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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클로이 Dec 13. 2022

절대 신지 못할 신발을 예비 시어머니께 선물로 받았어요

일상의 에피소드: 롱디 커플의 크리스마스

택배가 배송 출발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아무것도 시킨 것이 없는데 뭐가 온다는 거지? 스팸인가? 생각하면서 문자를 자세히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진짜 택배 알림 문자가 맞다. CJ택배 알림엔 항상 배달해주시는 배달원 성함이 찍혀있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집 현관 앞으로 택배가 하나 배달되었다. 


문을 열고 확인해보니 작은 신발 상자이다. 


발신인은 미국에 있는 나의 피앙세. 


지난 11월, 잠시 미국에 머물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롱디 커플이 되었다. 한국에서 연애를 하다가 롱디 생활을 시작한 지도 1년 하고도 조금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롱디 연애를 최대한으로 즐기고 있다. 이렇게 미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선물을 택배로 주고받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일 것이다. - 마지막이라 믿어본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냈다는 소리가 없었는데, 그냥 편지 하나 보냈다고 했는데 왜 박스가 왔지? 하면서 은근히 설레는 마음으로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거니, 남자 친구는 나 몰래 준비한 소소한 서프라이즈라고 했다. 그러면 덤으로 내년부턴 화려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고 했다. 사랑스러운 나의 남자 친구는 또 한 번 이렇게 나를 감동시켜준다. 


뭘까, 뭘까 하면서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나는 박스를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남자 친구가 직접 만든 카드와 함께 하이킹 때 쓸 수 있는 작은 필드 노트 - 미국에서 남자 친구와 나는 주말마다 하이킹을 다녔었다. - 그리고 그 밑에는 어그 부츠 한 켤레가 담겨 있었다. 


남자 친구는 직접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 연애를 시작하고 함께 맞이한 첫 크리스마스 때 남자 친구는 손으로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문구점에 방문하여 종이, 색종이, 색색깔의 필기구들, 스티커 등등을 사들고 집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나는 금손은커녕,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데, 손을 써서 뭘 만들려니 여간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완성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남자 친구에게 전달해주었더니 남자 친구는 아직도 그 카드가 자신이 받아본 카드들 중에서 제일이라며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남자 친구는 자신이 만든 카드를 보내왔다. 


남자 친구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상자에 넣어져 택배로 배송된 이유는 바로 부츠 때문이었다. 어그 부츠는 나의 예비 시어머니가 사주셨다고 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어머니께서 어그 부츠 이야기를 꺼내셨었다. 미국에서 몇 번이고 사주시겠다는 것을 괜찮다고 마다했었는데, 이렇게 짠하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서 보내주셨다. 받자마자 신발 한쪽을 꺼내서 신어보았다. 사이즈도 딱 맞고 부들부들한 털이 발을 감싸는 게, 굉장히 따뜻하다. 무엇보다도 정말 편하다. 항상 나를 생각해주시는 우리 예비 시어머니를 둔 나는 정말 복 받았다. 


오늘 아침, 마실 나가려고 어그 부츠를 상자에서 꺼내 들었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그동안 신발은 아무 생각 없이 찹찹 신어왔는데, 이 어그 부츠 두 짝은 뭔가 불편해 보였다. 신발 두 짝을 나란히 두고 보니, 이거 이거 왼발만 두 짝이다. 



너무 황당한데 정말 웃기기도 해서 바로 남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왼쪽만 두 개 받았어.' 


남자 친구도 엄청 웃어댄다. 바로 어머니께도 이 상황을 알렸다. 어머니는 바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셨다. 백화점 점원에게 산 신발인데 확인도 안 하고 판매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본인도 사기 전에 한번 더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속상하고 기가 찬다고 하셨다. 화난다고 하시면서도 엄청 웃으셨다. 매점에 클레임을 걸고 새 걸로 다시 사다 놓을 테니 미국에 오면 신으라고 하셨다. 


아마 지금 미국 백화점 신발 매장엔 오른쪽만 두 개인 신발 한 켤레가 있을 것이다. 그 신발을 사는 사람은 나와 전생에 깊은 인연을 나눈 사이일 것만 같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이 당신의 다른 반쪽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고도 싶다. 정말 별의별 상상을 다했다. 


올해도 작년과 같이 남자 친구와 떨어져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어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는데, 그래도 절대로 못 신을 왼쪽만 두 짝인 신발 선물을 받은 덕에 오늘 하루 정말 많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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