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핑계로 부모가 산 비싼 장난감,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닌텐도사서 첫째랑 해야겠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 남편이 한 말이다. 구매력 좋은 쇼핑왕 남편은 닌텐도를 샀고 마리오카트, 닌텐도 스위치 스포츠, 링피트 등 몇 가지 게임도 샀다. 둘째를 낳고 조리원에 있는 동안 남편은 첫째와 닌텐도를 즐겼고, 난 영상통화로 그 장면을 감상하곤 했다.
조리원에서 돌아온 후, 첫째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함께 게임을 했으나 게임을 잘 하기는커녕 해본 적이 별로 없는 나는 그야말로 아이에게 상대가 안 되었다. 그러니 재미가 없을 수밖에. 아빠와 게임을 종종 하던 첫째는 이번엔 아빠가 너무 잘해 흥미를 잃었다.
그렇게 10개월이 된 지금. 우리 집에서는 그 누구도 닌텐도를 하지 않는다.
11월 초, 우리 가족은 남편에게 갑자기 생긴 휴가로 인해 오사카행 비행기를 탔다. 필리핀에서 돌아온 지 삼일만이었다. 여행계획이라고는 단 하나.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간다는 것. 가서 마리오카트 게임을 하고 해리포터 성을 보고 오는 것. 3박 4일 여행 기간 동안 극 P성향인 부부는 단지 이틀 째 되는 날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갈 것이므로 입장권을 산 것 말고는 아무 계획이 없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정말 계획이라고는 1도 모르는 부부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는 것만큼은 진심으로 여겼다는 것이다(남편은 놀이공원을 그야말로 극혐하지만 첫째 딸을 데려가고 싶어 했다. 난 놀이공원에 그냥 진심이고).
너무 갑작스럽게 떠난 터라 정보는 필리핀에서 틈틈이 검색해야 했는데, 슈퍼 닌텐도 월드에는 자칫하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확약권이 필요하다고 했다. 확실하게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데 방법은 익스프레스 티켓을 사는 것, 가서 정리권을 받는 것, 그것도 안되면 당첨권에 응모하는 것 세 가지였다. 그러나 간과한 방법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제일 확실한 오픈런을 하는 것이었다. 입장 날짜를 임박하여 티켓을 끊은 터라 익스프레스 티켓은 매진. 그렇다면 제일 좋은 방법은 오픈런 + 정리권 조합이었다.
달리기에는 자신 있는 우리 부부는 남편이 둘째를 안고 최선을 다해 달리고 나는 첫째를 유모차에 태워 뒤따라가는 전략을 세웠다. 그렇게 여행 둘째 날 늦잠 잘까 잠을 설쳐 가며 일어난 우리는 지하철 첫차를 타고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도착, 오픈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오픈런에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파워업 밴드를 만나면서부터 발생했다. 분명 정보수집중에 파워업 밴드가 없으면 안 된다는 글을 보았다. 슈퍼 닌텐도 월드에 들어가면 각종 미니게임과 돈이 나오는 벽돌 등이 있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파워업 밴드라는 것이다. 파워업 밴드가 없으면 아예 진입조차 못하게 해 놓은 곳도 있다니, 첫째의 손목엔 무조건 채워줘야 할 것 같았다. 첫 번째 판매 카트에서 안에서도 살 수 있냐 물어보니 그렇다 하여 마저 뛰어 들어간 그곳에서 갈 길을 잃은 남편을 만났다. 남편에게 카드를 받아 파워업 밴드(무려 4200엔)를 사고 결제하는데 왜인지 세네 번 오류가 났고 그러는 동안 슈퍼 닌텐도 월드에는 사람이 가득 찼다. 미친 듯 달려 들어온 남편의 얼굴엔 허탈함과 짜증이 넘쳐났다. 난 당혹스러웠다. 분명 뛰어야 한대서 뛰라고 한 건데, 남편이 먼저 서있으면 따라가 줄을 서려고 한 건데 이놈의 팔찌를 사느라 꼬여버린 것이다. 남편이 가서 줄을 서려고 하니 일행이 다 온 뒤에 줄을 설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했다. 그러면서 뛸 필요가 없었다고 씩씩거리는데 힘들고 짜증 나는 게 이해가 되어 별 말을 할 수 없었다. 사실 나도 몰랐으니.
