는 짧게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Didynamous stamens). 현삼과나 꿀풀과의 식물이 그러한데 이렇게 수술의 길이가 상이한 진화적 과정은 밝혀진 바 없다고 한다. 다만, 길이가 서로 다른 수술의 조합은 씨를 더 많이 생산하고 꽃가루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며, 자가수분을 늦춘다고 한다. 실험적으로 길이가 서로 다른 수술의 조합과 길이가 같은 수술의 조합에서 길이가 서로 다른 수술의 조합이 씨를 더 많이 생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익모초는 2개씩의 길고 짧은 수술의 조합을 형성한다. 이 각기 다른 수술의 작용은 꿀풀과 식물의 특징이기도 한데 씨앗의 생산성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월 뜨거운 날, 인천광역시 무의도자연휴양림 입구에 익모초꽃이 줄기 돌가며 피어나고 있다(윤산화서). 필자가 숲해설을 하고 있는 장소이다. 필자는 탐방객에게 시경의 시와 함께 이 익모초의 설명을 늘 빼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익모초의 4각 줄기에서 느껴지는 호기심과 경이로움이 여간해서는 사그라들지 않기 때문이고 탐방객들 꼭 나와 같은 기분을 가졌으면 하는 독단적인 나의 고집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가진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탐방객도 같이 느껴보도록 애써보는 일은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나에게는 매우 보람 있는 일이다.

악어의 벌린 입인가, 어미로부터 먹이를 갈구하는 새의 외침인가. 익모초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돌려난 꽃과 길고 짧은 수술 그리고 곤충을 유혹하는 허니가이드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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