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별 그리움 그러나 나에겐 반전이야기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발표되는 순간, 기뻤다. "아니 에르노"의 책을 여러 권 읽었고 독립 출판사 1984 books에서 그녀의 책을 꽤 많이 출판했기 때문이었다. 독립출판사 사장님의 놀라운 안목과 꾸준함이 뭔가 대박을 터뜨린 느낌이었다. 출판사와 1도 상관없는 나이지만, 뭔가 희망의 메시지를 본 것 같았다.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는 것이 노벨문학상 선정이유이다. 아니 에르노의 책은 어렵다. 거칠게 솔직한, 조금은 거부감이 들 정도의 세세한 묘사가 나와는 좀 맞지 않는다고 할까. 어린 시절부터의 일들과 생각을 거침없이 날 것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
많은 이들이 극찬한(불호도 있긴 하지만) <단순한 열정>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길이도 짧고, 사랑 이야기라 쉽게 페이지가 넘어갔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첫 문장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 사람의 전화 외에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 p.13
사랑에 빠졌구나 이 사람. 아주 지독히도.
온통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만 계속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남편과 연애시절이 생각난다. 참 애틋하던 그 시절 그 시간. 그 사람과의 미래만 보던 순수했던 나.
그 사람이 한 시간 후에 도착한다고 알려오면-그런 경우는 그가 아내의 의심을 사지 않고 늦게 들어갈 수 있는, 말하자면 좋은 '기회'였다-나는 또 다른 기다림 속으로 빠져든 나머지 생각을 할 수도, 무언가를 바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p.14
아. 불륜이야기로구나.
이러면 또 감상이 달라지지.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끌리지만, 애절한 불륜이야기라니 짜증이 확 났다. 아이가 넷인 애엄마는 불륜이야기가 달갑지 않다. 아니 애엄마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누구도 불륜이야기로 로맨스를 꿈꾸진 않는다. 자전적 이야기를 쓰기로 유명한 아니 에르노라, 이건 그녀의 경험이다. 싫다. 이렇게 대놓고 불륜이야기를 아름답게 쓰다니. 아름다워도 너무 아름답다. 대상이 불륜남이 아니었다면 달달하게 읽었을텐데.
그 사람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내게 많은 제약을 강요했다.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낼 수도 없고, 선물을 할 수도 없었다. 그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한가할 때나 겨우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 불평하지 않았다. - p.31
진정 사랑했나 보다.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그 사람에게 다 맞추고 배려하다니. 강요된 제약에도 불평하지 않을 수 있는 그 마음이 불편하다. 이해하기 싫다. 등장하지도 않는 불륜남의 아내에게 너무 이입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읽다 보니 아쉽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잘 드러난, 세심한 감정의 묘사가 아름답기까지 한데 그 대상이 하필 불륜남.
아니 에르노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고 글도 참 멋들어지게 쓰지만, 이 책 <단순한 열정>은 내용상 참 별로다. 하지만 제목처럼 불륜남에 대한 단순한 열정은 그대로 전달되므로 작가의 심리묘사가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길 바란다.
내용이 별로여서 감상도 별로. 끝.