그렇게 마리오 카트를 타러 들어가니 생각보다 줄이 길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줄 서기 지옥에 갇힌 게. 마리오 카트, 요시 어드벤처 두 가지를 타는 데 오전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버렸고 화장실도, 뭘 먹으려 해도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중간중간 미니게임이나 벽돌의 동전을 치는 데 파워업 밴드가 필요했는데 막상 그 팔찌를 찬 첫째는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너무 거칠게 쳐대서 파워업 밴드를 망가뜨릴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니 드는 생각.
아니 저게 얼마짜린데, 저걸 저렇게 함부로 거칠게 대해? 그리고 왜 미니게임을 하지 않는 거야? 그래서 사줬는데?
분명 아이는 사달라고도 안 했고, 어디에 쓰는 건지도 몰랐을 텐데 파워업 밴드를 사느라 쓴 시간과 돈이 아까워 아이를 다그치고 있었다. 즐겁자고, 아이를 위한답시고 온 놀이공원에서 왜 즐기지 못하냐고 핀잔을 주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남편과 정신 차리고 대화 후, 다음 목적지인 해리포터의 성에서는 절대로 마법봉을 사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마법봉도 곳곳에서 마술을 부리는데 쓰이는 것 같았는데 그것도 줄이 길 게 뻔했고, 우리 큰 애 특성상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 같았기에 파워업 밴드에서 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사주어선 안 됐다.
해리포터 구역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줄 서는 건 너무 힘들었지만 평화는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슈퍼 닌텐도 월드에서보다 더 밝은 표정으로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한참을 기다렸다 탄 포비든 져니가 정말 재밌어서 또 타고 싶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는 완전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슈퍼 닌텐도 월드에 가고 싶어 한 적이 없었다. 해리포터 구역에 가서 해리포터와 관련된 것들을 구경하고 체험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애들 다 닌텐도 좋아하니까, 슈퍼 마리오 꾸며놓은 것 보고 싶을 테니까, 이런 식으로 누가 OO 해야 한다는 것에 아이를 끼워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아-, 초중고에는 뭐 해야 하고 시기 맞춰 대학가야 하고 그다음엔 취업, 결혼, 출산, 육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아이가 중요한 건데 그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뭐 한다니까 따라 하고, 남들이 무슨 학원 보낸다니까 따라 보내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닌데. 아이가 뭐에 관심이 있고 뭘 하고 싶은지 보고 듣는 게 더 중요한데. 바보 같이 남들 한다고 따라서 아이에게 해놓고 아이에게 화내고 있는 꼴이란. 정말 별로다 싶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닌텐도를 TV뒤로 숨겼다. 벽걸이 TV뒤에 무엇인가를 달았다 뗀 흔적이 있는 거치대가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닌텐도 본체를 거치하면 되겠다 싶어 닌텐도를 숨겨두었다. 그러니 훨씬 깔끔해 보인다. 팩과 컨트롤러는 소파 옆 장식장에 넣어두었다. 게임을 하려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자주 하지 않으니, 넣어놓기로 한다. 남편은 말한다. '내가 아는 여덟 살 중에 네가 게임을 제일 조금 하는 것 같다'고. 그러면 딸은 '그럼 뭐?'하고 대답한다. 그래, 사실은 게임기도 네가 사달라고 해서 산 게 아니었지, 어쩌면 엄마아빠가 네가 심심할까봐라는 핑계를 대고 마련한 건지도 모르지. 그러니 뽕뽑을 생각 말고 일단 공중부양시킬 것 시켜서 집이나 깨끗하게 만들어볼게. 다른 것도 다 띄워서 (가려서) 정돈하고 싶은 게 지금의 내 마음이니까. 그러다 보면 공간도 정리되고 아이도 더 똑바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