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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Dec 08. 2023

체중도 줄이는 중이(었)다

건돼에서 돼지를 빼는 중입니다

쟤 왜 저렇게 뛰어?

요즘의 체육대회와는 달리 라떼의 가을 운동회는 마을 대잔치였다. 학교는 여름이 끝날 생각도 안 하는데 가을 운동회 준비로 들썩였고, 그날은 온 가족이 총출동하여 돗자리를 깔고 모여 앉아 도시락과 치킨을 먹는 날이었다. 교문 앞엔 각종 노점이 즐비했는데 그중 단연 인기가 높은 곳은 솜사탕 리어카였다. 다른 날은 몰라도 가을 운동회날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솜사탕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먹고 나면 너무 달아 입 안에 침이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어 불편했는데도 예쁘게 부풀어 폭신폭신한 솜사탕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아파트 같은 라인엔 동갑내기가 다섯이었다. 모두 친하게 지낸 데다가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고모도 살아 사촌도 같은 학교를 다녔다. 그러니 정말 당시 내가 알던 지인들은 다 모여 있었다. 그래서 그 가을 운동회는 나에겐 너무나 곤욕스러운 날이었다. 다들 입을 모아 왜 저렇게 뛰냐고 했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순서대로 3등까지 도장을 찍어주었던 달리기. 6학년 때 4명이 뛰는데 한 명이 뛰다 말아서 엉겁결에 3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말고는 도장을 받아보지 못했던 그 달리기. 5학년 때 유난히 나를 예뻐해 줬던 담임선생님께서, 최선을 다해 뛰었는데도 "연습이라고 대충 하다니 실망했어"라고 오해하게 한 그 달리기. 나를 너무너무 작아지게 만들었던 그 달리기.








그 달리기를 6월부터 매일은 아니지만 아주 그만두지는 않은 채로 꾸준히 하고 있다. 달리기에 관한 글도 무려 다섯 편이나 썼다. 


18화 이것 열세 번 하면 3킬로 빠진다 (brunch.co.kr)
19화 달리기, 너도 할 수 있어 (brunch.co.kr)
20화 달리지 못할 단 한 가지 이유 (brunch.co.kr)
21화 달리다가 도망쳤습니다 (brunch.co.kr)
22화 다시 달리고 또 씁니다 (brunch.co.kr)


여름엔 너무 더워서, 혹은 비가 와서, 그리고 귀찮아서, 가을엔 여행을 가느라 혹은 마음이 힘들어서 달리지 못한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하향곡선을 그리던 체중이 안타깝게도 반등에 성공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12월, 벌써 세 번이나 달렸다. 그리고 달릴 것이다. 나가기가 너무너무너무 귀찮지만. 잘 먹고 건강한 돼지에서 돼지를 빼고 싶기 때문에.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기 때문에. 빼먹을지언정 스케줄러에 꼬박꼬박 기록하고 체크하고 운동인증방에도 들어가 돈도 걸고(!). 그러면서 달릴 때마다 몸무게가 줄 때마다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게 된다. 마치 집을 치웠을 때 뿌듯함을 느끼는 것처럼. 



몸으로 하는 것은 다 못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취약했던 것을 해내(려고 하)는 나는 분명 맥시멀리스트지만 정돈된 집에 살게 될 것이다(오래 걸릴지라도). 몸무게를 줄이면 몸무게가 늘어 필요한 물건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오래 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체력이 늘어나면 집이 좀 엉망이더라도 짜증 내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음도 좀 단단해질 것이다. 좀 흐트러지더라도 다시 잘 회복할 것이다. 



정리를 하다가 때로는 물건에 압도되어, 때로는 귀찮아서, 때로는 바빠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쉬어가는 날이 생겨도 정돈된 집에서 정말 사용하는 물건, 필요한 만큼의 물건만 소유하고 나머지는 비운 채로 살고 싶다는 목표를 잃지 않으며 다시 또 비워내고 비워내려 한다. 달리며 지방을 비워내는 것처럼. 멈추고 포기하지는 않으려 한다. 몇 번의 손길만으로도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서. 집에 있는 시간에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쫓기지 않고 편히 지낼 수 있기 위해서.



그렇게 짐도, 몸무게도 줄이면서 더 편하고 행복해지려 한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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